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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블랭크 Nov 30. 2021

누구에게나 공평한 ‘시간’에 이름을 붙이는 곳, 밑미홈

복합문화공간 밑미홈

가로로 면적을 넓히는 대신 위아래로 일관적인 흐름을 가지길 선택한 곳, 2021년 5월 성수동에 문을 연 ‘밑미홈(meet me home)’이다. ‘밑미(meet me)’는 스스로를 꽤 잘 아는 편이라고 자신했지만 번아웃을 겪으면서 그게 아니란 걸 깨달은 이들이 만든 자아 성장 큐레이션 플랫폼이다. 온라인 기반의 리추얼 프로그램을 안정적으로 정착시키고는 더 나아가 오프라인 공간을 마련했다.


복합문화공간 밑미홈


여러 사람을 모이게 만드는 서비스들이 먼저 ‘대면 모임'에서 시작해 ‘비대면 모임'을 병행하기도 했던 것과 달리, 밑미는 정반대 방향으로 걷는다. 역순이었어야 하는 이유를 짐작하건대 모두 리추얼 때문이다. 단기 속성 강의나 워크숍에서 배울 수 있는 지식과 달리 리추얼은 일상에서 꾸준히 적용해야 하는 영역의 일이다. 그래서 각자의 자리에서 정해진 시간에 공통된 일을 수행하거나 독려하는 비대면 모임은 사라질 수 없다. 밑미홈은 이와 같은 필수 자산을 전제로 두고 한 보 앞으로 나아간다.


밑미홈의 주요 레퍼런스는 도시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가 주장한 ‘제3의 장소’이다. 가정(제1의 장소), 일터 또는 학교(제2의 장소)가 아닌, 목적 없이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리는 커뮤니티인 제3의 장소는 몇 가지 특징들을 갖춘다. 문지방이 낮고, 위압감이 느껴지지 않고, 음식으로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현대인들에게는 주거지나 일터가 아닌 공간, 일상으로부터 단절되면서도 종종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고, 밑미홈은 이를 위해 만들어진 또 하나의 선택지다.


복합문화공간 밑미홈 3층 시간을 파는 상점


밥 한 끼에서 시작되는 자아 성장

2층 위로하는 부엌 - 정성 가득한 한 끼를 먹을 수 있는 곳
3층 시간을 파는 상점 -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선물하는 곳
3층 토닥토닥 상담방 - 내 안의 이야기를 안전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곳
4층 들숨날숨 스튜디오 - 요가와 명상 등으로 내 몸의 건강과 균형을 찾는 곳
5층 심심한 옥상 - 서울 도심을 내다보며 커피와 차를 내려 마시고, 나에게 집중하는 곳


밑미홈에 들어서서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곳은 시니어 파트너라 불리는 금자 씨와 혜미 씨가 집밥 한 상을 내어주는 ‘위로하는 부엌’이다. 고정 메뉴인 한 끼 집밥은 금자 씨의 근교 본가에서 기른 제철 채소, 직접 담근 장, 직접 짠 오색 기름 등으로 차려지고, 모든 찬은 금자 씨가 직접 수집한 놋그릇에 담긴다. 위로하는 부엌이 밑미홈에 있지 않았다면 이곳은 그저 ‘정갈한 집밥 맛집'으로 분류되지 않았을까? 그러나 앞서 언급한 제3의 장소 관점에서 위로하는 부엌은 밑미홈의 근간을 이룬다. 시니어 파트너들은 충고와 조언과 잔소리 대신 맛있는 밥을 만든다. 음식을 먹는 행위를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다.


이곳은 방문자들이 곧바로 밀도 높은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건물 전체를 둘러보며 마치 아이스 브레이킹을 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밑미가 상담, 요가, 명상 등을 대면과 비대면 서비스로 모두 제공하는 곳이기에, 대면할 여지에서도 차별점을 둘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3층 ‘토닥토닥 상담방’은 딱딱한 오피스 같은 곳에서 내 이야기를 털어놓기 주저하는 사람들을 위해 최대한 가정집처럼 개조했다. 4층 ‘들숨날숨 스튜디오’에서는 소규모로 모여서 요가나 명상을 할 수 있다.


복합문화공간 밑미홈 2층 위로하는 부엌 - 금자 씨


누구에게나 공평한 ‘시간’에 이름 붙이기


3층 ‘시간을 파는 상점’에서는 눈에 보이는 것을 팔면서 동시에 시간을 함께 판매한다. 아담한 모래시계를 파는 게 아니라 ‘현재의 행복을 찾는 시간'을, 줄 정렬이 반듯한 노트를 파는 게 아니라 ‘한 가지에 푹 빠져보는 몰입의 시간'을 파는 식이다. 상점에 입고된 모든 물건에는 제품명과 함께 저마다 다른 쓰임새를 가진 시간들이 표기되어 있는데, 제품에 대한 그럴듯한 수식어가 아니라 본질을 드러내고 짚어주는 말에 더 가깝다. 밑미홈은 방문자에게 1시간의 시간을 마법같이 더 얹어주고는 그의 하루를 25시간으로 만들어주지 않는다. 대신 누구에게나 똑같은 24시간 중 오늘의 나를 위해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을 제안한다.


‘심심한 옥상'은 단지 건물의 꼭대기가 아니라 시간과 돈을 등가 교환하는 장소다. 거리를 내다보며 커피를 내려 마신 후 얼마간 멍 때릴 시간을 구매하는 것이다. 캠핑의자와 간이 데스크가 띄엄띄엄 놓여있어, 최대 10인 정도가 적당히 사적인 영역을 확보하며 쉬어 갈 수 있다. 현대인의 마음 챙김 유행을 비판한 로널드 퍼서는 “마음 챙김은 신자유주의 사고방식에 지배된다. 활용되어야 하고, 효과가 입증되어야 하며, 바람직한 결과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우리는 진정한 나를 만나고 싶지만 한편으로는 신자유주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조급하게 스스로를 바라본다. 그래서 1시간이 지나고 나면 어떤 문제가 해결되리라고 보장할 수 없는 시간, 그저 지금 이대로 머물러도 좋을 시간이 필요하다. 심심한 옥상에 심심하게 머물러봐야만 알 수 있는 역설이다.


복합문화공간 밑미홈 5층 심심한 옥상


계단을 오르내리는 찰나의 시간까지도


총 5층으로 구성된 밑미홈의 도면은 마치 제품설명서를 뜯어보듯 건물을 바라보게 만든다. 2층부터 5층까지 다른 콘텐츠들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곳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 건물'로도 설명될 수 있다. 밑미홈의 계단을 오르내리는 순간은, 계단 한 칸을 오를 때마다 기대 수명도 늘어난다는 예의 그 지하철역 건강 계단에서 약간의 실없음을 맛볼 때와는 전혀 다르다. 층계 사이 벽에서 ‘쓸모의 시간만 보내고 있지 않나요?”, “일상의 빈틈이 진짜 나를 만나게 해 주니까요.”같은 문구가 적힌 포스터를 마주한다. 평소 우리의 생각 속 ‘시간’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편협했는지 깨닫는 동시에, 머리를 강하게 치고 들어오는 ‘시간’을 대하는 새로운 관점에 대해 생각해본다.


밑미의 손하빈 CEO는 한 인터뷰에서 “우리를 알기 위해 시간을 쓰지 않았다는 것에서부터 비즈니스의 니즈를 만드는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온라인 서비스의 일이 모두들 바쁜 틈에서도 주기적으로 서로의 건강한 일상을 독려하는 것이라면, 오프라인 밑미홈의 일은 보다 더 자기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밑미홈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시간만이 중요하다.


제3의 장소가 갖춰야 할 조건 중 하나가 낮은 문지방이었음을 떠올린다. 아무리 강렬한 깨달음도 오래가지 않고, 다시금 일상의 의무에 파묻히다 보면 진짜 나를 만나는 시간은 언제나 뒷전이 되어버리고 만다. 밑미홈이 시간 확보와 관련한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들 즉, 재방문 고객들로 가득한 곳이 될 것을 기대한다. 그래서, 낮은 문지방이 점점 더 낮아지고 세월이 쌓여 닳아버린 문지방을 가진 도심 속 공간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복합문화공간 밑미홈


- 글. 서해인 에디터/ 사진. the blank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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