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기오는 한국의 강원도 평창같이 고산지대에 있다. 해발 1,500m이니까 대관령보다 훨씬 더 높다. 구름 위의 도시라고 보면 된다. 그런 지형이다 보니 항공도 없고 철도도 없다. 버스와 승용차를 이용해서 갈 수 있다. 마닐라의 버스 터미널이 우리와는 좀 다르다. 우리의 고속버스 터미널은 다양한 회사의 버스가 한 곳에 모여 있어 승객이 선택해서 탑승하면 된다. 마닐라는 그렇지 않다. 어느 버스 회사를 이용하느냐에 따라 터미널이 다르다. 서울에서 유튜브나 인터넷을 통해서 대중교통 이용에 대한 사전 조사를 한 결과 PITX 터미널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송재(松齋)가 현지의 숙소 호스트인 Ditas와 메신저를 교환하니, 제네시스 버스가 가장 쾌적하고, 승차시간도 좋다는 결론이다. GrabCar 기사가 마닐라 시내를 곡예 운전하여 버스 터미널이라고 우리를 내려주었다. 사전에 받은 전표에 적힌 금액과 고속도로 톨비를 포함하여 325페소(8,125원)를 지불했다. 필리핀의 택시 요금이 정말 저렴하다.
<제네시스 버스 터미널 모습>
막상 터미널에 내리니까 이게 버스 터미널인가 할 정도로 열악하다. 우리 시골 면단위에 있는 버스 정류장 보다 못한 것 같다. 버스 몇 대가 정차되어 있고 대합실이라고 할 수 도 없는 허름한 사무실과 편의 시설이라고는 시골 점방(店房) 같은 구멍가게 하나와 파리가 날아다니는 불결한 식당 하나가 고작이다. 화장실은 무조건 1인당 5페소이다. 새벽 4시부터 설치고 다니면서 식사도 제대로 못하였으니 일행 모두 허기가 밀려온다. 개는 모르지만 사람들은 집 떠나면 개고생을 하기 마련이다. 우리가 탈 버스는 벌써 대기해 있는데, 출발시간을 알아보니 15:10분이란다. 남은 시간에 민생고(民生苦)를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 주변 음식점이 보이지 않고, 터미널에 있는 우리의 포장마차 보다도 못한 위생환경의 식당이 고작이다. 검증되지 않은 필리핀 음식에 청결 상태를 들러본 일행들이 모두 고개를 내졌는다. 그래도 쪼르륵 거리는 뱃속을 달래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채워주어야 한다. 특히 식품전문가 덕은(德隱)의 속을 채워줘야 안 시달린다. 할 수 없이 구멍가게에서 빵과 생수(205페소)를 사서 버스에 올라 요기를 하기로 했다. 여행가방을 버스 트렁크에 싣고 승차했다. 유럽의 버스와 달리 가방의 교환표나 인식표를 주지 않는다. 중간에 정차하거나 내리는 것이 없이 목적지 까지 무정차란다. 그러니 교환표가 필요 없는 것이다. 바기오 까지 제네시스 버스료는 1인당 730페소(18,250원)로 5시간 이상 탑승에 비해 저렴하다.
<버스 터미널 모습>
<터미널 주변>
<터미널 대합실>
<우리가 탈 버스>
<버스 내부, 손잡이 달린 문이 화장실>
조악(粗惡)한 비닐 포장의 빵을 뜯어서 한 입 베어 물자 모두들 으악하는 표정이다. 빵 맛이 정말 ‘개떡’이다. 독자 여러분들 ‘개떡’을 아시나요? 맛이 없다고 개떡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런데 옛날 가난했던 시절에 먹을 것이 부족하지만 떡은 먹고 싶은데, 쌀이 없으니 고운 보리등겨로 떡을 만들어 먹었다. 필자 운사(芸史) 금삿갓도 어릴 적에 먹어본 기억이 있다. 이름이 떡이지 정말 먹기 힘들다. 여기서 산 빵이 바로 그 맛이었다. 독특한 밀가루 냄새와 반죽이 제대로 부풀지 않아서 그냥 밀가루를 뭉쳐 놓은 것 같다. 허기진 네 사내들이지만 도저히 다 먹지 못하고 한 두 입 먹고는 물로 배를 채운다. 파리 바게트나 대전 성심당 빵은 둘째치고 그냥 삼립식품의 소보로가 막 생각나는 순간이다.
<'개떡' 같은 맛의 조악한 빵>
출발시간이 되자 기사가 타고 승무원이 검표와 매표를 한다. 무정차이니 만큼 버스에 화장실도 갖추어져 있다. 유럽버스는 버스 안에 있는 화장실도 2유로로 유료인데, 여기는 무료이다. 마닐라 시내를 요리조리 빠져나오자 광활한 들판을 달린다. 마닐라 시내 어느 구역은 강물에 그야말로 산처럼 쓰레기 더미가 보이고, 물 색깔이 마치 먹물 같다. 환경오염이 극한 상황이다. 심지어 덕은이 송재더러 먹물 가져오지 말고 저 강물 한 컵 떠서 서예 연습을 하라고 농담을 한다. 교통상황에 따라서 5~6시간 걸리는 거리를 기사는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린다. 버스는 산 페르난도(San Fernando)와 앙헬레스(Angeles) 외곽을 지나 타를라크(Tarlac)를 거쳐서 간다. 앙헬레스와 수빅(Subic)은 20여 년 전에 골프레슨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방문하여 한 1주일 동안 지낸 곳이다. 당시 수빅골프장 여사장과 클럽하우스 VIP실에서 성대하게 만찬을 하던 기억이 난다.
<제네시스 버스의 승차표 : 금액과 거리를 펀치로 구멍을 내서 준다>
해는 어느덧 자취를 감추고, 어둠이 몰려왔다. 버스는 캄캄한 산길을 굽이굽이 돌아서 힘겹게 더 높은 곳으로 달려간다. 어디 깊은 산속으로 납치라도 되어 가는 기분이다. 어두운 산길을 1시간 반 넘게 달려오니 드디어 눈앞에 불빛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산꼭대기의 도시가 이런 모양이다. 바기오 버스터미널은 바기오 중심지인 번햄(Burnham) 공원과 가장 럭셔리한 건물인 SM City 쇼핑몰 사이에 위치한다. 인구 40만 가량되는 산중도시가 정말 시끌벅적했다. 좁은 길에 차량도 많고 사람들도 많았다. 짙은 매연을 풍기며 달리는 지푸니의 행렬들이 도로를 메우고 있었다. 바기오의 첫인상은 숨이 막히는 매연과 서늘한 공기였다. 버스의 에어컨이 너무나 빵빵하게 나와서 추울 정도여서 도리어 이곳의 서늘한 밤기운이 오히려 따스하다고 느낄 정도다. 무사히 도착한 것이다. 가방을 찾아서 택시를 타고 숙소로 들어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