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명화를 패러디한 애로서(曖露書)를 하나 보았으니, 이번에는 명장(名匠)을 패러디한 명장들의 세계를 둘러보자. 표지 그림은 르네상스의 거장 라파엘로(Raffaello Sanzio)의 <La Fornarina>이다. 라파엘로의 숨겨둔 애인이자 빵집의 딸인 프란시스코 루티(Francesco Rute)를 그린 것이다. 메디치 가의 딸과 약혼 관계임에도 결혼을 뒤로 미루면서 루티를 모델로 삼아서 영혼을 담아 그린 거장의 명작이다. 결혼해서 같이 할 수는 없지만 그림에는 영원히 자신의 타투(Tatoo)를 새겼다. 왼손 약지에 반지와 왼팔에 팔찌를 그리고 그 팔찌에 자신을 나타내는 <Raphael Urbinas(우르비노의 라파엘)>라는 문구를 그린 것이다. 자기 사랑의 맹세거나 두 사람 사이의 은밀한 약혼 언약이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가 사랑의 열병에 걸려 요절하자 그의 제자 줄리아 로마노가 스승의 명예를 위해서 위의 작품에서 약혼반지 부분을 가필(加筆)을 해서 지워버렸다. 이 비밀은 500년간 묻혀 있다가 현대 과학의 힘으로 다시 복원되었다. 거장의 무덤에 “여기는 생전에 어머니 자연이 그에게 정복될까 만든 라파엘로의 무덤이다. 이제 그가 죽었으니 그와 함께 자연 또한 죽을까 두려워하노라.”라는 명문(銘文)으로 추앙되고 있다.
<Raffaello & La Fornarina>
불세출 거장의 요절이 이루지 못할 사랑의 아픔으로 인한 것임을 안 후대의 거장들이 이런 사랑의 밀어를 패러디하여 만든 작품들이 많다. 위의 첫 번째가 장 앙리 말레(Jean Henry Joseph Marlet)가 그린 <Raffaello and La Fornarina>이다. 라파엘로가 애인이자 모델인 빵집 딸 루티의 상의를 벗긴 채 무릎 근처에 당겨 안고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고 있는데, 캔버스에는 멋진 누드화가 완성되어 가고 있다. 아래의 작품은 장 오귀스트 앵그르(Jean Auguste Dominique Ingres)의 같은 작품이다. 애인이자 모델인 루티를 아예 두 팔로 지그시 안고 느긋하게 즐기는 모습이다. 또 다른 작품에도 한 팔로 포근하게 안고 캔버스를 보는 구도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그림에 융단이 깔린 교황의 빈 의자가 그들을 지켜보는 구도이다. 이로써 당시 라파엘로의 처지를 상상할 수 있다. 그는 이 작품을 몇 점이나 그렸다. 명장을 패러디하는 게 곧 따라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아니면 그도 그런 달콤한 사랑의 대상을 마음속으로 찾고 있었을까? 그나마 말레와 앵그르의 작품은 신사적인 패러디로서 지하에 묻힌 선배 거장 라파엘로도 흐뭇해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현대의 천재적인 악동 거장인 피카소에 이르러서는 생각이 확 달라진다.
<Raffaello & La Fornarina>
아래의 첫 번째 작품의 주인공은 라파엘로가 아니라 피카소 자신 같아 보인다. 무대를 화실이 아닌 침대로 변경하여 발가벗고 성행위를 하는 광경이다. 하지만 악동 환쟁이의 근성은 버릴 수 없어서 붓과 팔레트는 놓지 않고 있다. 도리어 침대 밑에 숨어서 훔쳐보는 사람이 라파엘로처럼 애처로워 보인다. 두 번째의 작품에는 성행위가 좀 더 적나라하다. 여성 상위 체위에 여성이 스스로 유방을 애무하고, 남자의 성기가 막 여성에게 진입하고 있는 상황이다. 화구를 들고 있는 것은 똑같다. 그런데 이들을 지켜보는 엄중한 눈길이 있다. 앵그르가 교황의 빈 의자로 암시만 했다면 피카소는 아예 염라대왕 형상의 교황이 두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고 있다. 중세에 성직자도 결혼하거나 교황도 몰래 사생아를 낳았다는 전설도 많지만, 근엄한 사제의 황제인 교황이 지켜보는 데서 방자한 사랑놀음이라니. 정말 대담하고 발칙한 악동 거장 피카소의 패러디이다. 거장은 이 정도가 되어야 거장 값을 한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