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가 날리고 옷감 더미 사이에서 몸을 웅크린 채 재봉틀을 돌리고 손바느질한다. 끔뻑끔뻑 졸려도, 꼬르륵 배고파도, 가족이 보고 싶어도 참고 일한다. 어린 나이에 재롱부리거나 어리광 부리지 못한다. 기침하고 피 토하고 생명이 닳아 없어지면 가차 없이 잘린다. 고된 노동의 대가도 인정도 받지 못하고 죽어간다. 평화시장에서 일했던 미싱사와 시다 이야기다. 이들의 삶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던 사람이 있다. 바로 전태일이다.
어린 시절 부모님과 동대문시장에 왔을 때 전태일 동상을 본 적 있다. 자기 몸에 불을 냈다는 말에 겁먹었다. 자세히 알기가 두려워서 기억 저편에 묻어두었다. 그러다 작년 초 작문공동체 삼다 지정도서 중 『전태일 평전』을 읽었다. 읽다가 멈추고 읽다가 멈추기를 반복했다. 제대로 마주하지 못했던 전태일을 만났다. 그는 긍휼함이 넘치고 사랑이 참 많은 사람이다. 미싱사와 시다를 돕기 위해 재단사가 되었지만, 사장 아래에서 힘쓸 수 없었다. 근로기준법을 알게 되어 노동청에 고발했지만, 반응이 시큰둥했다. 신문 기사로 냈지만 그때뿐이었다. 법, 언론 등에 좌절을 겪으면서 얼마나 절망했을까. 그런데도 계속해서 사람을 모으고 목소리를 냈다. 데모했다. 그리고 있어도 쓸모없는 근로기준법을 태우면서 함께 불탔다. 너무 마음이 안 좋았다. 그저 읽고 끝내기 싫어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는지 생각해 봤다. 계속 떠오르며 마음에 안착한 구절이 있다. "대학생 친구가 하나 있었으면 원이 없겠다"
학교를 몇 년 못 다닌 태일은 근로기준법에 나오는 법률용어들을 이해할 수 없어서 답답했다. 나는 이제 대학생이 아니지만 그래도 태일이 같은 절실한 친구 곁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가 배운 것으로 할 수 있는, 좋아하는, 오래 할 수 있는 교육봉사를 찾았다. 마침 종로 꿈드림 센터에서 멘토를 찾고 있었다. 그렇게 학교 밖 친구들에게 검정고시를 가르쳐주게 됐다. 처음에는 잘 가르칠 수 있을까, 아이들과 잘 지낼 수 있을까 걱정했다. 감사하게도 걱정이 무색하도록 재밌게 지낸다. 나와 멘토링하는 친구가 멘토링하는 날이 제일 좋다고 말해주었을 때 뿌듯했다.
누군가는 "그 시간에 직장을 하나 더 다녀야 하는 거 아니야? 차라리 과외를 해"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시간 계산하고 따지면 돈을 더 벌 수도 있고 내 직장 생활에 필요한 스펙 쌓기를 더 할 수도 있을 거다. 그렇지만 나는 나의 삶을 살고 싶다. 후회 없이. 저번 이별을 제목으로 쓴 글에서 말한 게 이어진다. 오늘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 삶에서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당당한 삶을 살고 싶다.
고등학생 때 목사님께서 십일조에 관해 이야기해 주신 적이 있다. 지금 적은 돈으로 십일조를 못 하면 나중에 많은 돈도 십일조를 못 한다고. 그래서 연습하고 습관을 들였다. 이후 내게 주어진 게 전부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걸 배우면서 십일조는 아까운 게 아니라 감사의 표현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래, 내가 건강한 육신으로 돈을 버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다. 시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내게 주어진 시간도 은혜이니 쓰임이 필요한 곳에 그때마다 적절히 잘 써야 한다. 지금 시간을 내지 않는데 어떻게 나중에 시간을 내겠는가. 더 바빠지고 시간이 아까워질 텐데.
어쩌면 내가 할 일은 제대로 알고 기억하고 살아내는 것이 아닐까. 내 방식대로 오늘도 한 걸음 태일의 길을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