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더 잘하고 싶어 먹은 약

by 와이

각성 효과가 있는 우울증 약


나는 욕심 많은 워킹맘이다. 회사, 육아, 박사과정을 병행하고 있었다. 박사과정에 입학한 지 어느덧 10년이 다 되어가는데 논문을 쓰지 못했다. 직장일을 하고 아이를 봐주고 나면 졸려서 박사 논문은 쓸 엄두가 안 났다. 아주 오래전 의대를 다니는 고등학교 동기가 정신과 의사들은 시험기간에 ADHD 약을 자기가 자기한테 처방해 먹는다는 진짜인지 헛소문인지 모를 이야기가 생각났다. 정신과를 찾아갔다. "선생님, 제가 너무 피곤해서 박사과정 논문을 써야 하는데 잠만 오고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 회사에도 겨우 가요. ADHD 약 먹으면 도움 안 되나요?" "뇌파 검사를 해볼까요?" 뇌파검사 결과 ADHD보다는 우울증에 가깝다며 각성 효과가 있는 우울증 약을 처방해 주었다.


그 약을 먹으면 몸이 착 가라앉는 느낌이 난다. 입맛이 없다. 잠이 잘 안 온다. 이 당시에는 이게 좋은 것인지 알았다. 입맛이 없으니 살도 빠지고 잠이 안 오니까 논문을 쓸 시간을 벌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약이 나의 뇌를 민감하게 만들 것이라고 생각지 못했다. 어떤 날은 실수로 두 알을 한꺼번에 먹었다. 머리가 어지럽고 눈앞이 하얘지더니 숨이 가빠왔다. '어떡하지? 병원에 가야 하나?' 한두 시간 지나자 증상이 가라앉았다. '휴, 이거 정말 큰 실수 했다. 뇌가 삥 돌았는데... 괜찮은 걸까?'


당시에는 몰랐다. 이 약이 나의 뇌를 과민하게 만든다는 것을... 이 약을 먹으면서 나는 남편이랑 자주 싸웠다. 싸우는 날이면 나는 어김없이 경찰에 신고를 했다. 이 약을 먹으면서 뇌가 과민반응하게 바뀐 것이다. 정신과 약은 사람마다 부작용이 다르다. 공통적인 부작용도 있지만 개인마다 특이한 부작용을 나타내기도 한다. 분명한 건 정신과 약은 기분과 감정, 신체반응을 조절한다.


정신과 약물은 과욕이었다. 나는 직장과 육아로 뇌가 과부하 상태였다. 나의 체력과 뇌의 용량은 거기까지였다. 용기 있게 박사과정을 졸업한다는 계획을 내려놓았어야 했다. 과부하가 걸린 나의 뇌는 각성 효과가 있는 약으로 한 번 더 충격을 받았고, 나는 남편을 경찰에 신고할 정도로 신경질적인 사람으로 변했다. 그리고 잠을 잘 자지 못해서였을까, 알약을 두 개를 한꺼번에 먹고 난 후유증이었을까, 아니면 조울증의 징후였을까, 원인은 알 수 없지만 낮 동안 총명함을 잃어버렸다. 한 번은 후배와 함께 커피를 마시러 갔다. "뭐 마실래?" "콜드브루요" "응, 따뜻한 거?" 후배가 갑자기 인상을 찌푸렸다. "네? 콜드브루라니까요?" 식당에서도 세 명이 먹은 음식값을 계산해 내지 못했다.


각성 효과가 있는 ADHD 약


집에 ADHD 약이 있었다. 아이가 ADHD 성향을 보여 아이가 먹을 약이었다. 그러나 아이는 ADHD 약을 먹자마자 크나큰 부작용을 보였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의 눈망울이 음울하고 공포에 떠는 눈빛으로 변하더니 손발이 차가웠다. 일기장에는 심장이 두근두근한다고 적어둔 게 아닌가. 바로 중단해야 했다. 그리고 처방받은 약이 집에 남아 있었다. 집중력에 좋다던데 내가 먹어볼까? 나는 아이보다 몸무게가 많이 나가니까 별 이상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첫날 기분이 상쾌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시야가 밝아졌다. 직장이 끝나면 집에 와서 늘어졌는데, 퇴근 후에도 집안일을 너끈히 해냈다. 정신과를 찾아갔다. "선생님, 제가 지금 ADHD 약을 먹고 있는데, 많은 도움을 받고 있어요. 처방해 주세요."


그렇게 ADHD 약을 먹으면서 나는 내가 예민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어릴 적 내 별명은 감정이 무뎌 목석이었다. 험담이나 불만이라는 것도 몰랐다. 선생님과 부모님, 직장 상사 말씀에는 항상 순종했고, 다른 사람을 욕하는 일도 없었다. 그런 내가 변했다. 팀장님에게 대들고, 팀장님을 욕하고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후배들과 트러블이 생겼다. 그리고 알 수 없이 불안도는 극도로 높아졌고, 밤새 두근거리는 심장 때문에 119를 부르고, 어느 날에는 응급실에 갔다. 급기야 사직서를 내는 날도 찾아오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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