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먹고 새로운 직장에 입사하다

by 와이

약을 먹고 3개월쯤 되었을까, 새로운 직장을 구했다. 이전 직장과 유사한 업무를 하는 같은 업종이었다. 나는 나이도 많고 직장을 퇴사하고 쉬고 있는데 합격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필시 나의 꽤 화려한 이력들이 도움이 된 것 같았다. 당시 약을 먹고 눈물을 흘리지 않게 된 지 얼마 안 되고, 가슴이 많이 두근거리던 시기였는데 용기 있게 새 직장에 지원을 했다.


새로운 동료들은 활기차고 친절했다. 작은 회사였지만 국가적으로 중요한 일을 감당하는 곳이었다. 같은 부서의 여자 부서장과 여자 후배가 에너지가 넘치고 배려심이 많아 나의 마음도 따뜻해졌다. 다른 부서원들도 좋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전 직장에서 격앙되어 있었던 내 모습과 비교되어 반성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각성제들을 먹지 않고 박사과정을 포기했었어야 했는데, 그랬다면 나는 이전 직장 생활과 가족과의 일상을 무리 없이 소화했었겠지...


나는 매일 아침 바닐라라테를 먹었다. 조울증 약과 카페인의 조합이 안 좋을 텐데, 나의 경우에는 바닐라라테가 삶의 활력소가 되어 주었다.


그런데 두 번째 직장에서도 문제가 터졌다. 나는 아침마다 가슴 두근 거림에 시달려 회사에 출근하기 힘든 적이 많았다. 9시부터 10시까지 휴가를 내는 횟수가 늘어났다. 프로젝트 보고 일자가 잡힐 때는 가슴이 두근거려 일을 할 수가 없었다. 부서장에게 얘기했다. "저 공황장애 같은 증상이 나타나 이번 보고자료를 만들 수가 없을 수 같아요."라고 말했다. 당시 나는 정규직 전환 조건부 계약직이었다. "제가 정규직 전환이 안될 수도 있겠지만 지금 공황장애 증세가 심해서 말씀드려요. 하지만 최선을 다해볼게요. 만약 최선을 다해도 공황장애가 나아지지 않으면 정규직 전환이 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부서장은 나를 따뜻하게 배려해 주었다."약은 먹고 있나요? 제가 도와줄게요. 도장 깨듯이 이번 보고자료 같이 완성해 봐요. 그렇게 도장을 하나씩 깨나 가면 괜찮을 거예요." 업무에 대한 열정과 책임감이 강하고, 부서원 한 명 한 명 세심히 챙기는 분이었다. 나도 아프지 않았고 이런 멋진 커리어우먼이 되었더라면 하고 서글픈 마음도 들었다.


프로젝트 보고는 다행히 큰 사고 없이 끝났다. 나 혼자 단독으로 하는 일이 아니고 다른 기관과 협업을 한 덕분이었으리라... 그리고 부서장이 적극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메꾸기 위해 노력한 덕분이다. 모든 분들에게 감사했다. 그런데 다음에 또 이런 보고가 잡히면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나는 원래 일하는 것을 좋아했다. 나에게 중요한 일이 떨어지기를 바라고 헤쳐나가는 과정을 좋아했다. 대신 사내 정치에는 무관심하고 때로는 눈치가 없어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멍청하게 일만 많이 하는 스타일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눈치 없이 일을 많이 하고 혼난 적도 종종 있었다.


사내 정치에 무관심한 대신 나는 나의 육아에 몰입하고 있었다. 나에게 주어진 일만 잘 처리하면 아무 문제없을 거야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부여된 임무가 완성되면 칼퇴했다. 다른 동료가 야근을 하던 일이 많다고 아우성을 치던 그건 부서장의 몫이지 나로서는 어린이집에서 엄마 오기만을 기다리는 아이의 눈망울을 얼른 마주치는 것이 급선무였었다. 이것이 문제였던 것 같다. 아이의 눈망울을 30분 늦게 보더라도 동료와 30분 있어 주었더라면 나를 이해해 주는 나의 편을 확보할 수 있었을 텐데 사회생활의 실패였다.


새로운 직장에서 하는 일은 새로운 사업을 개척하는 일들인데 나는 이런 일들을 좋아한다. 그러나 나는 내가 조울증을 앓기 전과는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힘든 느낌, 이건 정말 말로 표현하기가 힘들다. 의사는 이것을 "기능이 퇴행할 수 있어요."라고 표현한 것 같다. 두려움이 몰려왔다. 이런 느낌이 퇴행한다는 걸까? 나는 이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거지...?


내가 믿는 신에게 절규했다. 하나님, 저 이제 어떻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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