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해후

추억은 선물이다.

by 봄비가을바람

오늘 들른 집에서 맞닥뜨린 반가운 문물.

오랜 추억을 소환한 물건은 선물용으로 시판되던 병주스의 병이었다.

더구나 외국 사람이 어떻게 알고 있을까.

물론, 한국인 가족이 알려 주었겠지.

반색을 하며 사진을 하나 찍었다.

"선생님, 많이 있어요. "

싱크대 위장을 여니 하나하나 에어캡, 뽁뽁이로 포근히 감싼 큰 주스병이 여러 병이 있다.

그리고 하나 가져가시라고 주섬주섬 싼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다음에 가져갈게요."

민폐일 수도 있고 선생님이 뭔가를 받을 수 없으니 "다음"이라는 말로 부드러운 거절을 했다.

아직 한국어가 유창하지 않고 다양한 한국 문화를 모두 이해하는 건 아니라서 자세히 설명은 못 했다.

추억의 주스병이 이제는 추억은 빼고 물병의 기능만으로 판매되는 상품으로 대면하니 추억이 방울방울, 몽글몽글 거리다가 쏙 들어가 버렸다.




"뜻박의 해후"는 모처럼 함박눈에 강추위까지 몰고 온 겨울다운 날씨와 함께 추억을 제대로 소환했다.

겨울에는 마당에 눈이 쌓이면 새벽에 할아버지가 한차례 눈을 치우시고 아침에 우리 4남매를 깨워 또 한차례 치웠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눈을 제대로 치우는 건 아니지만 겨울 풍경과 어울리는 추억이 되었다.

야단법석 일어나 양말, 장갑, 모자까지 단단히 무장하고 아빠 뒤를 따라 눈을 치웠다,

마당 한쪽에서 오래전부터 집을 지키고 있는 소나무 옆에 눈사람을 만들었다.

쓰고 있던 모자, 끼고 있던 장갑과 목도리까지 눈사람에 양보하고 바지자락에 있는 눈을 탁탁 털고 집으로 들어서면 엄마는 보글보글 청국장을 끓이고 고등어자반 지글지글 기름내로 아침 배를 자극했다.

할아버지 모셔오고 손, 발 깨끗하게 씻고 말끔히 세수한 후 로션을 듬뿍 동생들 얼굴에 바르고 하나둘 밥상 앞으로 앉혀 놓는다.

밥상을 두 개 펴고 반찬과 숟가락, 젓가락을 차례로 놓고 밥그릇, 국그릇도 나란히 줄을 맞춘다.

아침 일찍부터 서두른 엄마의 손에 냄새마저도 꼬르륵 소리를 진동하게 한다.

"에헴, 먹자."

할아버지께서 첫술을 뜨시면 남동생 엉덩이도 슬금슬금 움직인다.

엄마의 미소 섞인 제지와 우리 세 자매의 "그만해라." 눈짓에도 남동생의 밥 숟가락 위에 어느새 할아버지께서 부드러운 고등어 뱃살을 노릇하게 올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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