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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가을바람 Apr 27. 2024

라벤더 향기 1

불면

 베란다 쪽 커튼이 조금 열린 창틈으로 바람에 따라 산들산들 흔들리고 있었다.

나른한 주말 오후 거실 안으로 비스듬히 햇살이 스며들며 몸은 소파 안으로 파고들었다.

일어나야 하는 시간은 다가오는데 마음과 달리 몸은 점점 무거워졌다.

조금씩 잠 속으로 빠져들어 살랑이는 커튼이 눈앞에서 흐릿해졌다.



 여울은 지난 몇 주 동안 매일 불면의 밤을 보냈다.

잠을 청하려 여러 방법을 써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본래 불면증이 있는 건 아니었다,

무슨 일인지 갑자기 생긴 불면증으로 여울은 잠을 자기 위해 고군분투를 했다.

이유라도 알면 살겠는데 도무지 이유조차 알 수가 없었다.

갖은 방법을 생각한 끝에 아로마 테라피를 해보기로 했다.

잠을 스르르 오게 하는 허브를 추천받았는데 여울도 처음부터 라벤더에 마음이 갔다.

수면 효과에 좋다는 감언을 듣기 전에 눈으로 들어오는 보랏빛 색이 향기마저 보랏빛으로 느껴졌다.

당장 잠이 급해서 라벤더 오일을 베개와 머리맡에 있는 인형에 조금씩 뿌려놓았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모든 긴장을 풀어헤친 잠옷으로 갈아입고 폭신한 이불속으로 살며시 들어갔다.

캄캄한 방안이 나을지, 은은한 조명이 나을지 고민하다가 불을 꺼도 잘 자던 예전처럼 방안의 불은 끄기로 했다.

이불속에서 꼼지락거리던 발가락이 조금씩 멈추고 이불을 꼭 쥐고 있던 손가락이 하나둘 힘이 풀렸다.

그리고 눈꺼풀도 슬며시 문을 닫았다.





<대문 사진 포함 출처/Pixabay>




 몽롱한 머릿속이 뒤죽박죽 엉켜서 눈앞도 뿌옇게 보였다.

공간을 가늠해 보려 애썼지만 모든 감각이 멈춰버린 것처럼 아무런 작동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걸음만은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공간도 시간도 뒤엉킨 곳에서 발걸음만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여울은 누군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도움을 요청하러 목소리를 내어보았지만 소리가 입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아니, 입도 움직이지 않았다.

한참 걷던 흐느적거리는 걸음이 갑자기 멈췄다.

희미한 앞이 안개가 걷히듯 환해지며 공간이 드러났다.

한 발만 앞서면 떨어질듯한 낭떠러지 위에 여울이 서 있었다.



 간신히 정신을 가다듬고 온몸에 힘을 주고 한 걸음 한 걸음 뒷걸음질로 낭떠러지를 벗어났다.

아까와는 달리 머리가 조금씩 아지며 몸도 여울이 조정할 수 있었다.

마치 조금 전까지 누군가의 조정에서 벗어난 것처럼 몸이 올가분해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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