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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바쓰J Apr 21. 2022

[인사] 안면 없는 라이킷 & 안면 있는 묵언응원들에게

누구에게 무엇이든, 오늘도 브런치를 차립니다.

<커버 이미지-서울 근교 한 카페의 브런치 한 상>

살아 있었냐고-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동문회 선배에게 그간의 일을 또 어디서부터 어찌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브런치로 대신 밀린 이야기를 전했다. 선배는 내 소식도 놀라웠지만, 잘 아는 사람을 글로 만나는 느낌이 전혀 다름에 또 놀랍다고 했다. 그러더니 당장 브런치를 함께 하자며 나를 납치해(!) 교외의 멋진 카페로 데려갔다.

예쁘게 차려진 브런치 한 상이, ‘사느라 고생 많다-맛있는 한 끼 먹이고 싶다’, 는 그의 마음을 대신 전해주는 것 같아 고마웠다.

인생이 던진 커다란 물음표 앞에 어쩔 줄 모르고 서 있는 나에게, 따뜻하면서도 냉철한 조언을 해주고 응원도 해주는 그런 사람들이 있어 나는 다시 잘 일어나고 있다고 믿는다. 브런치를 통해 만나는 모든-얼굴 모를 사람들과 얼굴 아는 사람들의 마음 덕분에도.






마구 엉킨 실타래를 풀듯


삶이 출구 없는 미로같이 느껴졌을 때, 내 머릿속과 마음속은 엉망진창으로 엉켜버린 실타래 같아졌다. 한동안 도대체 뭘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막막함 속을 계속 헤매었다.

과부하된 컴퓨터가 아무런 작동을 못 하고 얼어버리듯, 나도 그렇게 됐다.

결국 나는 강제 종료 후 재부팅이 되었고, 이전에 평범하게 돌아가고 있던 것들을 되찾는 작업을 하고 있다. 어떤 하던 것은 다시 이어하기도 하고, 다른 어떤 것은 아직 완전히 접어진 채로 있으며, 또한 새로운 것들을 시도해 보고도 있다.


암흑 속에서 희미한 빛줄기를 다시 보게 되었을 때, 나는 ‘쓰기’를 시작했다. 그 엉킨 실뭉치를 찬찬히, 한 올 한 올 풀어가는 심정으로.

때때로 이제 겨우 바닥으로 가라앉았나 싶은 흙탕물 속 진흙들을 다시 휘적거리는 것처럼, 도로 온통 뿌옇게 되는 순간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건, 다시는 그렇게 혼탁해지지 않기 위해 필수로 거쳐야 하는 여과의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헝클어진 머리와 마음을 정리하기 위한 글쓰기란 그런 것이었다.



나를 위한 쓰기가 당신에게


가장 먼저 나를 위한다고 쓰는 글이, 나를 아끼는 사람들의 가슴을 후벼 팔 것 까지는 미처 생각지 못 했다. 맞다, 나는 나만 생각했고, 시간이 조금 지나서야 알았다. - 이 인사의 글을 하나 쓰고 싶어진 이유이다.


내 잠적의 시간 동안 일어난 일들을 갑작스러운 홍수처럼 듣게 된 가까운 이들이… 울었다. 나는 울지 않는데, 그들은 울었다.

가슴이 아파서, 몰라준 것이 미안해서 눈물이 난다고 했다. 아픔을 톺아내는 것 같은 글들 끝에서 차마 ‘좋아요’가 눌러지지 않는다고 했다.

어쩐지 내가, 나의 글이 미안해졌다.



‘너의 글을 읽고 있어.’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기도 해.’

‘내가 몰랐던 세상을 경험시켜 주고 공유해 주어서, 홀로 견뎠을 시간들을 담담히 꺼내 놓아주어서 고마워.’



내가 직접 브런치를 공유해 준 몇몇 사람들은 새로 올라온 글을 읽고 종종 내게 안부와 소감을 전해준다. 그런데 얘기를 듣고 보니, 정말 나의 벗들은 좀처럼 ‘라이킷’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차마 좋아요, 할 수 없는 지난 이야기들을 들으며 그들은 그저 말없이 묵묵히 나를 바라봐 주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온 마음으로 응원을 보내면서.


이 넓은 ‘브런치’ 식당에는 일면식도 없는 수많은 요리사들이 그만의 솜씨로 다양한 브런치를 차려낸다. 각자의 경험과 통찰력에서 비롯된 삶에 대한 지혜와 지식과 재치를 나누어 주고 있다. 그런 배움 뿐 아니라, 사람이 기꺼이 서로에게 서로를 내어 놓는 그 자체로 누군가에게 큰 위안을 준다는 것을 이곳의 모든 ‘브런치 요리사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얼굴을 모르는 누군가들이 라이킷 하트로 그리고 간간히 댓글로 위로와 응원을 건넨다. 그렇게 늘 평탄하지만은 않은 인생길을 함께 걸어가는 이들이 세상에 많이 있음을 기억하게 해 준다.





울지 말고, 기뻐하길


이제는 연락할 수 있을 만큼, 말해줄 수 있을 만큼, 덤덤하게 내보일 수 있을 만큼 - 많이 돌아왔고, 괜찮아졌다고 생각해주면 좋겠다. 그러니 가슴 아파하거나 울지 말고, 기뻐해 주기를 바란다.


누구에게 무엇이 되든 아픔은 되고 싶지 않다.

그런 아픔만 빼고,

누구에게 무엇이든, 나는 오늘도 브런치를 차린다.


안면 없는 당신의 라이킷 하트와

안면 있는 당신의 묵언응원에

진심으로 감사하면서.

잘 살아내었고,

살고 있고,

또 살아갈 것임을 약속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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