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나는 아버지를 부장으로 만들었다

by Yu다움

1장. 일상의 작은 위로들

불편함 속에 숨어 있는 진짜 위로.

불편하고 낯선 감정들이, 결국 나를 가장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Episode 3. '가족', 나는 아버지를 부장으로 만들었다.>


아버지의 검고 두터운 손이 눈에 들어온다. 손가락 끝의 모습은 발가락을 연상시킨다. 손톱마저도 뭉뚝하고 두껍다. 지금 나보다 더 어린 나이부터 4형제를 키워온 삶의 흔적이다.


언젠가 부모의 희생적인 삶과 그 자식들을 모습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시간이 퇴적되고 기억이 침식되어 전체적인 내용은 가물거리지만 오롯이 기억나는 한 장면이 있다. 마지막 자녀들의 인터뷰 컷이다. 자식들은 부모님들의 삶이 자랑스럽다며 물먹은 눈과 행복한 웃음을 짓는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손자, 손녀들이 '까르르' 하며 신나게 뛰놀고 있다. 아이들의 노는 모습은 점점 슬로모션으로 변하며 세월의 풍파를 그대로 맞은듯한 두 노인의 주름진 얼굴이 클로징 되면서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간다.


20대 중반이었던 나는 부모님의 희생과 삶을 자랑스러워하는 자식들의 인터뷰에 공감하려 애썼고, 공감한 척했었다. 자식이 부모님의 삶을 자랑스러워하는 건 당연한 거고, 마땅한 도리였다. 적어도 내 생각은 그러했다. 좀 더 솔직히 표현하면 사회적 인식에 맞춰 '나도 그렇게 생각하려고 노력했다'가 더 마음을 담은 답변이지 싶다.


10년이 훌쩍 지나서 나 자신에게 다시 솔직히 물어본다. '부모님이 자랑스럽나?'

부모님을 사랑하고, 당신들의 삶을 존중하고 그리고 4형제를 반듯하게 키워주신 삶에 존경을 표하지만 자랑스러운 마음은 좀 어색한 감이 있다. 시간이 더 흘러 나 같은 자식을 키우고 나면 생각이 변할지도 모르지만 아직 나에게 친숙한 감정은 아니다. 요즘 부모님에 대한 내 감정의 가장 큰 포지션은 미안함과 안타까움이다. 많이 드리지 못해서 미안하고, 내 삶이 우선인 이기적인 아들이라 신경 쓰지 못해 더 죄송스럽다. 볼 때마다 점점 굽어가는 등과 좁아지는 어깨, 얇아지는 다리를 볼 때면 마음 한편이 먹먹하다. 그러면서 본인들 생각보다 자식들 걱정을 쏟아내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마음속에 휘몰아치는 감정의 덩어리를 주체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사소한 걸로 예민해져 차가운 얼음덩어리들을 부모님께 던지곤 한다. 그리고 이내 후회한다.





30년 전 9살 소년의 모습이 생생히 기억난다.

2학년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1학년때도 그랬듯 올해도 지옥의 시간이 있다. 바로 오늘이다. 오늘은 '가정환경조사서'를 내는 날이다. 왜 선생님들은.. 학교는 우리 집안 사정이 궁금한지 도대체 모르겠다. 우리 가족이 몇 명인지, 우리 집이 어떤 집이고 몇 평에 살고 있는지, 아버지의 직업이 뭔지, 아버지의 직급은 왜 알려고 하는지 9살인 나는 알 방도가 없다. 다만 나는 시시콜콜한 우리 가정스토리, 현관도 없고 화장실은 집 밖에 있는 우리 집, 남들이 노가다라고 부르는 우리 아버지의 직업을 그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다. 9살이지만 알건 다 안다. 내 상황을 진실되게 말하면 누군가 날 무시할 거란 생각이 본능적으로 들었다.


나는 키가 크지 않은 편이다. 세 번째 줄에 앉아 있다. 맨 뒤에 있는 친구가 '가정환경조사서'를 하나씩 수거해 온다. 누구도 내용을 알거나 관심조차 없지만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친다. 다시 한번 '가정환경조사서'의 글자를 확인해 본다. 아버지 직업 '건설업', 직급 '동부건설 부장'.. 또렷이 보인다. 그렇게 나는 아버지를 승진시켜드렸다. 아버지는 더 이상 공사판의 목수가 아니다. 꽤 괜찮은 기업의 부장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아버지 나이에 부장이란 직급은 어울리지 않는다. 아마도 담임선생님은 내가 늦둥이 거나, 굉장히 능력 있는 젊은 아버지의 아들로 여겼을지도 모른다. 아.., 9살짜리가 동부건설이란 회사와 부장이란 직함을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해할지도 모르겠다. 동부건설은 어딘가에서 본 기억나는 회사 이름이었고, 어린 마음에 대리나 과장은 굉장히 낮은 직급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드라마에서 사람들이 높여 부르는 아저씨의 직급을 도용했다. '부장님!'


나는 11살이다. 학급 반장이고 꽤 인기가 있는 편이다. 공부도 물론 곧잘 하는 편이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이 우리 집에 가서 놀자고, 애들처럼 졸라대지만 능숙하게 거절한다. 아무도 내가 현관문이 없는 엄청 깊은 지하실에 사는 줄 모른다. 난 절대로 우리 집을 친구들한테 알려주지 않을 거다. 한 번은 친구 몇 명과 집 근처 시장골목을 지나고 있었다. 저 멀리서 낯익은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엄마다. 행색이 후줄근하다. 친구들한테 엄마를 보여주기가 부끄럽다. 그렇게 엄마를 모른 채 했다. 엄마도 날 못 본 척했다. 안심이 됐다. 28년 동안 한 번도 서로 그때의 얘기는 하지 않았다. 지금 나처럼 엄마가 그때를 기억할지는 모르지만 28년 전 젊은 엄마에게 굉장히 미안하다.


난 발칙한 초딩있었다.




사실 알고 있다. 질문이 잘못됐다는 걸, 이 모든 감정들은 내가 부족해서 생기는 감정이란 걸.'부모님이 자랑스럽나?'가 아니라 '넌 부모님한테 자랑스러운 자식이니?'가 맞는 질문이다. 어렸을 적 부모님에 대한 죄송함. 지금 내가 부족해서 생기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부모님 핑계를 대고 있다. 비겁한 변명이다.


부모님은 나에게 원래 자랑스러운 존재이다. 그건 변하지 않는 진리이다. 처음부터 그랬었고,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나는 그날, 아버지를 부장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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