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먹어간다는 사실을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20대는 이제 추억으로만 간직할 수 있는 헤어진 연인이 되었고, 20대에 꿈꾸었던 나의 30대는 이제 그 기억조차 가물거린다.
인지하지 못했을 때 찾아오는 공포감을 아는가? 20대에 단지 조무래기에 지나지 않았던 나이란 놈은 30대가 되면서 내 제일 앞자리에 서서 시야를 가리는 방해꾼이 되었다. 이따위 놈보다 나를 더 짜증스럽게 만드는 건, 어떤 모습일지, 어떤 성격일지 모르는 *새로운 연인을 찾으며 30대 중반에 접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쁘고 착한 여자를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부담감, 그리고 두려움이란 놈들은 애당초 내가 무서워하는 놈들이 아니다. 내가 가장 두려운 건, 새로운 연인을 만났을 때, 내가 그 사람을 진정 좋아하는지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을 때 오는 불안감 패거리들이다.
막연하고, 모호해서 손에 잡히지 않는 감정들. 그것들이 나를 뒤흔들고, 한 발자국을 내딛는 걸 어렵게 만들었다.
그런 불안한 마음을 안고, 5년 전 나는 혼자 한 달 정도 배낭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사진 찍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SNS도 즐겨하지 않는다. 여행지나 음식점에서도 사진을 거의 찍지 않았다. 그러면서 혼잣말로 ‘난 그냥 그 순간을 만끽하는 거 자체가 좋아.’ 꼴값이다. 사진 찍는 것조차도 그 순간을 만끽하는 일부로 느꼈으면 됐는데, 게으름에 대한 핑계와 자기 합리화였다.
그래도 여행 중엔 남들처럼 카메라를 들었다. 추억을 남겨야 한다는 막연한 의무감 때문인지, 그냥 멋쩍어서인지 모르겠지만, 한 달 동안 무심코 셔터를 눌렀다. 그렇게 쌓인 사진이 수백 장이나 됐다. 하지만 제대로 된 사진은 거의 없었다. 흔들리거나, 초점이 맞지 않거나, 도대체 뭘 찍으려 한 건지 알 수 없는 사진들 투성이었다.
사진에 추억을 담으려고 했던 게 아니라, 사진 찍는 행위 자체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나 싶다. 내가 중심이 되었던 게 아니라 남들이 하던 행위들을 막연하게 따라 했던 거 같다. 아무런 목적도 없이.. 사진 내면에 부끄러운 나의 모습이 담겨있다. '아무런 목적 없는 막연한 삶, 막연한 기대, 행선지 없는 그냥 열심.' 그리고 그게 부끄러웠다.
여행의 막바지, 베트남 하노이에 앉아 이런 생각을 했다. 왜 한 번도 역사에서 무언가를 배우고 시대적 변화의 흐름에 맞춰 중요한 결정을 하지 못했을까? 안타깝게도, 유난히 경험의 시뮬레이션을 통해 무언가를 배우고, 그것들을 통해 어떤 결정들을 내렸던 내가 있었다.
여행이 끝날 때쯤엔 뭔가 커다란 변화(하고 싶은 일, 어떻게 살아야 할 지에 대한 해답)가 생기겠지?라는 거창한 기대를 안고 시작한 1달의 여행이었지만, 여정이 끝나가는 이 시점에 명확한 해답을 얻지는 못했다.
다만 여행하면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보았다. 급성장의 시대변화의 흐름에 많은 기회를 가지고, 그 속에 안착해 소멸되지 않을 것 같은 부를 축적하는 사람들, 기회를 인식하고 거기에 탑승하려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 그리고 그 의미, 필요성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
아무런 목적도 없이 막연한 기대만 가지고 그냥 열심히 살았던 내 모습이, 세월이 지남에 따라 변해갔던 내 생각의 양상들이 여기 사람들의 삶을 통해 마치 퍼즐조각 맞춰지듯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어떤 생각을 하며 살고 있었지?’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지?’ ‘앞으로는…?’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너무 어렵다.
하지만 그 불확실한 순간들이 나를 위로했다. 하노이의 작은 서점에서, 먼지 쌓인 책장 사이로 우연히 집어 든 The Secret은 말했다.
“You have the power to change anything because you are the one who chooses your thoughts. See the things that you want as already yours.”
이 말은 내게 작은 용기를 주었다. 새로운 연인을 만났을 때의 불안, 낯선 거리에서 길을 잃었던 순간, 그 모든 불확실함은 나를 지금 여기로 이끌었다. 명확하지 않아도, 모호해도 괜찮았다. 해답이 없다는 사실이 나를 좀 더 가볍게 했다.
지금도 불확실하다. 하지만 나는 오늘도 그 위에 나를 세우고 있다. 그 낯선 순간들이 나를 위로했고, 불안은 여전히 나와 함께하지만, 이제는 그 불안과 함께 내일을 그려간다.
*이쁘고 착한 여자: 좋은 기회, 좋은 직장, something good 등
*새로운 연인: 새로운 기회, 직업, 사람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