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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을 그립니다 미내 Dec 13. 2023

고양이의 입장

<Tiny> 15cmx20cm_ sharppencil & watercolor on paper_ 2021_ 윤미내


결혼 전에, ‘누피’라는 개를 키웠다. 그 당시 친정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기에 내가 키웠다기보다는, 친정 부모님이 나도 키우고 누피도 키운 것이라고 해야 맞는 말이겠다. 모름지기 키운다는 것은, 먹이고 챙기고 아픈 곳도 돌봐주며 일상의 많은 부분을 관리하는 것인데, 나는 누피를 예뻐만 했을 뿐이지 키운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사람 수명을 100년이라 놓았을 때 개나 고양이의 수명 20년과 비슷하다고 하던데, 누피는 18년 동안 큰 병 없이 장수하며 살다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결혼 후, 나는 사람 딸 한 명과 고양이 아들 ‘티니’를 키우고 있다. 태어난 지 약 3주 정도 된 업둥이 티니를 가족으로 받아들인 후, 고양이 키우는 방법을 인터넷과 유튜브, 지인을 통해 열심히 공부하며 키우기 시작했다. 누피와 함께 살 때와는 다른, 진정한 보호자가 되어 키우는 처지가 되니 이제는 여러 가지 고려사항을 세심히 살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꼬물이 티니를 어느 정도 고양이답게 키워놓았을 때 ‘중성화 수술’이라는 첫 문제에 당면하게 되었다. 나는 고양이의 중성화가 꼭 필요한 것인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누피는 18년을 사는 동안 중성화 수술을 하지 않고도 무탈히 지냈는데, 괜스레 어린 고양이를 수술대 위에 올려놓는 건 아닌지 망설임이 앞섰다. 그리고 작지 않은 수술 비용, 그 밖의 여러 가지 번거로움을 감수하면서까지 해야 하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고양이가 중성화 수술을 해야 하는 이유는 크게 3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로, 성 성숙기의 행동 문제를 완화하기 위함이다. 발정기의 고양이들은 애처로운 울음소리를 내거나 가출을 일삼을 수 있다. 수컷의 경우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냄새가 심한 소변을 여기저기 발사할 수 있다고 한다.

두 번째는,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 암컷은 유선종양과 자궁과 난소에 종양을, 수컷은 전립선과 고환의 질환을 예방할 수 있다고 한다.

세 번째는, 개체 수의 과잉 방지를 위해서다. 이것은 길고양이들에게 해당하는 것 같다. 집고양이는 집사의 관리가 있기에 과잉 번식을 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티니를 키우며 알게 된 사실인데, 길고양이는 중성화를 시킨 후에 중성화 여부를 사람들이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귀 끝을 잘라놓는다고 한다. 고양이의 귀 끝에는 신경이 없어서 통증을 느끼지 못하기에 그런 표식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일본으로 여행을 갔을 때도 그곳의 길고양이들이 귀 끝이 잘려 있어서 중성화의 여부를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고양이의 중성화 이유를 알아보긴 했으나 여전히 중성화 수술은 망설여졌다. 사실, 나열된 이유는 사람에게도 해당하는 항목이 아니던가. 사람들도 나이가 들면서 유방과 자궁에 그리고 전립선과 고환에 질병이 생기지만, 그것을 미리 예방하는 차원에서 어린 나이에 중성화라는 수술을 받지는 않는다. 그것을 표시하는 일도 하지 않는다. 생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다. 사람에게는 끔찍한 일을 고양이에게는 당연하게 행해진다는 것이 쉽게 납득되지 않았다. 아무리 고양이의 신경이 귀 끝까지 전달되지 않는다고 하여도, 저들끼리도 미(美)를 추구하고 있는지 모를 일인데. 이 모든 게 인간의 편의함이 기준이 되었다는 사실이 나를 조금 숙연케 했다.



티니는 태어난 지 7개월 즈음 중성화 수술을 했다. 많은 이들과 함께 사는 아파트에서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제어할 자신이 없었다. 결국 우리와 함께 살기 위해 티니의 희생은 불가피했다.


'본능에 충실하며 자유롭게 살고 싶었는데, 내 땅콩은 어디 갔나?'


유연한 자세로 몸의 구석구석을 깨끗하게 그루밍하는 모습을 보며, 혹시 티니가 저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닐지. 우리 가족은 머쓱함과 미안함이 반반 섞인 대화를 나누고는 한다.






반려견이나 반려묘와 함께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간의 삶과 편의를 위해 나와 같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며 종종 인간의 삶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안타까움과 미안함을 느낀다. 그러니 우리는, 인간의 기준대로 '이익'과 '손해'의 이름을 붙여놓고 가치를 가늠하는 것에 대해 최소한의 배려와 고마움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 가족과 함께 살기 위해 제 몸을 희생한 고양이 티니. 나는 티니의 입장을 듣지 못했으니, 티니가 어떤 마음으로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지 알 수 없을 일이다. 다만, 가끔 티니의 눈동자를 마주하며 생각한다.


‘함께 오래 살자고’




※모든 이미지에는 저작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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