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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킹오황 Jul 04. 2024

입원한 공무원의 일상

재미없음 주의

어느덧 3주 가까이 입원 중이다. 매일 일상이 크게 다르지 않아 지루하다.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지루하긴커녕 쉴 틈조차 없이 살았다는 게 믿기지가 않는다. 입원 중일 때는 보통 이렇게 지낸다.



새벽 4시에 간호사가 들어와서 자고 있는 나를 깨운다. 그리곤 혈압과 체온을 재고, 항생제 수액을 꼽아둔다. 예전에 통증이 심할 땐 이때 잠이 깨면 다시 잠에 못 들어서 그냥 일어났다. 지금은 통증이 덜해서 다시 자고 6시쯤 일어날 수 있게 되었다. 일어나면 스트레칭도 하고 병실 주위를 걷는다. 7시에 전화영어를 하고 돌아오면 아침식사가 자리에 놓여 있다.


병실의 밥이 생각보다 내 입맛에 맞다. 내 아내도 맛있다는 걸 보면 퀄리티가 상당한 듯싶다. 다만, 옆 침상의 형님은 맛없어서 못 먹겠다고 불평하시는 걸 봤을 때, 우리가 세종청사의 구내식당에 익숙해졌을 수도 있다. 아침을 먹다 보면 의사 선생님이 오셔서 오전 진료를 보신다. 진료라기 보단 몸 상태를 체크하고, 검사 결과와 치료 방향을 알려주는 정도이다. 원래는 레지던트가 입원환자를 돌보지만, 전공의 파업으로 교수님이 직접 오시는데 굉장히 피곤하고 지쳐 보인다. 난 의사에게 미움받을 수도 있을까 봐 공무원이라는 것을 철저히 숨겼다.


아침을 먹고 나면 간단히 씻고 자리에 앉아 간호사를 기다린다. 항생제를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루에 네 번, 오전, 오후, 저녁 그리고 새벽 이렇게 항생제를 맞는데, 담당 간호사는 내가 항생제를 심하게 맞는 편이라고 한다. 다행히 항생제에 대한 부작용은 없다. 굳이 따지자면 변비 정도.. (항생제 수액을 자주 맞다 보니 목이 안 말라 물을 잘 안 마시는데 그래서 생긴 것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다)


항생제를 맞고 나면 점심시간 전까지 자유시간이다. 종종 병실 창 밖을 바라보는데, 북한산 옆에 있는 병원이라 그런지 경치가 상당히 좋다. (민원이 그렇게 많다는 그 러브버그도 질리도록 봤다) 내 침상은 화장실 바로 앞에 있는 터라 침상을 비어있는 창가 쪽으로 옮겨달라고 건의를 해봤지만, 규정에 침상 이동은 금지되어 있다길래 공무원답게 수긍했다.


날씨가 좋으면 병원에서 조성한 작은 공원에 간다. 걷기도 하고 의자에 앉아 따스한 햇살을 쬐며 멍하니 구름을 보기도 한다. 얼마 만에 움직이는 구름을 보는 건지 모르겠다. 비서관으로 근무하던 사무실은 창문이 없어서 일하다 보면 밤인지 낮인지, 비가 오는지, 눈이 오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점심때가 되면 침대에 앉아 아기새가 어미새를 기다리듯 밥이 오는 것을 기다린다. 점심을 먹고 나선 졸리면 자고, 심심하면 넷플릭스를 본다. 그러다 항생제를 맞고 나면 힘을 내서 주변을 걸으며 저녁때가 되기를 기다린다. 저녁을 먹고 나도 별반 다를 게 없다. 아내랑 통화하고, 항생제를 기다리며, 항생제를 맞고 난 후엔 잔다.




평소에 난 모든 일에 진지하고 제대로 했다. 업무는 당연하고, 심지어 게임을 하더라도 특정 랭크까지 가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했지, 무의미하게 시간을 때우려고 한 적은 없었다. 그러다 이런 단조로운 생활을 하게 되었을 때 처음엔 적응이 안 되었다. 날이 갈수록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는 게 맞는지, 뭐라도 해야 하는 건 아닌지 애가 탔다. 비서관 업무를 하면서 얻은 지식과 경험을 다 까먹게 될까 봐 두려웠고, 이렇게 일을 안 하다가 회사에 복귀하면 일을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그러다 최근에 감염수치가 살짝 오르자 마음을 고쳐 먹었다. 일이 뭐가 중요한가, 지금은 내 몸을 치료하고 정상으로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말이다. 지금은 전력으로 달려왔던 나의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회복하는 소중한 시간이다. 잠깐 멈춘다고 크게 달라지는 거 없다. 한두 달 쉰다고 발휘하지 못할 실력이라면 그건 내 진짜 실력이 아닌 것이다. 나 자신을 믿고, 쉴 땐 제대로 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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