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철학을 공부하는가?

목적이냐 수단이냐

by 오경수
오귀스트 로댕(Auguste-René Rodin,1840~1917) - 지옥의 문

벌써 3월이 끝나간다. 이번 3월은 정말 특별했다. 전혀 다른 전공을 이번 학기부터 공부를 하게 되어서 이전부터 3월을 기대했다. 전혀 다른 것을 하니 감회가 새롭기도 하지만, 너무 이질적이라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또한 자괴감이 드는 순간들도 많이 있었다. 다른 학우들은 3년 이상 철학과에 소속되어서 지금의 수업이 전혀 어색하지 않고, 예습 후에 하는 토론이 너무나 익숙하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무엇보다 이과에서 문과로 넘어오니 적응이 너무 힘들다. 원래 나에게 학과 공부는 시험 2주 전부터 하고 그 전에는 거들어보지도 않는 것이었는데, 철학과에 와서는 매일 예습을 해도 학우들을 따라가기 힘들다. 사실 그럴 수 밖에 없다. 나는 3학년까지 공대를 다녔고, 그들은 고등학교부터 문과였을텐데, 내가 바로 적응하는 것도 이상할 것 같다. 그렇다고 자포자기하는 건 아니다. 나는 지금 이 공부가 재밌다. 하지만 디오니소스와 아폴론이 서로 협조를 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여기서 말하는 디오니소스와 아폴론은 지극히 니체적인 표현이다. 디오니소스는 내가 하고 싶은 공부고, 아폴론은 학과 공부를 의미한다.


내가 철학을 전공하기로 결심한 계기는 미셸 푸코와 같은 근현대 철학자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플라톤과 같은 고대 철학자도 좋아한다. 하지만 주요 관심사는 미셸 푸코, 니체이다. 그래서 서양철학 분야는 좋아한다. 기존에 관심이 있던 부분을 훑기 때문에 서양철학사 강의 때는 핸드폰 볼 시간이 없다. 또한 공감 철학 상담, 철학 실천 입문과 같은 기대하지 못한 철학 실천 분야 또한 재미있다. 기존에 이론으로만 철학을 공부하던 나에게 철학 실천은 꼭 필요한 강의라고 생각된다. 나는 이런 분야가 있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동양철학은.. 관심 가지려 노력 중이다. 어제 노자에 관한 수업을 들었는데, 나름 재미있었다. 앞으로 동양철학도 기대가 된다. 윤리학은 교수님이 친절하셔서 좋다. 하지만 토론의 장에 내가 끼지 못하고 겉도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지식론은 답이 없는 것 같다. 매일 똑같은 부분을 읽는데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 과목 때문에 좌절을 많이 한 것 같다. 모든 과목이 발표가 있는데, 지식론은 진짜 걱정되는 수준이다.


매일 다음날 강의를 예습하다 보니 책 읽을 시간이 없어졌다. 또한 내 글을 쓸 시간도 없어졌다. 또한 바쁘게 살다 보니 글에 대한 영감도 잡지 못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게 정말 내가 원하던 철학도의 모습일까?”, “난 꼭 학점에 목매야 할까?” 두 질문에 답은 너무나 명쾌하게 나왔다. “아니”, “그게 왜 중요해. 하던 대로 해.”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고 답변을 하니 또 다른 질문이 나에게 생겼다. “그럼 철학을 왜 공부해?” 스스로에게 던진 이 질문 때문에 오늘 공부를 안 했다. 평소에는 11시 혹은 12시까지 공부를 하는데 오늘은 저녁 먹기 전까지만 했다. 그리고 무작정 걸으며 생각했다. 내가 왜 철학을 전공하기로 마음먹었을까? 내가 원하는 학부 생활은 무엇일까? 왜 나는 지금 철학을 공부하지?


그래서 얻은 결론은 학교 공부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라는 것이다. 전기공학과에 다닐 땐 학교에서 항상 기사 자격증을 강조했다. 그래서 강의 과목도 기사시험 과목에 맞춰서 개설되기도 했다. 물론 전기공학에서 기사 자격증은 아주 좋은 자격증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학과 이데올로기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이곳은 대학교인가? 아니면 전기기사 양성소인가? 전기기사는 학원에 다니면 비교적 금방 따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왜 학교까지 전기기사에 모든 걸 거는 분위기였을까? 당시는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대학의 분위기는 아니었다. 나는 대학을 지적으로 성숙해질 수 있는 기관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맨날 계산기나 두들기고 공식에 대입만 하는 내 모습을 보니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마치 대학의 목표가 사회의 한 주체를 배출하는 것이 목적이 아닌 사회가 선호하는 공학 계산기를 만들어내는 공장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내 전공에 굉장히 회의주의적 태도를 가지게 되었다. (공학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결이 맞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래서 난 학교에 나를 맞추기보다 학교를 나에게 맞추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강의에 열중하던 태도는 접어두고, 내 인생에 대해 고민하며 철학책을 읽기 시작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지금 나의 디오니소스와 아폴론이 대립한다. 학교 철학 강의에 내 관심사를 맞출지 아니면 그냥 하던 대로 할지 고민이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학교는 나에게 수단이다. 결코 목표가 아니다. 학교가 목표라면 내 인생은 졸업과 동시에 끝이다. 고로 나는 내 목적을 이루는 수단으로 학교를 생각해야 한다. 이 말은 내 디오니소스를 더 당당하게 만들어 주었다. 나는 철학과가 원하는 철학자가 되기 위해 철학과로 온 것이 아니다. 나는 내가 원하는 철학자가 되기 위해 철학과를 왔다.


그렇다고 학교 강의를 무시한다는 것은 아니다. 학교 강의는 나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고 나의 철학을 더욱 단단하게 발전시키는 것이다. 내가 관심 있는 분야만 편향되게 공부하지 말고 학교 강의도 스윽 참고하면서 공부할 거라는 말이다. 지금처럼 예습하며 수업에 참여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는 내 철학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요새 많이 들었다. 어차피 국가장학금도 못 받고 학과 장학금도 못 받으니 학고만 맞지 말자. 학우들을 따라가야 한다는 강박에 의해 내 진정한 목표를 요새 잊고 산 것 같아 아쉽다. 학점이라는 숫자가 뭐길래 나를 집어삼켰을까. 취미로 했던 철학 공부를 전공으로 하려니 요새 너무 힘들어서 변명을 좀 길게 써봤다. 아무튼 나를 잊지 않도록 나에게 집중해야겠다. 나는 사회의 부품보다 주체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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