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증

이대로 잠들 수 없다.

by 오경수
KakaoTalk_20220502_000503483.jpg 오전 3:35 서울의 야경

나는 어릴 때부터 잠드는 것이 어려웠다. 예전부터 육체적으로 굉장히 피로감을 느끼는 날에도 난 잠에 쉽게 들지 못했다. 오히려 정신이 너무 또렷해서 더 잠을 못 잤다. 그래서 나는 머리만 닿으면 자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감각이었다. 어떻게 잠을 그렇게 쉽게 청하지? 저렇게 많이 자면 도대체 얼마나 개운할까? 도저히 나의 감각질로는 그들의 감각을 유추할 수 조차 없었다. 마치 비트겐슈타인이 말하는 사적언어논증처럼 난 그 감각을 이론적으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사람이 잠을 쉽게 자지? 그래서 수학여행이나 수련회 같은 상황에서도 난 항상 제일 늦게 잠들었다. 그래서 항상 제일 늦게 기상했던 것 같다.


어디선가 이런 문장을 본 적 있다. "당신이 잠을 자기 싫은 이유는 그날이 불만족스러웠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인정하는 문장이다. 하루 종일 불만족스러운 하루였다면 잠들기 전에 일부러 시간을 내서 그 불만족을 만회할 시간을 가지다가 늦게 잘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만족스러운 하루를 보내도 잠을 못 잔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충분히 보내고 집에 와도 난 잠에 쉽게 들지 못한다. 중간고사를 만족스럽게 마친 저번 주에도 난 도저히 잠을 자지 못했다. 스스로 쉬고 싶다고 자고 싶다고 느껴도 난 잠에 들 수가 없었다. 심지어 지난주에는 시험공부를 1시 반에 마치고 잠에 들려했는데, 5시까지 잠에 들지 못했다. 5시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잠에 들기 위해 asmr을 틀어놓고 눈감고 누워있었다. 결국 4시쯤에 asmr마저 포기하고 그냥 누워있다 보니 5시쯤에 잠든 것 같았다. 나는 왜 만족스러운 하루를 보내도 잠을 자지 못할까?


잠에 들지 못해서 부정적인 점은 몇 시간 동안 누워서만 보내는 시간이 많다는 점이다. 그 시간에 잠이라도 자면 피로가 풀리고 다음 날 아침이 가벼울 텐데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그래서 난 아침식사를 전혀 하지 못하고, 아침엔 좀비와 같은 상태로 생활을 한다. 만약 수업이 없는 요일이나 주말인 경우에는 오후 12시 넘어서까지 잠을 잔다. 12시까지 잠을 자서 무언가를 놓치거나 한 것은 없다. 그래서 손해를 본 적은 없다. 하지만 남들과 다른 수면 패턴을 가진다는 것이 뭔가 나를 타자화하는 느낌을 준다. 내가 새벽에 누워만 있을 때, 누군가는 다음날을 위해 수면을 취하거나, 잠을 줄여가면서 까지 무언가를 한다. 내가 아침에 늘어지게 자고 있을 때, 누군가는 일찍 일어나서 운동을 하거나 생산적인 활동을 한다. 하지만 내 패턴은 나의 패턴이므로 그 누구도 나에게 뭐라 할 자격이 없고, 나 또한 타자들에게 내 생활을 맞출 필요가 없다. 약속을 어기지 않는 다면. 어쩌면 수면시간이라는 것도 푸코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생체권력에 의한 산물이 아닐까?


이러한 나라고 무조건 늦게 잠들며 살아온 것은 아니다. 어느 특정 기간 동안에는 11시에 자서 6시 반이나 7시쯤에 기상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는 지금과 반대로 생각했다. 내가 너무 틀에 박힌 생활만 해서 발전이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저 하루를 위해 하루를 사는 하루살이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일부러 수면시간을 줄이다 보니 지금처럼 된 것 같다. 여기까지 읽은 사람들은 이 사람은 그래서 본인의 수면 패턴이 좋다는 건지 나쁘다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내 생각엔 둘 다 장점이 있다. 평균적인 패턴을 따르는 경우에는 우리 사회가 정해놓은 상쾌란 아침을 맞이하여 부지런한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내 패턴을 그냥 따르는 경우에는 아침에는 조금 힘들지만 밤에 생산적인 활동을 할 수 있다. 결국 둘 다 생산적이기 때문에 뭐가 좋고 나쁜지는 판단하기 쉽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지금처럼 늦게 자고 아침에 힘든 수면습관이 나에게 더 이득을 주는 것 같다. 앞에선 asmr을 틀고 가만히 누워있다고 했는데, 나는 그 와중에도 끊임없이 무언가를 생각했다. 과연 예술이라는 것이 뭘까? 오늘 읽은 책에서 작가가 말하고 싶은 점은 뭐였을까? 정말 소크라테스는 술을 잘 마셨을까? 이러한 사색에 빠지다 보면 깨달음을 얻어서 글을 쓰는 경우도 가끔 있다. 혹은 그 영감을 더 발전시켜서 다음 날 낮에 글을 쓸 때도 있다. 결국 나는 남들이 말하는 정상적인 패턴을 살 때보다 지금처럼 못 자는 나날을 보낼 때, 사색에 잠길 기회가 더 많고, 더 많은 결과물을 얻는 것 같다. 정상적인 패턴으로 살 때는 그저 잠들려 애쓰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려 애쓰고, 정해진 틀에 맞춰서 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지금처럼 사색에 잠기지 않았다. 시간적으로 여유가 생겨도 지금처럼 글을 쓰거나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정신승리를 해보자면, 지금의 나는 수면의 틀과 여러 담론들을 깨뜨리는 위버멘쉬(Übermensch)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생각을 다 끝내지 못했기 때문에 이대로 잠들 수 없다. 지적 탐구를 버리고 꿀잠을 자느니, 그냥 피곤한 좀비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물론 건강은 본인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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