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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닌 이름 21장

다시 찾는 이름

by 아티크 Artique


공항에서 미순과 극적으로 재회한 뒤, 혜순은 몇 날 며칠을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 미순의 웃음 속에는 기쁨도 있었지만, 아픔도 있었다. 부모와 얼굴색이 달라 어려서부터 친자식이 아니라는 상처를 안고 산 입양인은 당연한 부모의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혜순과 달리 미순은 양부모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다고 한다. 그래도 미순은 마음 한구석은 외로왔다. 부모의 사랑을 얻기위해 더 착한 아이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었다. 이제 친언니를 만나고보니 마음이 풍성해왔다. 언니가 어루만지는 손길은 그냥 따뜻했다. 핏줄이란게 신기했다.


어릴적 미순은 엄마와 자기의 피부색이 다른것이 너무 싫었다. 백인이 되고싶었다. 검정머리가 아닌 금발머리를 갖고싶었다. 두피가 따가울정도로 염색을 계속해서 머리결이 푸석한 금발이 되었었다.

머리색깔은 바꾸어도 피부색은 눈동자 색깔은 바꿀수없어 자꾸 위축되었다. 엄마아빠가 자신을 사랑하는걸 알았지만 뭔가 부족한 느낌이었다

에밀리 언니는 한국이름이 정미라고 되어있지만 그건 서류오류이고 사실은 혜순이란다.


언니 이름이 정미가 된 이야기는 놀라웠다. 다른 아이의 이름을 가지고 미국에 온 언니...어린아이가 거짓말을 해야한다는것이 얼마나 불안했을지 미순은 언니를 토닥여주고싶었다. 게다가 언니는 자기와 달리 미국에 입양와서 식모처럼 일을 했다고 한다. 공부를 잘한 언니는 대학에 가느라 집을 떠나 독립해서 그 많던 집안일에서 해방되었다고했다.


미순은 좋은 양부모밑에서 자란 자신이 얼마나 운이 좋은것인지 다시 깨달았다.


이제 혜순은 정미를 찾고 싶었다. 어릴적 친구 정미는 어디로 갔을까?

미국으로 입양되며 자신에게 주어진 이름, 정미.

그 이름은 그녀가 원한 것도, 선택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이름을 달고 살며, 정미라는 아이가 누렸어야 할 삶을 자신이 훔친 건 아닐까 하는 오랜 죄책감에 시달려 왔다.


“나는 정미가 아니야. 그런데도 그 아이의 인생을 내가 가져간 거 같아.”


그 말을 미순에게 꺼냈을 때, 미순은 처음으로 단호하게 말했다.


“언니가 훔친 게 아니야. 그건… 그냥 어른들이 만든 거야. 언니 잘못 아니야.”


그 말은 혜순의 심장을 꿰뚫었고, 동시에 묘한 위로가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진짜 정미’의 행방을 찾고 싶었다. 그녀의 유년기를 송두리째 바꿔버린 이름, 정미. 그 아이가 어디에 있는지, 혹은 존재했는지조차 확실치 않았지만, 잃어버린 이름의 주인에게 사과하고 싶었다.


한편, 서울의 어머니는 여전히 마음속에서 딸들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다. 받아들이고 싶지만, 두려웠다.

지금의 남편은 그녀의 과거를 알지 못했고, 자식들도 ‘어머니가 미혼모였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그녀의 지갑안에는 혜순이 준 사진이 끼워져 있었다. 자매가 공항에서 껴안고 웃고 있는 사진.


그녀는 감히 다시 연락하지 못했다. 마음 같아선 매주 보고 싶었지만, 한 번 본 것으로 충분하다는 듯 거리두기를 택했다.


혜순은 그것도 이해하려 노력했다. 그리고 그렇게 마음속 결심을 했다.



어느 날, 혜순은 오래된 기록들을 다시 들춰보다가, 자신의 입양기록에 ‘정미’라는 이름이 덧씌워져 있었음을 보았다 담당 직원의 펜으로 정미라는 이름 위에 ‘Emily Sweet’가 덧붙여진 입양서류. 서류 상으로는 단순한 행정 오류처럼 보였지만, 그녀는 직감적으로 느꼈다.


“나는… 정미가 아니었고, 정미를 찾아야겠어”


혜순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혜순은 자신이 시작한 DNA 플랫폼을 다시 들여다봤다.

이름 없이 떠돌던 수많은 아이들이 다시 자신의 이름을 되찾을 수 있는 길.

그 길을 정미에게도 열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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