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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닌 이름 20장

25년만의 만남 그리고..

by 아티크 Artique

제20장 – 공항, 25년 만의 만남

혜순의 시선

비행기 도착 시각 30분 전.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 도착 게이트 근처에 앉아 있던 혜순은 손에 들고 있던 종이컵의 커피가 식은 줄도 몰랐다. 마치 심장이 천천히, 깊이 움직이는 것처럼—오랜 시간 쌓인 감정들이 그 속에서 묵직하게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어떻게 생겼을까… 기억은 없지만, 내가 울면서 안 보내려 했다는 내 동생이라는 그 애. ”

25년 전, 혜순은 여섯 살. 미순은 겨우 세 살이었다.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그 작은 손이 자신을 향해 뻗쳐졌던 순간만이, 희미하게도 남아 있었다.

혜순은 손목에 찬 얇은 팔찌를 문질렀다. ‘GeneaLink’를 세우고 수많은 사람들의 가족을 찾아주던 그 수많은 시간들.


그 열정이 오늘만큼은 오롯이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DNA 매칭을 통해 확인된 이름: Lisa Choi. 바로, 미순이었다.

미순의 시선

비행기 안에서 내내 미순은 얇은 손거울을 꺼내 보고 또 보았다. 얼굴에 뭔가 묻은 건 아닌지, 립스틱은 번지지 않았는지. 이런 게 중요한 일이 아닌 건 알면서도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아니, 어쩌면 그 긴장감을 무마시켜줄 사소한 핑계가 필요했는지도 몰랐다.

“언니… 언니가 날 울면서 보내지 않으려 했다고 했지…”

입양된 뒤로 ‘sister’라는 단어는 미순의 세계에서 사라졌었다. 늘 막연한 상상이었고, 존재하길 바랐으나 감히 믿지는 못했던 기적 같은 단어.

GeneaLink에서 보낸 매칭 결과를 본 순간, 미순은 한참을 울었다. 언니라는 사람과 이메일을 주고받고 사진도 주고받고 통화도 했다. 어린 시절의 공백이 마치 영화의 필름처럼 툭툭 끊긴 장면으로 한두장면이 기억나는듯했고, 자신에게 피를 나눈 가족이 있다는 것은 오랜 상처를 치유해주는느낌이고 베일 속의 답답한 기억들이 해소되는 기분이었다. 착륙을 알리는 기내 방송에 미순은 쾅쾅거리는 심장에 손을 얹었다.


이제 비행기를 내리고 출국장을 나가면 언니얼굴이 보일것이다. 여기오기전 이메일과 전화통화를 몇번했고 사진도 교환했으나 알아볼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공항의 재회

게이트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혜순은 자세를 고쳐 앉았다가 곧 일어서버렸다.
몇 발자국 앞에, 단발머리가 단정하고 깔끔한 트렌치코트를 입은 여성이 서 있었다. 어쩐지 그 눈매가 낯익었다. 어렴풋하게—어릴 적 인형을 빼앗긴 듯 울던 얼굴과 겹쳤다.

“리사…?”
“언니…?”

순간, 시간은 멈췄다.
혜순이 먼저 다가가고, 미순은 주저하다 품에 안겼다. 말없이 서로의 등을 다독이며, 어린 시절 서로의 체온을 기억해보듯 껴안았다. 눈물이 두 사람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게이트 뒤, 멀찍이에서 두 사람을 바라보던 존은 스마트폰을 들어 사진 한 장을 찍었다. 그리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기록될 만한 순간이야… 누군가의 데이터가 아니라, 진짜 사람들의 이야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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