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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래 Oct 28. 2022

17)기승전술,세라비!
起承轉酒,C'estLaVie!

063)타임캡슐,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063)타임캡슐,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그리고 회한의 정서를 머금어 긴 입맞춤으로 봉인한다. 그 입맞춤으로 생동하는 붉은 꽃잎이, 자신의 지나간 사랑이 영원히 시들지 않기를 절절하게 기대하면서. 


세상의 사람들이 남에게 자랑하고 싶기는 하나, 들키면 치욕스런 사건이 세 가지가 있다는데, 하나가 음주운전이요. 두 번째가 탈세이다. 그리고 나머지가 불륜의 사랑이다.


나는 화양연화를 보면서, 60년대 홍콩 거리의 어스름한 가로등 불빛, 주점의 자욱한 담배연기, 물이 끓는 주전자에서 피어오르는 김, 먼지 가득한 유리창 뒤편에서 조각배처럼 떠다니는 주인공들의 몽환적인 이미지를 눈물 맺힌 눈으로 쫓았다. 


볼 적마다 가슴이 먹먹해지게 감정이입에 빠져서 그 느낌을 나 혼자만 간직하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너에게만 알려주는데...’ 하면서 은밀하게 자랑하고 싶기도 했다. 불륜의 사랑처럼. 


결과부터 말하자면, 박 화백과의 타임캡슐 개봉식은 가지지 못했다. 약속한 날 아침부터 소나기가 내렸기 때문이다. 박 화백이 나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음식과 술은, 묵은지와 막걸리 그리고 나를 위해 따로 감춰둔 위스키였다. 


그는 수유리에서 태어났고 성장했다. 수유동 동명의 유래는 북한산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이 마을로 넘쳤기 때문에 '물 수(水)' 자와 '넘칠 유'(踰) 자를 써서 붙여진 이름이라 하며. 우리말로는 ‘물이 넘친다’[水踰]고 하여 ‘무너미’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동네 뒷산인 도봉산을 매일이다시피 오르내렸고, 저절로 동네친구들이 결성한 그 이름도 우악스런 ‘우이암 산악회’의 일원이 되었다. 산행을 마친 산악회원들과 산날맹이 주막에서 녹두 지지미에 묵은지 안주로 막걸리 한 사발씩 나누는 쏠쏠한 재미도 생겼다고 들려주었다. 


추운 겨울이 다가오는 어느 가을 날, 한 친구의 기막힌 제안으로 막걸리 한 동이와 김장김치 한 항아리를 지게에 져 올려서 우이암 근처 비밀 아지트에 묻으며 ‘우이암 산악회 타임캡슐’ 매장식도 가졌다. 


꽃피는 봄에 개봉하자 약속하고, 소풍날을 기다리는 어린이처럼 매일매일을 그리운 술 생각에 입맛을 다시며 상상만으로 즐거워하고 있었댔다. 



그리고 며칠 후, 나는 그의 부음을 들었다. 사망원인은 심정지였다. 장례식엘 갔더니 그의 부인은, 말씀 많이 들었어요, 라고 했고, 그의 딸은, 와주셔서 고마워요 쿨쩍쿨쩍 쿨쩍쿨쩍, 고장 난 수도꼭지에서 물이 새듯이 끊임없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나도 와앙, 소리 내서 울고 싶었지만 찬물에 적신 수건으로 뜨거워진 눈시울만 식혔다. 

그가 나를 위해 남겨둔 타임캡슐속의 위스키의 존재를 알고 있을 산악회 동네친구들도 빈소에 있었지만 위스키의 안부에 대해서는 묻지 못했다. 


1975년 여의도에 국회의사당을 지을 때 본청 건물 앞에 두 마리의 해태상을 놓기로 했다. 전설의 동물 해태는 불을 먹기 때문에 상징적인 해태상을 세우면 화재를 예방할 수 있다는 속설을 따랐기 때문이다. 


이처럼 위대한 기념비적인 일에 참여하게 된 회사는 해태를 브랜드로 내세운 해태제과였다. 해태제과는 암수 한 쌍의 해태석상을 만들며 타임캡슐도 같이 만들었다. 해태석상 아래에 땅을 파고 각각 36병의 와인을 넣은 타임캡슐을 만든 뒤 석회로 단단히 밀봉했다. 해태의 노블와인은 묻어둔 지 100년이 지난 2075년에 꺼내어 개봉하기로 했다. 그 즈음에 나는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가 되리라.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더라는 원색적인 속담이 떠오른다. 


나는 칵테일 바 세라비의 목로에 앉아 위스키를 주문하고 화양연화에서 대미를 장식한 OST, 낫킹콜(Nat King Col)의 노래, 키사스,키사스,키사스(Quizás, quizás, quizás)를 신청한다. 그리고 바텐더에게, 날이 갈수록 더 깊어지는 사랑의 기억을 간직한, 영화 속의 차우의 대사를 독백한다. 


“옛날엔 감추고 싶은 비밀이 있다면 어떻게 했는지 모르죠? 산에 가서 나무 등걸 밑에 구멍을 파고 자기 비밀을 속삭이고 진흙으로 봉했대요. 비밀은 영원히 가슴에 담고요.”


 키사스, 키사스, 키사스... (아마도, 아마도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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