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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맛, 거부감에서 중독까지

쿠알라룸푸르에서 익숙해진 것들

by Horang unnii


익숙해지기까지






익숙해지기 전까지, 모든 것은 낯설다.

쿠알라룸푸르에서 나는 단순히 새로운 문화를 접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변화시키는 시간을 보냈다.


어떤 음식이 당신을 놀라게 한 적이 있는가? 나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두 번이나 그런 경험을 했다. 그중 가장 강렬한 기억으로 남은 것이 있다.

바로 두리안과 고수였다.


처음엔 도저히 먹을 수 없었다. 코를 찌르는 강한 냄새, 익숙하지 않은 향, 그리고 도망치고 싶은 충동.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이 두 가지 음식과 가까워졌고, 결국 사랑하게 되었다. 두리안과 고수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낯선 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내가 겪은 가장 강렬한 경험이었다.









두리안 – 냄새를 이기면 맛있는 걸 먹는다







처음 두리안을 봤을 때, 나는 코를 막고 도망가고 싶었다. 껍질은 마치 가시로 뒤덮인 야수 같았고, 노랗게 벌어진 틈 사이로 진한 크림 같은 과육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문제는 냄새였다.


공기 중에 퍼지는 향이 강렬했다. 푸세식 화장실에서 풍길 법한 암모니아 냄새가 두리안에서 났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냄새가 과일에서 날 수 있을까? 너무 충격적이었다. 한입이라도 먹으려면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다.


나는 몇 년 동안 두리안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두리안을 손에 들고 있는 사람을 보면 자연스럽게 거리부터 두었다. 하지만 쿠알라룸푸르에서 홈스테이를 하던 어느 날, 주인 언니가 내게 말했다.


“동남아에서 살면서 과일의 왕이라 불리는 두리안을 안 먹고 가면 억울하지 않겠어?”


그 말이 묘하게 자존심을 건드렸다. 용기가 생겼는지, 아니면 단순한 호기심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결국 도전해 보기로 했다. 다행히 언니가 두리안을 얼려주었다.


냄새를 맡지 않으려고 조심스럽게 얼린 두리안을 한입 베어 물었다. 웬걸, 냄새는 없고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만 남아 있었다. 마치 진한 바닐라 크림을 떠먹는 것 같았다. 그때부터 두리안에 조금씩 빠져들었다.


지금은 동남아에 갈 때마다 두리안을 꼭 먹는다. 한 조각씩 입에 넣으며 그때의 나를 떠올린다. 냄새에 질겁하며 도망치던 내가 이제는 두리안을 찾아다닌다니. 두리안은 나에게 ‘냄새를 이기면 맛있는 걸 먹는다’를 알려준 과일이었다.









고수 – 낯선 맛을 받아들이는 연습







고수는 두리안보다 더 어려운 상대였다.


두리안이 냄새 때문에 싫었다면, 고수는 그 독특한 향 때문에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음식을 한입 베어 물었는데, 마치 누군가 내 입 안에 화장품을 뿌려놓은 듯한 맛이 퍼졌다.


“누가 여기에 분통을 엎었어?”

“왜 음식에서 비누 맛이 나지?”


진심으로 투덜거렸다. 하지만 고수를 먹게 된 계기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쿠알라룸푸르에서 나는 뎅기열에 걸렸다. 몸이 망가지는 걸 느꼈다. 고열과 헛구역질, 복어처럼 부어오른 얼굴, 그리고 네 시간마다 피를 뽑는 고통. 열흘 넘게 병원에 갇혀 있었다.


“더는 못 버티겠어요. 죽더라도 한국 가서 죽을래요.”


퇴원을 요구했다. 병원 측에서는 사망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서류에 서명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가까스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치료를 받고 몸은 회복했지만, 후유증은 쉽게 지나가지 않았다. 한 달쯤 지나자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고, 면역체계가 약해져 다양한 증상이 나타났다.


그때 고수 이야기를 들었다.


“고수가 면역력 강화에 좋고, 모기가 싫어하는 향을 가진 채소래.”


두 번 다시 뎅기열 같은 경험을 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억지로 고수를 한 입 두 입 먹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여전히 힘들었다. 입에 넣었다가 자동으로 뱉기도 했다. 하지만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하는 마음으로 계속 먹다 보니, 어느 순간 ‘이게 나쁘지 않네?’ 싶었다.


그리고 결국, 고수를 좋아하게 되었다.


고수는 나에게 ‘생존을 위해 억지로라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있음을 가르쳐 주었다.” 지금은 쌀국수를 먹을 때 고수를 더 달라고 요청한다. 월남쌈에도 잔뜩 넣어 먹는다. 오히려 고수가 없는 쌀국수를 먹으면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 정도다.


그때의 나를 떠올리면 믿기 힘든 변화다.








낯선 음식과의 만남, 그리고 삶의 변화







두리안과 고수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다. 그것들은 내가 낯선 것에 적응하고, 결국 그것을 사랑하게 되는 과정을 알려준 특별한 경험이다.


처음에는 냄새와 맛 때문에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여행 중 일부러 찾아 먹는 음식이 되었다. 낯선 음식과의 만남은 때때로 우리를 당황하게 만들지만, 그 속에는 새로운 세계를 경험할 기회가 숨어 있다.


처음엔 거부감이 들었지만, 한 걸음 다가가 보면 생각보다 괜찮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 과정을 지나고 나면, 언젠가 그 음식이 삶의 일부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두리안을 먹을 때마다 처음 냄새에 질겁하던 내 모습을 떠올린다. 고수를 잔뜩 넣은 쌀국수를 먹으며, 뎅기열로 고생하던 그날을 기억한다. 그리고 깨닫는다.


낯선 음식과의 만남은 때때로 우리를 당황하게 하지만, 그 속에는 새로운 세계를 경험할 기회가 숨어 있다.



모든 것은 익숙해지기 전까지 낯설 뿐이다. 여행도 그렇다. 낯설었던 그곳에서 하루하루가 내 삶이 되고, 어색하고 불편했던 타국에서의 나는 어느새 그곳에 스며들어 변화해 간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나인 채로, 또 다른 나인 채로, 한층 더 성숙해져 간다.


여행을 하고, 가이드를 하고, 낯선 나라에서 살아가면서, 나는 내가 알지 못했던 나를 수없이 만나왔다.

낯선 것과의 만남이 나를 흔들었고, 때로는 두렵게 했지만, 그 과정에서 나는 더 깊이 나를 알아가고, 더 넓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렇게, 익숙해지기까지.

그리고 그 익숙해진 순간, 나는 또다시 새로운 낯선 것을 향해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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