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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여관

말이 씨가 되라고 그렇게 떠들었나 보다, 다시 라오스로 돌아왔다

by Horang unnii

뜨거운 공기를 가르며 바람이 분다.

라오스의 오후는 나른하지만, 내 마음은 그때처럼 설렌다.


그 속에서도 어김없이 들려오는 소리들이 있다.

지나가는 툭툭이의 엔진소리, 어디선가 아이들이

까르르 웃으며 뛰어노는 소리,

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바람의 잔잔한 흐름.


여기는 라오스. 내가 한때 머물렀고,

또다시 돌아와 머물고 있는 곳.

그리고 언젠가는 '장미여관'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던 곳이다.










꿈처럼 말했던 그 이야기






라오스에서 가이드 일을 할 때마다 투어 둘째 날,

비엔티엔에서 방비엥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늘 했던 이야기가 있다.

내가 언젠가 방비엥에 '로즈가든'을 만들 거라고.

한국말로 하면 '장미여관'. 그리고 이건 내 꿈이 아니라, 반드시 실현될 현실이라고.


"다들 라오스를 또 오게 된다면, 방비엥에서 지나가는 현지인 붙잡고 로즈가든, 장미여관을 묻고 찾아보세요. 만약 없다면, 아~ 정 가이드가 아직 못 만들었구나~ 생각하시고, 만약 있다면? 정 가이드가 드디어 만들었구나! 그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나는 그렇게 손님들에게 말로 뱉었다. 말이 씨가 되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이루어지라고, 그렇게 믿으면서. 이게 단순한 바람이 아니라, 내가 정말로 이루고 싶은 꿈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손님들이 내 이야기를 듣고 "가이드님, 정말 만들면 연락 주세요!" 하며 응원해 주셨다. 팁을 주고 가신 분들도 있었고, "나중에 꼭 오면 장미여관 찾아볼게요!"라고 하신 분들도 많았다.

"쥔장 찾으면 서비스도 더 많이 드릴게요!" 하며 농담도 했고, "비어라오도 사드리고, 망고주스도 사드릴게요!" 하며 웃고 떠들던 기억이 난다.

"이름 정말 잘 지었다! 장미여관, 이름만 들어도 추억이 될 것 같은 공간."이라는 칭찬도 많이 들었다.










라오스에서 피어난 꿈들







라오스는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100곳' 중 하나다. 보통 사람들이 라오스를 두 번 이상 찾는 이유가 있다. 한 번은 비엔티엔에서 방비엥으로 가는 청춘여행, 그리고 또 한 번은 유네스코에 지정된 도시, 루앙프라방을 가기 위해서다. '꽃보다 청춘'과 '뭉쳐야 산다'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알려진 라오스는 이미 청춘여행과 자유여행으로도 인기 있는 여행지이다.


나는 이 나라가 좋았다. 너무 없어서 불편함이 있었어도 그 부족함이 좋았고, 그 빈틈이 좋았다. 대신 그 빈틈과 그 불편함들을 다른 것들이 대신하여 꽉 채워주는 기쁨도 있었다. 아니, 나는 그 덕분에 이 나라에 살고 싶었다. 그래서 처음 3개월만 지내려고 온 라오스에서 몇 년을 살았다. 그래서 이렇게 꿈을 꾸기 시작한 거다.

처음엔 단순한 게스트하우스를 만들겠다고 생각했는데, 점점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아졌다. 장미여관과 함께 '로즈카페' 그러니까 '장미다방'도 만들고 싶었고, 그 뒤에는 롤러장과 LP음악방까지. 한국의 70~80년대 감성을 그대로 재현한 공간을 만들어서, 사람들이 와서 추억하고, 즐기고, 쉬어갈 수 있는 그런 곳.


투어 중에는 진도아리랑이나 사랑가 같은 민요, 판소리를 부르기도 했었다. 손님들에게 "장미여관이 생기면 장구랑 북도 가져다 놓을 겁니다. 막걸리도 팔 거예요! 그때 오시면 내 노랫가락 들으며 다시 한번 놀아봅시다!" 하며 웃으며 말했었다. 그런 순간들이 쌓여, 내 꿈은 더욱 선명해졌다.










책과 음악, 그리고 옛 감성을 담은 공간







처음엔 북카페는 생각도 못 했었는데, 이게 하나 추가됐다. 한쪽에는 '책방지기 쥔장의 책장'을 만들어서 내가 읽은 책 등을 서재처럼 꽂아두고, 또 한쪽에는 새 책들을 놔두고 판매하는 거지. 커피와 차를 마시면서 책도 읽고, 라오스 사람들을 위한 북토 크도 열고, 한국어 스터디도 하고, 교민들을 위한 사랑방 같은 커뮤니티도 만들어 보고 싶다. 그 공간에서 여행도 기획하고, 특별한 여행을 통해 여행 에세이를 쓰고 싶은 사람들과 함께 기록하는 여행도 만들어 보고 싶다.


여행하면서 기록하고, 그 기록이 또 하나의 이야기가 되고, 전자책으로도 엮이고, 나아가 여행작가로 성장하는 길까지 함께할 수 있는 그런 공간. 그렇게 되면, 라오스 여행을 하면서 한 달 살기도 가능하고, 자유롭게 여행하며 머물 수 있는 기회도 많아지겠지?


또 롤러장 앞에는 복고풍 교복을 가져다 놓고, 현지 친구들에게 한국의 옛 문화를 전해주고 싶다.

나의 어린 시절, 82년생으로서 기억하는 그 감성을 이곳에서 다시 재현하고 싶었다.

나팔바지를 입고 고고장에서 춤을 추던 그 시절을 떠올리며, 라오스를 찾는 40~60대 손님들에게도 익숙한 감성을 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라오스를 찾는 여행객 중 20~30대는 소수이고, 40대 이상이 많기 때문에 이 콘셉트가 더욱 잘 맞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언젠가는, 반드시






2020년 4월, 나는 라오스에서 한국으로 돌아갔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아마 가이드 투어를 계속하며

돈을 모으고, 그 당시 내가 계획했던 일들을 하나씩 만들어 보려고 시도했을 거다. 실제로 현지 친구들과 게스트 하우스를 어떻게 운영할지 의논했고, 방비엥에서 여행업을 하는 친구들과 여러 번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방비엥에 게스트하우스를 짓는다면 얼마가 필요할지, 난 외국인인데 어떤 방법들이 있는지에 대해 하나하나 알아보면서 꿈을 현실로 만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코로나가 터졌다.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야만 했고, 그 후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다시 라오스로 돌아왔다.

브런치를 연재하면서, 그때 묵혀두었던 이야기들이 새록새록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때는 아쉬움으로

남았던 이야기들이 이제는 다시 현실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돌아온 라오스






나는 더 이상 가이드를 하지 않는다. 대신 문화해설사로 일을 하고 있지만, 내가 꿈꾸던 여러 그림들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있다. 꿈은 이렇게 현실이 된다. 언젠가, 아니 곧.


그리고 하나 변한 것이 있다. 방비엥에 장미여관을 짓는 것이 첫 계획이었다면, 지금은 비엔티엔 안에 북카페를 짓는 것이 첫 번째 계획으로 바뀌었다.


나름의 순서는 있다. 북카페 - 장미여관 - 장미다방 -롤러장 - 음악방. 하나씩 현실로 만들어갈 계획이다.

이제는 단순한 꿈이 아니라, 실현 가능한 목표가 되었다.


이 이야기는 사실 새로 구상한 '떠나는 건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연재에 넣어도 어울리지만, 나는

지금 '장미여관'이라는 이름을 꼭 글로 남기고 싶다. 내가 투어를 하며 매일같이 했던 이야기, 그리고

정말로 이루고 싶은 꿈. 이게 단순한 생각이 아니라, 매번 손님들에게 말할 정도로 깊이 새겨진

내 미래였다는 걸 기록하고 싶다.


라오스는 정이 있는 나라다. 소소한 행복을 알고,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들.

항상 웃음을 잃지 않고, 화를 내는 일이 드문 사람들.

화병도, 우울증도 없는 이곳에서 나는 행복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오래 머물고 싶었다.

그렇게 꿈을 꾸고, 계획을 세우고, 한 걸음씩 나아가면서 이제는 정말 그 꿈을 현실로 만들고 싶다.


언젠가, 방비엥에 '장미여관'이 생긴다면.

그곳을 찾아온 누군가가 이렇게 말하겠지.




"아, 정 가이드가 드디어 만들었구나."











지난주에는 몸이 좋지 않아 연재를 쉬었습니다.

기다려주신 독자분들께 죄송한 마음을 전하며, 이번글을 통해 다시 돌아왔습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나갈게요.

잘 부탁드립니다.


라오스에 와보니, 마음에 작은 변화들이 찾아오고 있어요.

이제, 또 새로운 연재를 시작하려 합니다.

라오스에서 새롭게 펼쳐지는 삶의

이야기들을 하나씩 써 내려가 볼게요.


앞으로 더 많은 이야기로 찾아뵐게요. 함께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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