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끼리는 이야기 잘하다가 대중 앞에서 이야기할 때는 갑자기 톤이 바뀌고 조가 생기는 사람이 있다. 마치 웅변하거나 연설하는 것 같이 바뀌는 것이다. 갑자기 평소와 같이 다르게 말하니까 발음도 잘 안 되고 오히려 더 실수를 많이 하게 된다. 따라서 앞에 나가서 이야기할 때도 친구에게 이야기하듯이 말해야 한다.
사실은 그게 나였다. 나는 처음 강의를 하면서 특히 대학교에서 강의를 10년 정도 하며 나도 모르게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서 나에게 편한 강의스타일을 갖기 위하여 주입식 웅변조나 연설조 화법을 많이 사용하였고, 그것은 나의 말하기 습관이 되었다. 그래서 스피치학원을 10년 이상 다니면서 고치려 하였으나 나의 화법은 고쳐지지 않았다. 내 강의는 언제나 호응을 얻기보다는 실패할 가능성이 항상 높았다.
물론 연설이나 웅변조의 강의도 장점은 있다. 그것은 신뢰성을 줄수도 있고, 명확하게 정보를 제공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청중은 강의의 직접적인 내용으로 정보를 얻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럴 바에야 일반적인 대중이나 컴퓨터를 통하거나 직접 전문가에게 질문을 해야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사실 일반적인 청중이 강의를 통하여 얻고자 하는 것은 강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의 경험과 비추어서 해답을 스스로 찾아내려고 하기를 더 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편하게 들리는 연설문이나 웅변조의 강의는 거부감을 느끼기 쉽다.
앞에서 말한 대로 강의는 편안해야 하기 때문에 강의 때 크게 연설조나 명령조로 이야기하기보다는 강의할 때 친구한테 이야기해야 하는 말투로 해야 하며 이유는 세가지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연설이나 웅변조의 이야기는 음향적으로 권위적으로 들려서 거부감을 느끼기 쉽다. 마치 강요하거나 압박하는 것처럼 들리기 쉽다. 이러한 연설조나 웅변조가 성공하는 경우는 아주 드문데, 그 경우는 바로 국회의원의 지원연설이나 결혼식장에서 주례가 주례사를 힘차게 할 때뿐이라고 생각한다.
둘째, 연설조나 웅변조의 이야기는 상호소통보다는 일방적일 수밖에 없다. 청중을 배려하고 청중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아니라 한쪽으로만 정보를 전달하거나 명령적인 연설이 되어 버린다. 그야말로 나만을 위한 강의로 흐르기 쉽다.
셋째, 연설조나 웅변조의 말하는 사람은 여유를 가질 수 없다. 강사와 청중이 함께 강의를 통하여 상호작용해나가야 하는 데 혼자서 강의를 주도 해야 하므로 그야말로 엄청 바쁘고 전혀 쉴 수가 없다. 어쩌면 숨을 쉴 수있는 여유도 없다.
그동안 강의경험이 20년이 훨씬 지나서야 지금 이사실을 깨닫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어쩌면 아직도 못깨닫고 있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에게도 언젠가 다시 강의할 기회가 주어질 테니까 말이다.
그날이 오면 이제 정말로 마치 청중을 가장 가까운 친구처럼 옆자리에 있다고 생각하면서 편안한 미소를 띠며 이야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