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살다 보면 내가 고통에 빠져 괴로운 일도 있지만 내가 아닌 타인이 죽을 것 같은 고통에 빠져 괴로워한 경우가 많다.
우리는 보통 고통에 빠진 사람에 대해 진심으로 위로하는 마음도 있지만, 내가 아니어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남들의 괴로운 상황 그런 것인 남의 불행을 보고 위안을 찾는 자신의 이기적인 내면을 들여다 보고 자책하면서 부끄러워하기도 하고 반성하기도 한다.
'샤덴 프로이데'라는 말이 있다. 손실, 피해를 뜻하는 독일어 샤덴(Schaden)과 기쁨, 즐거움을 뜻하는 독일어 프로이데(Freude)의 합성어로, 다른 사람의 불행을 통해 쾌감, 행복을 느끼고 자존감을 회복하는 것을 뜻하는 심리학 용어다.
우리 사회는 톱니바퀴와 같이 맞물려 있으면서도 각자의 인생과 상황이 다르다. 승승장구하며 항상 행복해 보이는 사람이 있는 가 하면 항상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도 있다. 또한 대부분의 많은 이들은 희비쌍곡선을 겪으며 때로는 행복에 빠지고 때로는 고통과 괴로움에 몸을 떨기도 한다.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떤 외국 법정영화에서 '샤덴 프로이데'라는 개념이 나온다. 유죄판결을 받게 된 여성에 대하여 공격과 변호가 이어지는 데 여기서 변호인의 논조가 피고인의 유일한 혐의는 '샤덴 프로이데"라고 주장한다. 즉 남이 잘못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이야기한다.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샤덴 프로이데는 정말 잘못된 개념일까? 글을 읽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한가? 남의 불행을 보고 행복감을 느끼는 '샤덴 프로이덴'은 순기능도 있고 역기등도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부끄럽지만 베이비붐 시대에 경쟁에 대한 교육만 받았던 나는 남의 성공을 그렇게 좋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어렸을 때 정말 가난한 집의 육 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나는 열등감에 시달렸다. 무허가 이주민지역에 살았던 집에는 화장실이 없어서 공중화장실을 이용했어야 했다. 동네는 대폿집이라고 이야기하는 술집이 가득했다. 날마나 술집 종업원의 호객행위와 남자 손님과 싸우는 소리, 경찰관의 호각소리 나의 어린 시절은 혹독했고 목욕할 돈이 없어 샤워를 하기 위해 12월에 집안에 화장실이 없으니 수돗가에서 추운 겨울에 찬물로 몸을 닦아야 했다.
이에 반하여 그 어려운 시절에도 교수, 의사 등의 부모를 가진 친구들은 별다른 기복 없이 사회적 중산층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 반면에 난쟁이가 싸올 린 공이라는 소설에서 보듯이 상대적으로 집안이 어려웠던 친구들은 지금까지 아등바등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어렸을 때부터 순진한 편이었던 나는 가난한 집을 부끄러워했지만 부모님을 한 번도 원망했던 적이 없었다. 그냥 가난하게 태어났으니 여러모로 불편했고 그러한 불편함을 참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당시 좀 더 날카롭게 빈익빈, 부익부의 불평등한 환경을 원망하였다면 나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더 넓어지고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러한 불평불만은 지속될 수 없고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을 우리는 받아들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더 시각이 넓어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잘 나갔던 사람들, 사회적 특권층에 대해서 부모가 부자라는 이유로 커다란 문제없이 무난하게 중산층에 도달하는 시스템, 사실 최근에 있었던 의대입학과 관련된 유명정치인들의 몰락 등은 '샤덴 프로이데'를 반영했다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샤덴 프로이데'는 누구나 갖을 수 있는 사람의 자연스런 심리라고 생각한다.질투와 일맥상통하는 샤덴 프로이데는 비교뒤에 나타나는 자연스런 사람의 감정이다. 그 사람이 특별히 악해서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샤덴 프로이데'를 인정하려면 남의 불행을 받아드리는 데에도 선행조건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조건은 그 사람과 불행한 사태와의관계에 있어서 상관관계와 인과관계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아무런 관련성이나 영향도 없이 개인이 우연적으로 불행에 빠진다면 그것은 국가의 안전문제이고 공공성의 문제이다.
국가와 정부는 운에 따라서 누군가에게는 행복하게 하고 누군가에게는 불행하게 하는 시스템이 있다면 그것을 개선해야 한다. 그래야지만 우리는 미래를 예측하며 함께 웃으면서 행복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