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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의 서재 Feb 18. 2022

하라면 하고 까라면 까면 어떻게 될까

권위에 눌린 조직이 겪는 부작용과 그 치료법

“하라면 하고, 까라면 까.”


만약 내가 “현대 한국인 연구”라는 책을 펴내는 문화인류학자라면, 현대 한국 사회의 가장 특이한 단면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문장을 꼽으라고 하면 주저 없이 “하라면 하고, 까라면 까”라고 할 것이다. 한국인에게 이 말을 하면 모든 질문들은 종료된다. 무엇을 하라는 걸까? 어떻게 하라는 걸까? 구체적으로 무엇을 까라는 것일까?


불행하게도 이 말은 한국에서 참 자주 들을 수 있는 말이다. 학교, 군대, 회사, 조직 등, 사회 깊숙이 스며든 권력과 권위의 역학이 녹아있다. 위아래가 촘촘하고도 엄격하게 구분된 사회에서, 질문의 방향은 위에서부터 아래로 간다. 이 방향에 역행했을 때 듣는 말이 바로 “하라면 하고, 까라면 까”라는 말이다. 모든 질문은 종료되고, 그 이후에는 지시받은 대로 열심히, 그리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만 보여야 한다. 분명히 하라면 하고 까라면 까라고 했는데, 중간에 멈추고 “근데요...”라고 작은 질문이라도 던지고자 하면 더 험한 소리도 듣게 될 수 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형성된 문화적 특징을 해체하고자 하는 마음은 없다. 모든 문화적 특성이 그렇듯이, 부정적인 측면만 존재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모든 역량을 실행과 추진에만 집중했을 때 달성할 수 있는 성과는 얼마나 크던가. 국가 전체가 하라면 하고 까라면 깠기 때문에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고속 성장이 가능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에너지는 앞으로도 더 큰 기적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전에, 하라면 하고 까라면 깠을 때 달성한 성과는 이미 잘 알려져 있으니, 부작용은 어떤 것들이 있을지 한번 생각해볼 필요는 있지 않을까?


사실, 시키는 대로만 하는 것이 최선인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인간 세상에서는.



왜 부작용에 대해 생각해야 할까?


무엇이든지 성장할수록, 고도화될수록, 복잡해질수록, 자기 객관화, 자가점검이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개인도 그렇지만, 조직은 더욱 그렇다. 초기단계에서 중간단계까지는 고민보다는 실행이 우선한다. 어떻게, 무엇을, 왜 해야 하는지 따지기 전에 일단 부딪쳐보는 게 훨씬 더 빠르고, 효과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방식이 계속 유지되면, 한계에 부딪치기 마련이고, 부작용이 나타나게 된다. 일방적인 지시와 맹목적인 이행이 관습화 되면 초기에는 훌륭한 성과를 이룰 수 있다. 하지만 이 방식을 고집하면 조직 내 심각한 부작용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사고 발생 빈도가 늘어난다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어도 제동이 걸릴 수가 없다. 문제를 발견했을 때  ‘어? 이거 이상한데요?’라고 목소리를 낼 수 없게 만들었으니까. 결국 대형사고로 이어지고, 그 빈도 수도 높아진다. 처음에는 ‘막을 수 있었는데’라는 성찰이 이루어지지만, 나중에는 이마저도 사라진다.


똑똑한 사람들이 점점 없어진다

그래도 가끔,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있다. 불편함을 만들어내는 것을 즐겨서가 아니라, 이러다가 어떻게 되는지 먼저 아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까라면 까는 모습을 보여야지, 문제 제기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그러면 당신만 다친다’라고 부드럽게 경고를 받거나, ‘네가 뭔데 난리야!’라고 찍어 눌리다가, 결국 지쳐서 나간다.


결정권자끼리는 참 잘 지낸다

중간관리자부터 고위 결정권자까지, 검토를 하지 않는다. ‘해라’라고 하면 ‘하랍신다!’라고 외치는 사람들로 운영진이 구성된다. 문제가 있어도, 서로 견제하지 않는다. 윗선의 결정에 의문을 제기하는 일방성이 존중되려면, 윗선끼리도 서로 적당히 봐줘야 한다. 윗선의 결정에 도전하는 모습은 절대 보이면, 스스로도 위험해지니까.


마름 역할을 하는 사람이 생긴다

하라면 하고, 까라면 까라고 지시가 내려오면, 정말 하고 있는지, 잘 까고 있는지를 감시하고 보고하는 사람이 생긴다. 가오 상하게 최종 결정권자가 이걸 일일이 쫓아다니면서 모니터링할 수 없으니, 이 역할을 역임하는 - 주로 자처하는 -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도 누가 맹목적으로 따르는지, 누가 불평하는지를 상세히 보고한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스스로의 이득을 취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이탈자가 많아진다

이런 조직에 새롭게 들어온 사람들에게는 조직문화가 더 선명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아직 뿌리가 제대로 박히지 않았기 때문에, 보다 용이하게 탈출할 수 있다. 버티려고 해 봐도, 일방적으로 누르는 조직에서는 압력이 위에서 아래로 향하고, 다양한 부조리가 아래로 갈수록 만연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무시된다. 조직 내 모든 센서가 위로 향해 있기 때문에, 아래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일들은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치부된다.


문제가 발견되면 미리 말할 수 있어야 했는데



그렇다면 이런 부작용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달콤한 약이 없듯이, 쉬운 해결책도 없다. 위에서 아래로 향하는 일방적인 지시로 인해 발생한 문제는 질문을 허용해야 해결된다. ‘난 언제나 경청한다’라고 책상 위에서 근엄하게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하라면 하고 까라면 까면서 지낸 세월이 오래될수록, 윗사람의 자리까지 오는 목소리 자체가 없다. 주기적으로 모아놓고 ‘자, 궁금한 거나 질문 있으면 허심탄회하게 말해봐’라고 해도, 아마 ‘아무 이상 없습니다!’라고 외치는 마름 말고는 모두 침묵할 것이다.


하라면 하고, 까라면 깠기 때문에, 질문하는 방법 자체가 체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래에서 위를 향하는 질문은 편하지 않다. 질문을 허용하면 윗사람은 번거롭고 불편하다. 특별히 권위적이지 않아도 그렇다. 아래에서 위를 향하는 질문은 경험과 지식의 비대칭성 위에서 이루어진다. 아랫사람은 상대적으로 덜 알고, 덜 경험해보았다. 친절하게 설명해줘도, 잘 모르고, 잘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렇다고 ‘네가 잘 몰라서 그러니까 일단 해’라고 누르거나, ‘스스로 해보려고 하기는 했어?’라고 쏘아붙이면, 부작용은 지속된다. 그러니까 질문을 허해야 한다. 그리고 그 질문들은 하나같이 불편하다.


왜 해야 하나요?

기분 나빠하지 말자. 일을 시키기 전에 목표를 알려줘야 한다. 장기적인 목표가 무엇이고, 어떠한 성과를 도모하려는지를 알려주는 과정을 거치면, 초반에는 피곤하지만 일이 진행될수록 편하다. 중간에 방향성을 잃고 헤매지 않게, 처음부터 목표를 확실하게 설정해주면 모두가 편하고, 나중에 목표가 바뀌어도 훨씬 수용적이다.


꼭 이렇게 해야 하나요?

이런 질문도 반기자. 시킨 일을 하는 과정에서 헤매지 않게, 효율적으로 일을 하기 위한 사전 질문이다.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 있을지, 이참에 나도 한번 살펴보자. 아주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인 방법만 남아있다면, 일단 지금은 그대로 하고 나중에 어떻게 개선하면 좋을지 물어보자. 이런 질문이 없이 혁신이 이루어질 리가 없지 않은가?


안 하면 안 되나요?

사실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필요하지도 않은 일에 시간, 사람, 에너지를 쏟기 전에 한 번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 만약 이 질문에 답할 수 없다면, 안 해도 되는 것인데 관성으로 해오던 것일지도 모른다. 너무 오래전에 시켜서, 시킨 사람의 기억에도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안 해도 된다는 답을 얻은 후에도, 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안 해도 되는지 질문을 허용하면 생각보다 많은 부담이 덜해진다.



질문은 불편하기 때문에, 질문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관리가 필요한 법이다. 하라면 하고, 까라면 까면 실행과 유지는 될지 몰라도, 성장은 이루어질 수 없다. 그리고 성장은 고통스럽다. 하지만 성장하고 성숙하지 않으면, 조직 내에 바보들만 늘어난다. 눈치는 빠르지만 생각은 없고, 고집은 부리지만 방향성은 없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난다. 새로운 사람을 뽑아도 견디지 못하고 나가버리고, 훌륭한 사람이 와도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이빨을 나려면 잇몸이 찢어져야 하듯이, 권위에 눌린 조직을 고치려면 질문을 허해야 한다.


초보와 신입의 질문을 듣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다. 쉽지 않지만, 질문을 허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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