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크리스마스에 모두가 즐거울 텐데 나는 왜 이럴까
당신을 크리스마스를 위한 첫 번째 책. 김금희, <크리스마스 타일>
분명 의도하지 않았습니다만, 시계를 보니, 12시 25분이더군요. 크리스마스 추천 책을 쓰는 지금 이 타이밍에 12시 25분이라니. 분명 일종의 계시, 혹은 행운, 아니면 어떤 미스터리하고 신비로운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좋은 예감이 듭니다.
분명 여러분들은 제가 바보 같다고 생각할 것 같아요. 별 것 아닌, 사소한 것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다니 한심하네. 혹은 싱겁네 하고 말이죠. 그럼 이쯤에서 여러분들에게 하나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난 날이기 때문에?
아닙니다. 12월 25일이 예수님의 탄신일이라는 이야기는 성서에서 찾아볼 수가 없고 심지어는 모른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탄절이 12월 25일이라는 사실은 그저 우리들의 추측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12월 25일을 특별하게 여기게 된 걸까요?
이번 수업의 주제는 “이야기란 무엇인가?”였습니다. 인간들은 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지, 좋은 이야기란 무엇인지? 어떻게 써야 좋은 이야기를 쓸 수 있는지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그중 제게 가장 기억 남았던 이야기는 ‘고독’에 관련된 이야기였습니다.
'"고독"이란 자기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와 소속감이 어긋날 때 비로소 발생합니다.'
이 문장을 들은 순간, 저는 깨달았습니다. ‘고독’이라는 단어가 나의 언어들이 살고 있는 세상 속에서, ‘외로움’과는 분명 다르지만, 말로 설명할 수 없었던 영역에서 벗어나 어느새 다른 차원의 개념으로 넘어가고 있었다는 것을요.
살면서 한 번쯤은 드는 궁금증이 있다.
크리스마스에 세상 사람들은 어떤 특별한 일상을 즐기고 있을까?라는 궁금증말이다. 나와는 다르게..
사실, 굳이 나도 안다. 별다른 일상을 보내지 않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들추고 싶지 않지만 그 사실을 확인해 보고는 싶다.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으면서도, 나만 혼자 이러고 있는 것만은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은 마치, 우리 모두의 판도라의 상자 같은 것이 아닐까.
김금희의 연작소설 <크리스마스 타일>은 우리가 보지 못한 크리스마스의 판도라 상자를 열어서 보여준다.
책 표지와 내용의 온도차는 크다. 표지만 보았을 때는 따뜻하고 아기자기하고 사랑스러운 이야기들을 기대하게 하지만, 고작 종이 3장의 차이만으로 우리를 현실 속 차가운 눈발이 내리는 거리 위로 떨어뜨리고 어느새 우리가 마주하고 싶지 않은, 애써 눈더미 속에 파묻어놨던 진실들을 마주하게 한다.
작 중 이야기들은 마치 타일처럼 옴니버스 형식으로 이어져 있다. 그리고 모든 에피소드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첫째, 크리스마스 속에서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아니, 평소보다 더 열심히 일상을 보내는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둘째, 서브 캐릭터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일인칭의 시점이기에 이야기하는 ‘나’가 존재하더라도 주변인물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 속에서는 주인공처럼 느끼게 한다.
마지막, 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다양한 형태의 인간관계 속에서 타인과 ‘거리’를 두고 있다.
그 '거리'란 예컨대, 은하에게 오빠네와 조카 겨레란, 신한가을에게 직장 동료 신은미란, 옥주와 친구들이란, 양진희에게 첫사랑 주찬성이란, 세미에게 죽은 반려견 설이란, 소봄과 재형 그리고 지민과 맛집 알파고 현우 에게 서로란
과 같이 살아가면서 평범하게 발견할 수 있는 관계의 형태들이다. 주인공들은 그 관계들이 사회에서 암묵적으로 요구하는 일정한 역할을 잘 수행하지 못하는 자신들의 모습에서부터 '거리'가 있다고 느끼고, '고독'한 감정에 빠져든다.
이런 주인공들을 통해 작가는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분명하게 떨어져 있다는 ‘거리감’을 느끼게 하는 존재들은 어쩌면 아주 먼 타인이 아니라 나를 알고 있는 가까운 존재들이라는 것을 뚜렷하게 확인시켜 준다.
‘고모 이제 안 아파요? 다 나았어요?’하는 메시지가 왔을 때 은하는 어떤 답을 해야 할지 몰라 대화창을 물끄러미 보고 있어야 했다. 그렇게 해서 정말 어떠한지를 곰곰이 따져보는 이 밤은 어떤 용서도 구원도 ‘수거’도 필요하지 않은 그저 흔한 은하의 크리스마스였다. - 은하의 밤 中
할머니는 인생에 필요한 경계랄까 교훈이랄까 하는 것들을 진지하게 알려주기도 했다. 그중 기억에 남는 말은 “너무 상한 사람 곁에는 있지 말라”는 것이었다....
“너무 가까우면...... 차라리 눈을 감게 되니까.” - 데이, 이브닝, 나이트 中
힐끔 돌아보자 남자애는 여전히 거기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렇게 뒷모습을 바라보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몸이 오징어처럼 늘어나고 늘어나 아무리 달려 나가도 그 자리에 나풀거리는 촉수 하나쯤은 남아 있는 일 같다고 상상했다. - 하바나 눈사람 클럽 中
작가는 특유의 통찰력으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거리감을 자신만의 감성으로 포착해 실제 같은 생생한 이야기 속에서 녹여내고 있다. 한 술 더 떠서, 작가는 짓궂게도 일상 속 평소에 인물들이 바라보지 못하거나 애써 외면했던 소격 된 관계들을 크리스마스의 특유의 정서를 통해 밖으로 끄집어내 주인공들이 직접 마주하게 한다.
이로 인해 결국 그들의 관계는 같은 일상 속에서 다시 한번 수면 위로 드러난다.
그리고, 크리스마스를 통해 주인공들은 평소에 묵혔던 관계에 대한 불편한 감정과 거리감들을 더 솔직하게, 대담하게, 담담하게 마주하고 묵혀 두었던 관계 속에서의 ‘고독’으로부터 마침내 자신을 해방시키고 있다.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키고는, 교수님께서 말씀을 이어가셨습니다.
'고독'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들의 어긋남을 마주할 때, 동시에 마음속에서 '저항감'이 생겨납니다. 그렇게 해서 생긴 '저항감'은 우리 자신을 향하기도 하고, 때론 타인을 향하기도 하죠.
그리고 그 '저항감'을 드러내고 싶다는 마음으로부터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시작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의 이야기는 실패합니다. 그 이유는 철저히 자신만의 시선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죠.
상대의 시선에서 당신의 '고독'을 바라보게끔 하세요. 우리가 같은 세상에서 사는 이상 언젠가는 분명 시선들이 맞닿는 지점이 있을 것입니다.
수업이 끝나고 저는 내려오면서 생각했습니다. 크리스마스가 성공한 이야기였구나.라는 것을요.
처음 제가 여러분들께 했던 질문, 12월 25일이 왜 우리에게 특별한 날이 되었을까.라는 질문을 기억하시나요?
먼 옛날 로마에서 기독교인들이 이교도 개종자들이 모시던 태양신의 탄신일이 12월 25일이라는 것을 알고서 예수님의 탄신일을 12월 25일로 만들어 진심으로 그들을 기쁘게 믿도록 하였다는 이야기. 개종자들의 시선에 서서 그들의 '고독'을 이해했기에 그 마음은 훗날, 전 세계인들에게 전해져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진심으로 기뻐할 수 있는 기념일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김금희 <크리스마스 타일>이 여러분들이 기대하는 크리스마스의 환상을 충족시켜 주지 못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 속에서 각자가 가진 이 날 하루만큼은 이 크리스마스라는 날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 생각하고, 서로가 가진 '고독'한 이야기들을 궁금해하고 그리고 이야기 나누는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 이 책을 가장 먼저 추천해 봅니다. 그럼 작가의 말을 끝으로 책소개를 마치겠습니다.
어쩌면 내가 아니라 소설을 읽어줄 분들을 통해 크리스마스 타일 속 인물들이 더 씩씩하고 멋지게 세상 속으로 근사하게 섞여들 것만 같다. 그렇게 해서 맞이할 모두의 겨울에 평화가 있기를, 각자가 완성한 크리스마스 풍경들이 그 각자의 이유로 사랑받기를 바란다. 우리는 무엇도 잃을 필요가 없다, 우리가 그것을 잃지 않겠다고 결정한다면.
- 김금희 <크리스마스 타일> 작가의 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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