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진짜 벌레일까?
장작의 내 맘대로 리뷰�
평점: ⭐️⭐️⭐️⭐️(4/5)
한 줄평: 누가 진짜 벌레인가
#3. 세번째 장작
변신/ 프란츠 카프카 / 전영애 옮김/ 민음사
“내외는 이제 딸을 위해 착실한 남자도 찾아야 할 때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하여 그들의 목적지에 이르러 딸이 제일 먼저 일어서며 그녀의 젊은 몸을 쭉 뻗을 때 그들에게는 그것이 그들의 새로운 꿈과 좋은 계획의 확증처럼 비쳤다.” - pg.79
#1. 제목
<변신>. 독일어 원제 Die Verwandlung, 영어로 Metamorphosis로 “외형과 성격에서의 커다란 변화”라는 뜻. 생물학적 용어로는 ”변태”라는 뜻도 있다. 원래 제목은 “빈대”였으나 “변신”으로 출간됨 #2. 표지: 벌레 그림, 과연 적절한가? 오늘날 <변신>의 대부분 책을 보면 표지나 책 속에 벌레 그림이 그려져 있지 않은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과연 벌레 그림이 <변신>의 표지에 적절한 것일까?
1. 작가의 반대
누가, 왜 벌레를 그리기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카프카는 1915년 당시 초고가 출판되기 전 출판사에 전하길, 자신의 책에 절대로 벌레의 모습을 보여서도 연상 시켜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2. 환상 문학을 느끼는 재미 반감.
우리는 흔히 카프카의 <변신>을 환상 문학으로 알고 있다. <환상문학입문>의 저자 츠베탕 토도로프에 따르면 ‘환상문학’의 조건으로 독자가 작중인물들을 현실 속 인물들로 생각하고 사건들을 초자연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것인지, 자연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것인지 결정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망설임’을 말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심리적인 ‘공포’가 유발되기도 한다고 말한다. 보통 ‘공포’를 더 느끼는 상황은 그것이 드러나 있을 때가 아니라 숨겨져 있을 때이다. 따라서 벌레를 표지에 그대로 그리는 경우 독자의 흥미가 반감되리라 생각된다.
3. 애초에 정해진 벌레란 없었다.
원문에서도 벌레에 대한 묘사가 애매하다. 해충이라는 얘기만 공통으로 등장할 뿐 바퀴벌레, 딱정벌레, 쇠똥구리 등 다양한 번역이 가능하다. 또한, 작가 본인이 특정 벌레를 염두에 두지 않고 썼다는 점에서 벌레를 정해놓고 그리는 것은 화가 본인의 해석일뿐 독자의 상상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다.
4. 20세기 환상문학 카프카의 <변신>은 엄밀히 말하자면 토도로프의 환상문학 범주에 들지 못한다. 그의 환상문학의 조건에는 시와 알레고리처럼 독자들이 망설임 없이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변신>은 독자들에게 도입부부터 벌레로 변하는 주인공을 보여준다. 이에 독자들은 줄거리 전개상 어쩔 수 없다고 판단하여 불가항력을 통해 인정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를 망설임 없이 현실적으로 수용하도록 한다.
하지만, 이 수용이 결코 현실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독자는 인지하고 있다. 때문에 ‘경이 문학’과 ‘괴기 문학’이 합쳐진 다른 차원의 환상문학이 탄생한 것이다. 그래서 토도로프는 <변신>을 기존의 환상문학과는 다르게 분류하며 <변신>의 환상성에 대해 “보편화된 환상”이라고 평가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카프카는 즉, 현실이 곧 환상이라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 것이다.
그의 말처럼 실제로 독자들은 현실 속에서 벌레 역할을 하는 누군가를 생각하기도 한다. 이로써 인간의 실존적 모습들을 찾아내기도 한다. 그러나 벌레를 그려진 책표지를 보는 순간 우리의 환상의 형태를 제한해서 생각할 수밖에 없다. 결국, 20세기 환상문학의 대표작을 가치를 반쯤 떨어뜨린 채로 보게 되는 셈이라 생각된다.
#3. 내용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장남이자 외판원인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잠에서 깨어보니 벌레가 된 자신을 발견한다. 출근 시간이 늦어지자 가족들은 그를 재촉하지만, 그는 문을 잠근 채 나오지 못한다. 그러다 지배인이 직접 집으로 오게 되어 결국 문을 열게 되었지만, 그의 모습을 본 지배인은 달아난다. 그렇게 벌레가 된 “그레고르 잠자”와 그의 가족의 불편한 동거가 시작되고 그를 유일하게 살피는 사람은 여동생이었다. 그렇지만 시간이 흘러 여동생도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그녀도 그의 존재에 소홀해진다. “오빠”에서 “괴물”이 되고, 급기야 “저것”이라 불리게 되면서 가족 구성원에서 아예 배제된다. “저것”이라 불리는 결정적 계기는 그가 여동생의 바이올린 소리를 듣기 위해 세 명의 세입자 앞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였다. 여동생의 진심을 들은 그는 죽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최후를 맞이했고 가족들은 그의 죽음에 기뻐하며 희망찬 미래를 계획하는 결말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4. 장작의 생각
1. 무슨 벌레일까? - 답은 없지만 순수한 궁금증으로 찾아봤다. 1. 해충 2. 장갑차처럼 딱딱한 등 3. 활 모양의 각질로 나누어진 불룩한 갈색배 4. 가느다란 여러 개의 다리/ 수많은 작은 다리 5. 몸이 심하게 넓적했다. 6. 머리를 돌리는 데 따라 서서히 몸도 돌아갔다.-> 몸통과 머리가 연결됨? 7. 서로 얽혀 허우적거림 8. 쇠똥구리, 딱정벌레로 풀이됨 9. 가주성을 띄고 있다. 10. 상한 음식을 좋아한다. 특히 치즈. 열심히 찾아봤다! 애수시렁이 혹은 권연벌레 등이 가장 유사한것 같다!
2. 변신 속 가족은 가난한 사람들인가? -X 1) 하녀와 가정부를 부리고 있었다. 2) “후일 그레고르가 돈을 많이 벌어, 온 식구의 낭비를 감당할 수 있었고 실제로 감당하기도 했건만 말이다.”라는 말은 형편이 유복했다는 것을 뜻한다. 3)잠자 부부를 제외하고 각방을 쓰고 있는데, 세를 내놓을 방이 있다는 것은 집의 크기가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 “세 사람의 직장이 썩 괜찮았으며 특히 앞으로는 상당히 희망적이다.”라는 언급과 “가장 큰 상황의 개선은 물론 집을 한번 바꿈으로써 쉽게 이루어질 것임이 틀림없다”라는 언급을 종합해봤을 때 그들이 분수에 맞지 않게 사치를 부리고 살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들을 알고나서 그레고르에 대한 안타까움과 씁쓸한 감정이 배가 되었다.
#5. 마무리하며
카프카의 <변신>이 명작이 된 것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고르의 ’변신‘은 단순히 환상적 요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실존적인 가치는 무엇인가? 에 대한 탐구의 주제가 되기도 하며,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사실 이렇게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것은 “과연 진짜로 그레고르는 변신했는가?”라는 의문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그레고르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는 시점에서 우리는 그레고르의 내면 서술이 사실인가?라는 의심하게 된다. 작중 인물들이 그의 모습을 보고 놀라거나 쇠똥구리라고 부르는 장면도 어쩌면 그가 진짜 변신한 것이 아니라 정신적 문제가 있어 벌레 같은 행동을 하는 그레고르를 칭하는 것이라는 합리적인 의심이 가능하다. 한편, 그레고르의 ’변신‘ 이후 가족들의 변화 또한 일종의 ’변신’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 중 가장 변화가 두드러지는 인물이 누이동생인데 그녀가 아무것도 못 하는 온실 속 화초에서 경제 활동을 하는 사회인이 되는 모습은 유충이 성충이 되는 과정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특히 가장 인상 깊었던 소설의 마지막 문장, “그녀의 젊은 몸을 쭉 뻗을 때 그들에게는 그것이 그들의 새로운 꿈과 좋은 계획의 확증처럼 비쳤다.”는 또 다른 “벌레”가 탄생할 것임을 예상하게 했다. 그리고 이를 기쁘게 지켜보는 내외의 모습은 공포를 넘어, 역겨움을 느끼게 했다. 그렇다면 이 소설에서 진정한 ’벌레‘는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