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바람은 안 들 것 같은 나란 사람
나이에 맞는 것을 하라는 어른들의 말씀을 듣고, 또한 그런 말들이 가득한 책들을 읽으며 자랐다.
" 그 나이에 즐길 수 있는 것을 즐길 것"
20대의 대학생, (그리고 나중엔 직장인) 싱글 여자가 뉴욕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란 무엇일까?
일단 내가 제일 먼저 한 것은 "공부" 였다고 앞서 말했다.
(그리고 언어를 완전히 배울 것.
언어를 모르는 것과 아는 것,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것은 유학생활을 즐기기 위한 필수 요건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
그리고, 뉴욕이라는 곳(아니면 처한 어떠한 곳이라도)에서 문화를 즐기라고도 전편에서 피력했다.
그렇다면 다음은 "춤추기"다!
나는 몸치다.
춤도 부끄러워서 못 추고 부모님이 춤추는 모습도 못 보고 자랐다.
웃으며 무언갈 (예를 들어 취미?) 즐기는 모습도 본 적이 없고, 캠핑도 다 같이 간 적이 없다.
바다도 한 번도 가족끼리 간 적이 없다.
늘 밤낮없이 열심히 일하시고 아주 가끔 맛난 거 먹으러 나가는 정도만 알 알지, 음주가무는 엄마 아빠 두 분 다 즐기지 않으셨다.
그러나 나는 달랐다.
남들이 놀 때 빼는 것을 지독히 싫어했다.
언제나 분위기에 맞추며 재미있게 노는 것 또한 젊음을 즐기는 것이라고 무의식 중에 생각했고, 그래서 어떠한 이벤트에 초대받으면 그곳에 가서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아닌... 잘 뛰어노는 콩자루가 된 것처럼 들썩거렸다. 못 추는 춤이라도 열심히 둠칫 거렸고, 술도 꿀꺽꿀꺽 잘 마셨다.
그 나이에 맞는 음주가무를 다 하고 뉴욕의 파티에서도 놀 거 다 놀고, 미련 없이 유명한 루프탑이건 레스토랑이건 나가서 즐겼다. 물론 "적당히", 위험하지 않은 선에서 놀아야 한다는 건 당연하다. 아무도 나를 책임지거나 데리러 오는 가족도 없기에 안전만은 지키려 노력을 했다.
내가 20대 초반, 중반을 뉴욕에서 보내며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었다면 아마 지금 늦바람이 날지도 모르겠다. 안 해본 것에 대한 미지의 세계... 이러면서 경험하려 했을지도?!
하지만 그 나이에 해도 욕 안 먹고 그러려니... 하는 것들을 모두 도장 깨기처럼 끝마치자, 지금 마음에는 아무런 미련도 없고 후회도 없다.
그저 잘 즐긴 20대 - 그 설렘과 즐거움만이 뉴욕과 연관 지어진다.
대학을 졸업하고 들어간 직장에서 처음 만난 상사는 60살의 유대인 여자 디자이너였다.
그분은 이미 자식 둘이 나랑 나이가 같거나 많았다.
졸업을 하기 전, 취업이 될지 안 될지 확실치 않아 일단 퀸즈(주거지역, 맨해튼과 가까움)에 방을 하나 얻어 친구와 살았다.
직장을 다닌 지 5개월쯤, 이사를 가야 해 집을 알아보던 중 상사에게 물었다. 마침 퀸즈와 맨해튼 두 지역에 가장 싼 매물을 찾은 터였다.
"나는 이렇게 박봉인데, 퀸즈에 다른 사람과 같이 살면서 돈 아끼는 게 나을까, 그래도 맨해튼 전체에서 가장 작아 보이는 스튜디오를 얻어서 사는 게 나을까요?"
그녀는 후후 웃으며 말했다.
"거기 사나 여기사나 어차피 돈 모으기 힘들고, 네 20대는 다시는 안 와. 젊을 때 맨해튼에 사는 거 추천!!"
어릴 때부터 어른말 잘 귀담아듣던 나는 당장 맨해튼을 선택해 이사 왔다.
너무너무 좁은 아파트였지만, 혼자 결혼 전까지 3년은 넘게 맨해튼에서 살면서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물론 돈은 하나도 못 모았다)
누군가는 욜로 족이라며 손가락질할지도 모르지만...
매일 춤을 추며, 노래를 하며, 맨해튼의 밤거리를 걷고 또 걸으며, 생각했다.
내 인생에 가장 좋은 날은, 바로 오늘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