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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마스쿠스 Oct 11. 2024

3.2 문화에 잠식되다

뉴욕에 흠뻑 담근 온몸.

해외에 유학이나 이민을 하면 얻게 되는 가장 큰 장점은 살게 되는 곳의 문화를 흠뻑 흡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다는 것이다. 


센트럴파크, 소호 거리, 첼시, 밋패킹...

뉴욕 맨해튼에는 수없이 작은 동네들이 각자의 이름을 가지고 이 좁고 긴 섬을 점령하고 있다. 

보통 본인이 살고 있는 동네를 몇 가, 이렇게 말하기보다는 - 나는 "Upper East Side"에 살고 있다거나, "Hell's Kitchen"에 살고 있다- 는 식으로 말하는 때가 대부분이었다. 


내가 다니던 대학교는 첼시구역에 있었는데, Garment District와 한인타운 32가와 매우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이태리에 거주하던 2, 3학년을 제외한 1, 4학년을 첼시에서 보냈다. 


나는 무작정 문화에 뛰어들기로 했다. 무엇이 있는지 아는 것도 없었지만, 그냥 온몸으로 이 도시를 즐기고 싶었다. 


 



첼시는 맨해튼의 중심에 있었고, 주립대학이라 학생수가 많은 만큼, 대학교에는 많은 활동들이 늘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에 하나가 20-30달러 정도에 구매할 수 있는 링컨센터의 오페라나 발레 공연 티켓들이었다. 

예를 들어, 수요일에 그런 티켓들이 학생센터에 풀리면 나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득달같이 뛰어가서 구매하곤 했다. 


뉴욕을 즐기고는 싶지만 보통 발레 티켓 같은 경우는 좋은 자리라면 100-150, 혹은 200달러 하기도 했기에 늘 좋은 기회를 잡아야만 볼 수 있는 특혜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 같은 사람은 거의 한 명도 없었다. 


아무도 발레나 오페라에 관심이 없었기에 혼자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클럽 입장료 20불은 아무 거리낌 없이 내고 10불짜리 샷을 마시고 파티를 했지만 정작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공연에 같은 반 친구들은 돈을 쓰기를 꺼려했다. 사람마다 원하는 문화생활을 각기 다르기에...


줌바댄스를 알게 된 것도 학교에서 무료로 화요일 목요일 저녁 7시에 강사가 와서 가르쳐 준다기에 반바지 반팔을 입고 지하 댄스스튜디오로 내려가서 배웠다. 


완전한 몸치에 줌바에 나오는 음악은 알아듣지도 못하는 스페인어가 잔뜩 들어간 레게톤이 대부분이었지만 새로운 운동을 배우며 살도 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창피함도 없이 열심히 따라 했다. 


열 번 정도를 가니 선생님도 처음에 저 동양 사람은 뭐야 하다가 나중에는 인사하고 소소한 이야기 나누는 정도까지 간 것이다....


패션디자인과답게 대부분의 친구들은 패션쇼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고, 그런 우리를 위해 학교에서는 패션쇼에서 무료 봉사를 할 수 있게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1학년때는 아침 일찍부터 학생센터에서 줄을 서서 기다린 후, 가을과 봄, 두 번 패션쇼 도우미 지원을 하며 디자이너의 세계를 엿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아침 이른 시간부터 저녁까지 시간 되는 사람은 나와서, 하라는 모든 잡일을 하고 나면, 백스테이지에서 모델들이 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거나, 입구에서 안내 보조를 하며 패션쇼 자체를 즐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주어진다. 20불에 검은 티와 검은 바지를 H&M에서 사 입고 나는 하루종일 잔심부름과 커피, 점심 따위를 픽업하고 뉴욕 패션위크를 가장 먼저 보았다.


완전한 어둠에서 리드믹 한 음악이 패션쇼장을 가득 울리자 가슴은 두근거렸고, 유명인들이 턱을 괴고 패션쇼를 보는 그 자리에 나도 있다는 사실이 내가 뉴욕에 온 이유를 모두 정당화시키는 느낌을 받으며 온몸으로 뉴욕을 경험했다.  


그루폰에서 모든 투어를 가장 싸게 구매하고 타임아웃 뉴욕 신문에서 조각조각 쿠폰을 오려내서 세일을 받을 수 있는 것들을 사고. 샘플세일을 찾아다니며 옷을 구경했다. 


가진 적은 돈으로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했다. 

열심히 걸어서 지하철 비를 아껴서 운동한답시고 전 맨해튼 거리를 운동화를 신고 힘차게 활보했다. 뉴욕의 모든 패션을 보고 경험하리라, 눈을 크게 뜨고 발걸음은 넓게.

빠르게 걷는 뉴요커들 사이에서 열아홉 살의 나는 문화에 잠식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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