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이 넘쳤던 스무 살이었다.
흡사 손이 눈빛으로 뚫릴 정도로 우리는 진지하게 교수님이 스케치하고 있는 바디를, 그의 손놀림을 캐치해내고 있었는데, 이런 집중은 도대체 어디서 찾아볼 수 있는지 경이스러울 뿐이었다.
우리는 Fashion Institute of Technology 뉴욕 캠퍼스의 패션디자인과 1학년 열네 개의 그룹 중 10조의, 30명의 학생이었고, 이 시간은 1학년 1학기 첫 수업인 패션드로잉 시간이었다.
여성복을 전공하는 우리는 각 교수님들의 섬세한 지도아래 실력을 쌓아나가야 하는 햇병아리 같은 새내기로,
교수님은 우리에게
"너희는 나한테 각각 식물이란다. 어떤 씨인지, 어떤 꽃을 피울지 몰라. 그리고 나의 역할은 그런 너희가 잘 자랄 수 있게 물을 주는 일이야. 기대되지 않니? 어떻게 너희 하나하나가 자라나게 될지?"
2008년 8월 처음 들은 이 말은 너무나 깊게 각인되어, 내 머리에 지금까지 자리 잡고 있다.
여전히 눈은 교수님의 손에 가있었지만 무심코 생각했다. 나는 어떻게 자라나게 될까.
이 중요한 시기에, 어떻게 해야만 아무 후회 없이 성장할 수 있을까?
그리하여 결심했다.
무엇을 하든 불사르리.
그렇다.
나는 11가지 과목을 1학년 1학기에 수강신청했다(!)
학비는 한 학기당 5000불가량.
그러나 학점은 최대가 21.5점을 들을 수 있었는데, 학점당 돈을 내는 것이 아니고 학기당 내는 것이었기 때문에 최소 이수를 하든, 최대로 듣든, 그것은 본인 재량인 것이다.
아직도 완전히 괜찮지는 않은 집안 형편에 대학에 꾸역꾸역 오게 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공부하고 배워나가는 것 밖에는 없다고 생각하며 최대한 열심히 하여 돈값을 하자는 생각뿐이었다.
학교 앞 기숙사에 살면서, 최대한 조정한 스케줄을 짠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수업을 듣고, 토요일에 교양수업도 들었다.
필수과목인 디자인과 의상 만들기를 배우고, 마케팅, 스피치, 영어, 서양미술학을 배운다.
근데.. 생각보다 공부해야 할 양이 너무 많았다...
아무리 방학 때 복장학원에 다니며 배우긴 했지만 일단 준비할 준비물도 어마무시하게 많아서 어깨는 끊어질 것 같았고, 계속 일주일마다 돌아가며 전 과목 과제를 준비하고 내야 한다는 사실은 과제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현실을 잘 일깨워주었다.
수업이 하루종일 꽉 차있다 보니 과제할 시간은 밤뿐이었는데, 그리는 것은 학교를 다녀온 후 간단히 식사한 후 시작되었다.
하다 보면 9시, 10시는 기본이고 11시 12시까지 이어지는 일이 다반수였는데 완벽주의 자면서 굉장히 경쟁심이 투철했던 나는 무조건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노력에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옷을 만드는 작업은 기계가 학교에 있기에 새벽 2시까지 열려있는 학교 작업실을 집처럼 왔다 갔다 하며 일주일에 두세 번은 새벽까지 작업했다. 그 작업실에는 매번 함께 작업하는 친구들이 있었기에 늘 재미가 있었고, 텀블러에 진한 커피나 에너지 드링크가 있었고, 열정으로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쉬운 작업을 했으면 빨리 끝났을 텐데.. 높은 점수를 받고 싶은 마음에, 어려운 디자인, 손이 많이 가는 디자인을 골라서 만들었기에 시간은 더욱 오래 걸리고 어떤 때는 옷 하나 만드는데 12시간이 걸린 적도 있었다. 그런 열정이라면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든 정말 성공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1년 내내 이렇게 산 결과, 모든 과목을 A로 패스하며 짜릿한 기쁨을 맛보게 되었다.
그런데...
어디에 있던, 1등 하고 싶다며 노래를 부르던 나였지만 1학년이 끝나자 내 안의 뭔가가 툭- 끊어진 느낌을 받게 된다.
그것은 "번아웃" 이었다.
그리고 나는 번아웃이라는 말이 존재하는 줄도 모르던 갓 20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