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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다올 Oct 22. 2024

01 하동장댁 사람들

   하동장댁 사람들    



           

   둘째 손자 백일이 일주일밖에 안 남았는데 할매와 어메는 하동장 할배 입만 바라보고 있었다. 온 집안이 조용했다. 장손 승찬이가 태어났을 때는 2대 독자 집안에 아들이 태어났다고 동네방네 떠들썩했다. 할배가 나서서 친척들을 초청하여 장손 백일잔치를 열었다. 승찬이가 돌이 되자 할배와 아배는 친지들과 마을 사람들을 초대하여 성대하게 돌잔치도 했다.        

   할매가 넌지시 아들인 아배에게 물었다.

   “얼라 백일 할라믄 시장도 보고 떡도 해야 안 하나?”

   “아부지가 아무 언질도 안 주는데, 내보고 우짜라꼬요?”

   할매는 어이가 없었다. 제 아들 백일잔치하자는데 핑계를 자기 아버지 탓으로 돌리니 울화통이 터졌다. 참다못해 할매가 할배에게 말했다

   “영감 둘째 손주 백일이 낼 모렌데 우짜믄 되는기요?”

   “어허! 백일잔치가 대수인가? 얼라가 우째 될지도 모르는데······.”

   할매는 할배가 하는 말에 기가 찼다. 손자가 또 경기를 일으키면 잘못될 수도 있다고 말하는데, 할매 억장이 무너졌다. 할매는 더 이상 손자 백일잔치하자는 말을 입 밖에 꺼내지도 못했다. 어메는 한숨만 쉬면서 남편에게 눈총을 주었다.

   “우째 할라캅니꺼? 얼라 백일이 내일인데, 우짤끼요?”

   어메가 원망 섞인 투로 남편을 쏘아붙였다. 아배는 아내 잔소리가 듣기 싫어 마을회관으로 마실을 나갔다.

   보름 전의 일이었다. 그날도 할매가 둘째 손자를 업으려고 안방으로 들어갔다가 기겁을 했다. 아기가 의식을 잃고 입술이 새파랗게 질린 채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에미야! 애비야! 얼라가 와 이라노? 얼라가 숨을 못 씬다. 얼른 와 바라!”

   다급한 할매의 목소리에 어메가 부엌에서 달려왔다.

   방에 들어온 어메가 벽장 빼닫이를 열고 실패를 찾았다. 어메는 바늘을 머리카락에 몇 번 쓱쓱 무지르고 난 뒤 아기를 얼싸안고 아기 이마와 엄지손가락을 바늘로 땄다. 그제야 아기는 세상에 태어났을 때처럼 ‘응애! 응애!’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어메가 아기 손목 맥을 짚어보고 “아이고! 인자는 살았다.”하고 크게 한숨을 쉬면서 아기를 이불 보따리에 쌌다.

   “아이구야! 큰일 날 뻔했다. 에미야!”

   할매는 다리에 힘이 풀려 방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목이 말랐는지 너무 놀래서 그랬는지 할매는 윗목에 있던 주전자를 들고 벌컥벌컥 물을 들이켰다. 한차례 홍역을 치르고 나서 할매는 바깥을 쳐다보았다.

   집안에 난리가 났는데도 할배는 사랑채에서 나와보지도 않고 봉창 문을 통해 힐끗 쳐다보고 기침만 ‘에헴’ 했다. 무슨 일이냐고 바깥에 나와서 물어보는 게 인지상정이거늘, 아무런 인사가 없었다. 아배는 그날도 마을회관에서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하동장 집안 남정네들은 한결같이 썩어 문드러진 양반 흉내만 냈다.

   저녁 준비를 하던 어메가 아기를 등에 업고 부엌으로 나갔다.

   아기가 경기를 하고 난 후부터 할매는 늘 둘째 손자를 업고 다녔다. 손자는 옹알이도 잘하고 생글생글 웃기도 잘했다. 할매는 손자가 지 애비 어릴 때 모습을 쏙 빼닮았다고 연신 감탄했다.

   “시상에! 나락 씨종자 도둑질은 해도, 씨도둑은 못 한다 카드마. 지 애비 유갑이 얼라 때하고 염팡 빼 닮았제. 웃는 것도 염팡이라! 우째 이리 점잖노. 양바이다! 양바이라! 지 생이하고는 영 딴 파이라!”     

   누구 들으라고 하는 소린지 할매는 대청마루에서 아기를 보듬고 혼잣말을 했다.  

   “지 생이 승찬이는 울었다 카면 목이 씰데까징 안 그치는 기라! 아이고, 얼라 달개는데 이 할미가 식겁했다 아이가!”

   그러다가 내뱉는다는 말이 사랑채를 힐끗 쳐다보고 자기 영감을 은근히 빗대며 한마디 했다.

   “승찬이는 염팡 저거 할배 닮아가꼬, 고래 심줄에 황소 똥고집이라!”

   할매는 아기를 등에 업고, 손자 엉덩이를 깍지 낀 두 손으로 들썩이며 노래를 부르듯이 어르면서 안채 마당으로 내려섰다.

   “아이고, 이뿐 내 새끼! 쑥쑥 커 거라이!”

   할매가 둘째 손자 아명을 자기 아들 이름 ‘유갑’에서 마지막 글자 ‘갑’자를 따서 ‘작은 갑’이라고 짓고, ‘잔갑‘이라 불렀다. 할매가 손자를 잔갑이라 부르자 식구들도 모두 아기를 잔갑이라 불렀다.


   잔갑이가 태어난 봉래면 봉현마을은 예로부터 인물이 많이 나기로 소문 난 동네였다. 봉황이 날개를 활짝 펼친 봉래산이 남쪽으로 능선을 길게 뻗어 벌고개에서 잠시 숨을 돌렸다가, 다시 고개를 쳐들어 새알처럼 생긴 봉우리 세 개를 우뚝 세우고, 그 끝자락에 과부 궁뎅이마냥 펑펑짐하게 퍼진 산기슭을 일구었다. 바람 한 점 없는 이곳에 오십여 초가가 게딱지처럼 옹기종기 모여 둥지를 틀었다.

   하동장댁 뒤란의 언덕 탱자나무 아래에서 한가롭게 모이를 쪼던 수탉이 날개를 푸덕거리며 모가지를 쭉 빼 들고 ‘꼬끼오’하고 아침나절 정적을 깨뜨렸다. 닭장에서는 알을 낳은 암탉이 ‘꼬꼬댁 꼬꼬’하며 둥지 밖으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잔갑이가 돌이 지나 걸음마를 하고 말을 배우기 시작하자 하루하루가 달라졌다. 그제야 할배는 이장 편으로 아기 이름을 ‘영수’라고 지어서 호적에 올렸다.

   영수는 아기 때부터 영리했다. 하루는 영수가 닭장 문을 열고 달걀을 꺼내 오는 게 아닌가. 이를 본 형 승찬이가 어메에게 쪼르르 이르러 왔다.

   “엄마! 얼라가 닭장에 들어갔다.”

   어메는 깜짝 놀라서 되물었다.

   “얼라가 닭장에 들어갔따꼬? 달구 새끼가 아를 안 쪼샀나? 잔갑이는 괘안나?”

   그리고는 치마끈을 질끈 동여매고 텃밭에서 뒤란 닭장으로 급히 뛰어왔다. 닭장 문은 열려 있었다. 어메는 모이로 ‘구구’하며 닭을 불러 모은 뒤, 닭장으로 모이통을 옮겨 닭을 유인했다. 닭은 제집으로 다 들어가고, 어메는 닭장 문을 잠근 뒤 영수보다 달걀 행방을 먼저 찾았다. 다행히 계란은 영수가 고이 대청마루 보자기에 모셔놓았다.

   “아이고! 간 떨어질 뿐 했네. 시상에! 얼라가 용하제. 우째 이래 옹골차게 싸매 났노!”

   어메가 계란을 바구니에 담으면서, 어린 것이 이래 참하게 달걀을 보자기에 싸 놓았을까 하고 속으로 대견해했다.

   또 한 번은 영수가 막 두 돌이 지난 뒤였다. 아이가 장농 빼닫이 손잡이를 타고 다락에까지 올라가 놀고 있는 것을 승찬이가 보고 달려와 할매에게 일렀다.

   “할매! 얼라가 다락에 올라갔어예!”

   할매가 놀라 기절초풍할 것 같은 가슴을 억누르고 안방으로 급히 달려왔다. 영수가 헤헤 웃으면서 혼자 구시렁거리며 놀고 있었다.

   “아이고! 내 새끼, 잔갑아! 우째 그까징 올라갔노?”

   할매는 손자를 두 팔로 보듬어 안아 내렸다.

   눈썰미가 좋은 아기 영수는 어른들이 닭장을 들락거리는 걸 보고 닭장 문을 열고 달걀을 꺼내오질 않나, 높은 다락에 기어 올라가 놀지를 않나, 이때부터 할매는 손자를 데리고 다녔다.

   “우리 잔갑이, 어서 커거라이. 커서 심센 장군이 되거라이. 할미도 업어주고.”

   할매는 이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둘째 손자 영수는 경기 한 번 한 거 빼곤 잔병치레 없이 할매 품에서 무럭무럭 자랐다. 할매는 둘째 손자를 볼 때마다 “아이고! 내 새끼”하며 무르팍에 앉혀놓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기도 하고, 동네 마실 나갈 때마다 데리고 다니면서 골목 구경도 시켜주고, 노인들이 쉬는 마을 느티나무 정자에도 데리고 다녔다.

   영수는 혼자 느티나무 아래 흙바닥에 퍼질러 앉아 개미를 데리고 놀았다. 흙으로 울을 만들어 개미를 가두어놓고 훈련시키기도 했다. 한참 놀다 보면 개미는 어느새 어디론가 도망가고 없었다. 이번에는 울에다 나뭇가지를 꽂아 울타리를 만들고, 흙을 더 두툼하게 쌓아서 개미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단도리를 해놓았다. 하지만 가두어놓았던 개미가 어느새 울타리 나무를 기어오르고 있었다.

   영수가 “방에 가마이 있어라. 주인님이 맛있는 거 주께.”하며 달래보지만, 개미가 그 말을 알아들을 리 없었다.

   할매가 손자를 불렀다.

   “잔갑아, 인자 집에 가자. 밥 묵으러 가야제. 해거름 때가 된께, 할미 배가죽이 등짝에 착 다라붙었다.”

   영수는 할매 손을 잡고 골목 모퉁이를 돌아 웃등으로 올라갔다. 할매는 손자를 장독대로 데려가 얼굴부터 씻겼다.

   “씨게 심을 주고, 팽! 하고 풀어바라.”

   할매는 누런 코를 손으로 닦아주면서 손자 얼굴을 말끔히 씻겼다. 손톱 밑에 새까맣게 낀 흙도 깨끗이 씻기고 손자를 데리고 대청으로 올라갔다.     

   봉현마을 하동장댁은 봄에 초가지붕을 헐고 기와를 올렸다. 어메 배가 남산처럼 불러오기 시작했다. 초여름이 되자 영수 여동생이 태어났다. 할매가 안방 눈꼽재기창을 통해 소리쳤다.

   “애비야! 딸이다! 손녀다!”

   하동장 첫 손녀가 태어났다. 웬일인지 오늘은 아배가 술 마시러 가지 않고 마당에서 서성거리다가 딸 출산 소식을 듣고 대문을 나섰다.

   이번에도 할매는 밥과 미역국을 차려놓고 아기가 건강하고 무탈하게, 오래 살게 해달라고 삼신할머니에게 빌었다. 바깥마당에서는 할배가 금줄을 만들면서 한마디 내뱉었다.

   “지집아는 시집가믄 시마인기라. 망구 씰 데가 어딘노!”

   영감은 누구 들으라고 하는 소린지 지나가는 말투로 중얼거렸다. 그는 팔을 벌려 금줄을 재보고, 왼새끼 줄에 솔가지와 숯을 매달아 잡귀가 집안에 못 들어오게 대문에 걸어 놓았다. 집안은 정적만 흐를 뿐 별다른 기별은 없었다. 삼칠일이 지나고, 할배는 대문 밖에다 ‘카악’ 하고 가래를 내뱉고는 금줄을 걷었다.

   할배는 입버릇처럼 달고 사는 게, 여자는 시집가면 남이다, 남의 식구라고 “망구 씰 데가 어딘노”하고 말하곤 했다. 그는 독자로 태어나 제 할아버지와 할머니, 삼촌과 고모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할배는 어릴 때부터 한학을 배우고 사서삼경을 익혀 아는 건 많지만, 마을에 무슨 일이 생기거나 이웃이 억울한 일을 당해도 먼 산 쳐다보듯 나 몰라라 했다.

   오늘도 아배는 몸도 못 가눌 만큼 고주망태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할매가 대청마루에 드러누운 아들을 보고 나무랐다.

   “야가, 술에 무신 웬수가 졌나? 우째 그래, 맨날 술만 퍼마시노! 저 아래 본동 아재도 맨날 술통에 빠져 살더이만, 나이 오십에 중풍이 와갔꼬, 송장처럼 지내고 안 있나! 지발, 정신 좀 차리거래이!”

   인사불성이 된 아들을 보고 할매는 한숨을 내뱉었다. 영감은 밖으로 나와보지도 않고 사랑채 쪽문에 덧댄 손바닥만 한 유리창으로 안채 마당을 내다보았다.  

   어메가 ”아이고 술 냄새야! 배 속에 술고래가 들어앉았나, 저리 가서 누버이소!“하면서 남편을 안방으로 질질 끌고 갔다.

   그녀는 시집올 때부터 남편 술주정에 마음고생깨나 했다. 남편이 고주망태가 되어 집에 들어와도 여태껏 시어른 보는 데선 싫은 내색 한 번 안 하고 살았다. 이제 그녀도 시집살이에 이골이 났는지 시어른이 보든 말든, 시에미가 듣든 말든 남편 욕을 아무 데서나 하고 흉을 보았다.

   애비는 2대 독자로 태어났다. 그 아버지의 성품을 그대로 이어받아 고집불통에다 성질은 기차 화통을 삶아 먹었는지 불같이 급해, 동네 사람들은 ”똥고집“ 그 아버지에, ”기차 화통“ 그 아들이라고 수군거렸다. 아배는 2년제 중학교를 졸업했는데, 읍내에 나가면 위세깨나 하고 글줄깨나 읽은 위인으로 대접받으면서 유지들과 막역하게 술잔을 주고받았다.

   한 번은 여름에 타작한 보리를 안채 마당에 말리는데, 예고 없이 소나기가 쏟아졌다. 어메가 밭일을 하다가 급히 뛰어와 멍석을 추녀 밑으로 질질 끌어놓았다. 말리던 보리는 비에 젖어 어떤 보리알은 퉁퉁 불었다. 저녁때 술에 취해 집에 돌아온 아배가 이를 알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삿대질을 해댔다.

   “여편네가 집에서 뭐 한다꼬, 아까븐 보리를 다 베리 났노? 비가 오면 퍼뜩 하던 일 내빼고 보리부터 챙기야제!”

   어메가 남편 잔소리를 듣고 부아가 치밀어 아배 보굴을 채웠다.

   “이녁은 회관에서 빈둥빈둥 놀다가, 빨리 집에 안 오고 뭐 했는기요?”

   아배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동네가 떠나갈 듯이 고함을 지르며 손찌검을 하려다 멈췄다. 때마침 할매가 사랑채에서 고무신을 질질 끌고 나오다가 이 광경을 보고 내뱉듯이 말했다.

   “아따, 에미는 밭일하다가 뛰온기라. 시끄럽다 마, 고마해라! 동네 사람들 부끄럽다 아이가!”  

   어메는 심성은 착하나 눈치가 없었다. 그동안 참고 지내 온 게 억울해서 그녀는 ‘카악’ 하고 침을 뱉고 뒤란 텃밭으로 갔다.

   아무튼 지난여름에 하동장댁에 아기가 태어나 어른 넷에 아이가 셋, 머슴까지 여덟 식구 대가족이 되었다. 식구가 늘어나니 집안이 북적거리고 잔손이 많이 갔다. 어메는 밭일하면서 집안 살림을 하다 보니 낮에는 짬이 없었다. 그녀는 집에 돌아와 저녁 느지막하게 빨래하러 가곤 했다.

   오늘은 하동장댁 메주 쑤는 날. 할매와 어메는 어제 불려놓았던 콩을 가마솥에 가득 채우고 장작불을 땠다. 머슴 승이가 패 놓은 장작을 나르고, 영수는 곁에서 잔심부름을 했다.

   이래 바쁜 와중에도 할배는 큰 손자 승찬이를 사랑방에 앉혀놓고 글을 가르쳤다. 옛 선비들의 이야기며 집안 선조들의 일화를 들려주면서 무릎 교육도 했다. 사랑채에서 할배가 ‘하늘 천’하면, 손자 승찬이가 ‘따아 지’하고 화답하면서 조손간에 박자가 척척 들어맞았다.

   “아이고! 우리 장손 잘 한다이! 참 잘 한다이! 커서 우리 승찬이, 판사가 될래! 국회의원이 될래!”

   할배는 장손 승찬이에 대해 넌지시 큰 기대를 하고 있음을 은연중에 내비쳤다. 승찬이는 해가 거듭될수록 총기가 있었다. 할배가 무르팍에 앉혀놓고 ‘옥자동아’ ‘하늘 동아’ 하며 귀여워하니, 누가 감히 승찬이를 나무랄 수 있겠는가.

   오늘도 아배는 술에 떡이 되도록 취해 비틀거리면서 겨우 대문짝을 붙잡고 문지방을 넘어섰다. 간장 달이는데 정신이 팔려있던 어메가 남편이 대문으로 들어서는 걸 보고 구시렁거렸다.

   “집에 장 담그는 거 뻐이 알믄서, 또 술 마시고 오는구먼. 아이고! 저 웬수 꼬라지 눈꼴시리버서, 안 보고 살믄 속이 시원하겠구만.”

   아배가 아무리 코가 삐뚤어지도록 술을 마셔도 자기 욕하는 거, 흉보는 건 귀신같이 알아들었다.

   “뭐시라꼬! 여편네가 남편이 밖에 나갔다 들어오믄 ‘잘 다녀오셨소’하고 공손하게 인사를 해야제! 같잖다는 고 쌍판때기는 또 뭐꼬! 여편네가 집에서 뭐한다꼬 유세긴 유세고! 냉큼 물 한 사발 떠 온나!” 아배가 혀 꼬부라진 소리로 말했다.

   그는 축담을 붙잡고 엉금엉금 기다시피 하여 대청마루에 엉덩이를 걸치고서는 마루 기둥에 기대 고개를 떨군 채, 이내 코를 골기 시작했다. 어메가 이를 보고 속으로 ‘볼수록 참! 가관이다’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하는 수 없이 침까지 질질 흘리며 자는 남편을 깨워 안방으로 데리고 가서 뉘었다.     

   올봄에 장손 승찬이가 국민학교에 입학했다. 하동장댁에는 아침마다 승찬이를 학교 보내느라 작은 소동이 일었다. 책상 위에는 엊저녁에 보던 책과 공책과 연필, 지우개가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었고, 책가방은 방구석에 거꾸로 처박혀 있었다. 이러다 보니 다음 날 아침은 난리 북새통이었다.

   “할매, 내 공책? 내 연필? 지우개는?”

   승찬이가 어메에게 성질까지 부렸다.

   “빨리 챙기 도고! 뭐하고 있노! 도화지 사구로 돈 천 원 도고!”

   참을성 많은 어메도 한마디 했다.

   “엊저녁 때 챙겨 놓아야제. 와 이래 아직마다 난리고! 닮을 걸 닮아야제! 누구 닮아갔고 이래 난리고!”

   할매도 덩달아 마음이 바빠지고 조급해졌다. 한바탕 소동이 끝날 즈음 승찬이 동무들이 담 너머에서 불렀다.

   “승찬아! 학교 가자. 지각할라, 빨리 가자!”

   승찬이는 서둘러 가방을 둘러메고 사랑채를 향해 꾸벅 절을 했다.

   “할배, 할매, 학교 댕겨 오게십니더.”

   “그랴, 그랴! 잘 댕겨 와, 내 새끼! 차 조심하고!” 할매가 말했다.

   대문으로 허겁지겁 나가는 승찬이를 보고, 어메는 뒤따라 나가면서 차 조심하라고 일렀다.

   아배는 장남이 학교 가는 걸 먼발치에서 쳐다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할배와 할매도 장손이 학교 갈 때마다 사랑채 툇마루에서 손자 뒷모습이 벌고개 책바위를 돌아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며 대견해했다. 어린 영수는 형이 집안을 들쑤셔놓고 학교에 갈 때마다, 형을 따라 학교에 가고 싶어 부러움에 손가락만 빨았다.

   승찬이는 두뇌가 명석하고 눈치가 빨랐다. 하지만 그는 할배의 무한한 장손 사랑으로 어리광이 심하고 버르장머리가 없었다. 학교에서도 수업 시간에 옆 친구와 장난을 치거나 떠들다가 선생님으로부터 여러 차례 지적받기도 했다.

   “승찬이! 수업 시간에는 조용히 해야지.”

   승찬이가 담임 선생님을 물끄러미 쳐다보자, 선생님이 언성을 높였다.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조용히 하라고 했어, 안 했어? 딴 친구들 공부하는데 방해하면 안 돼!"

   승찬이 담임 선생님도 이런 소리를 자주 하다 보니 생활기록부에 이렇게 적어놓았다.

   ‘두뇌는 명석하고 학업 성적은 우수하나, 수업 시간에 떠들고 장난이 심하며, 집중력이 떨어지고 산만하다. 특별 지도가 필요하다.’

   첫 교시 수업이 끝나고 승찬이 옆에 앉은 창규가 자기 공책을 챙기다가 실수로 승찬이 지우개를 떨어뜨렸다. 지우개는 통통 튀어 어디론가 굴러갔다. 두 아이는 책상 밑에 쪼그리고 앉아 지우개를 찾았지만, 어디로 굴러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승찬이가 창규에게 소리를 질렀다.

   “야! 니 내 지우개 물어내라! 그거 좋은 지우개다! 우리 아재가 미국에서 사 온 거다!”

   창규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승찬이 눈치를 살피다가 승찬이가 닦달하자 말대꾸하기 시작했다.

   “니 지우개 쪼매하던데! 내 지우개 짤라 주께, 그라마 됐제?”

   “뭐시라꼬? 새로 사내라! 안 사내믄 내가 니 공책하고 연필 다 가지고 갈 끼다!” 승찬이가 심술을 부렸다.

   교실이 소란스러워진 틈에 선생님이 2교시 수업하러 교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승찬이는 그때까지 억지를 부리면서 창규를 괴롭혔다. 참다못한 창규가 짜증을 냈다.

   “야! 니 와 이라노? 수업 시간 아이가! 공부 좀 하자!”

   선생님이 두 사람을 불러 자초지종을 물었다. 얘기를 다 듣고 난 선생님은 교실에 있는 자기 물품 보관 서랍에서 새 지우개를 꺼내 승찬이에게 주고 두 아이의 실랑이를 무마시켰다. 이 일을 계기로 승찬이네 반 아이들은 혹시 승찬이가 자기에게 심술을 부리거나 해코지할까 봐 거리를 두기 시작했고, 가까이 지내던 아이들도 하나둘 멀어졌다.     

   지난해에 태어난 영수 여동생 경희는 자라면서 노는 게 꼭 사내아이를 닮아갔다. 여자아이들이 좋아하는 예쁜 그림책이나 인형엔 관심이 없고, 사내아이들처럼 자동차나 권총 장난감 갖고 놀기를 좋아했다. 하는 짓거리도 영판 사내아이를 닮았다.

   “저것이 꼬치는 지 에미 배속에 나뚜고 나와 뿐내. 하나 더 나아믄 염팡 꼬치 달린 머슴아 일 끼라.” 할배는 이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이듬해 늦봄에 하동장 셋째 손자가 태어났다. 할매가 안방 눈꼽재기창을 통해 소리쳤다.

   “애비야! 아들이다! 아들! 손주다!”

   할배 말대로 둘째 손녀 경희가 고추를 엄마 배속에 떼어 놓고 나온 게 분명했다. 아무튼 집안은 그야말로 잔치 분위기였다. 할매는 삼신상을 푸짐하게 윗목에 차려놓고 무병장수하게 해달라고 삼신할머니에게 빌었다. 할배도 신이 나서 왼새끼를 꼬아 금줄을 만들고 붉은 고추와 숯을 매달아 대문에 걸었다.

   아배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는 입이 함지박만 해져서 술판이 벌어지고 있는 마을회관으로 마실 갔다. 회관 술자리에 앉자마자 득남 소식을 알렸다. 모두 득남을 축하했다.

   노인회장이 덕담 인사를 건네면서 한마디 했다.

   “유갑이! 자네는 참 복도 많네. 2대 독자 하동장 집안에 인자는 손자가 셋이나 되네. 허허 참! 하동장 영감님 입이 다물어지지 않겠네 그랴.”

   삼칠일이 지나자 할배는 동네잔치를 벌이자고 했다. 자손이 귀한 집안에 아들을 셋이나 얻었으니 경사가 아니고 무엇이냐고 하면서.

   잔치가 벌어졌다. 돼지 두 마리와 쌀 두 섬에다 막걸리가 열 말이라, 여느 대갓집 잔칫상보다 푸짐했다. 잔치에 온 일가친지들도 할배에게 인사를 올렸다.

   “아재요, 감축드립니더!” 집안 장손인 영갑이가 말했다.

   “어째 이런 경사가 다 있노!” 사촌 동생이 덧붙였다.

   농사일을 마치고 저녁에 들른 마을 사람들도 할배에게 인사를 건넸다.

   “회장님! 경사네요, 축하드립니더!” 마을 이장이 인사말을 건넸다.

   “아이고! 이기 다 회장 어르신 공덕 아입니꺼!” 청년회장이 굽신거리며 말했다.

   아배에게도 “자네, 복도 참 많네!”하고 이장이 덕담을 건넸다.

   여기저기서 축하 인사에 술잔이 오갔다. 할배는 기분이 좋아 연거푸 술잔을 받았다. 이날은 술꾼 아배가 더 신나는 날이었다. 마음 놓고 술을 마셔도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이 없으니 허리끈을 풀어놓고 맘껏 술을 마셨다.

   “자, 자. 유갑이! 축하하네. 한잔 들게.”

   “그랴, 그랴. 자네들이 와줘서 고맙구먼.” 아배는 취하도록 술을 마셨다.

   안채와 사랑채뿐 아니라 천막이 처진 안마당과 바깥마당에까지 멍석 위에 손님들이 꽉 들어찼다. 잔치에 온 하객들도 거나하게 술을 마시고, 바깥마당에서는 구성진 육자배기 노랫가락까지 흘러나왔다.

   둘째 손자 영수가 태어났을 때는 집안 식구들끼리 미역국만 먹고 말았지만, 할배는 손자가 셋이나 태어났으니 하동장 집안 울이 든든해졌다고 동네방네 자랑질을 했다. 사랑채에선 한담과 웃음소리가 가득하고 할배의 입가에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집안에 사람이 시장통처럼 북적북적하자 어린 영수도 신이 났다. 아이가 마음이 설레어 동네 꼬마들과 함께 마당에 쳐진 천막을 돌아다니며 숨바꼭질을 하고, 광에 들어가 떡을 한 움큼 움켜쥐고 동무들에게 나누어주며 깔깔거리며 웃기도 했다. 아이는 오늘이 무슨 날인지도 모르고 그저 신이 났다.      

   아무리 집안일이 바빠도 장손 승찬이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할배는 이런 승찬이를 장손이라고 늘 감싸고 두둔했다.

   “장손이 잘돼야 집안이 일어서는 기라. 장손만 잘 되믄 다 잘 되는 기라!” 할배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할배와 아배는 승찬이에게 학교 공부 말고는 집안일에는 얼씬거리지도 말라고 엄명을 내렸다. 승찬이도 그런 할배와 아배의 뜻을 눈치채고 방안에서 뒹굴뒹굴 놀면서 집안일에는 손끝 하나 까딱 안 했다. 크고 작은 심부름은 영수가 도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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