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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다올 Oct 22. 2024

02 집안 심부름꾼

   집안 심부름꾼     




           

   둘째 손자 영수는 할배의 안중에도 없었다. 영수 또래 동무들은 모두 국민학교에 입학했다. 영수는 학교에 들어가지 못했다. 태어난 지 일 년이 지나서 호적에 이름을 올리고 출생신고를 해서, 영수는 호적상으로는 일곱 살이라 입학 통지서가 나오지 않았다.

   영수 동무들은 모두 국민학교에 입학했다. 어린 영수는 이런 사정을 모르고 울며 불며 어메에게 생떼를 쓰기 시작했다.

   “내도 핵교 갈란다! 내 동무들은 전부 핵교 댕기는 데 내만 안 댕긴다 아이가! 내도 핵교 보내도고!”

   영수는 어메 치맛자락을 붙들고 졸졸 따라다니면서 쫄랐다. 어메가 아무리 설명해도 아이는 막무가내였다. 어메 가슴이 미어졌다.

   ‘어린 것이 얼매나 동무들하고 핵교 댕기고 싶으면 이래 울고 불고 난리를 부릴까’ 하고 생각하니 시애비 하동장 할배와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안방에 들어온 어메가 남편을 보고 흘겨보면서 핀잔을 주었다.

   “작은 아들 마음을 이래 아푸게 해놓고 잠이 옵니꺼? 내사 잔갑이 생각만 하면 울화가 치밀고 분통이 터져서 잠도 안 옵니더!  말해 보이소. 우짤라고 이라는기요?”

   아내 잔소리를 듣던 아배는 슬그머니 바깥으로 마실을 나갔다. 아배도 아내가 면박을 주고 할매가 따라다니면서 작은 손자 얘기를 하니까 그 잔소리가 듣기 싫었다.

   학교에 다니지 않는 영수는 매일 할배와 아배가 시키는 잔심부름을 도맡아 했다.

   오늘도 영수는 동무들과 어울려 놀고 싶어 안달이 났다. 평일에는 동무들이 오전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야 함께 놀 수 있었다. 그는 오전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마음속으로 빌었다. 1부터 10까지 숫자를 수십 번 되풀이하면서 세어보기도 하고, 골목길을 어슬렁거리며 왔다 갔다 해보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해는 제자리에 떠 있었다. 어린 영수는 10이 숫자 중에서 제일 큰 걸로 알고 있었기에, 1부터 10까지 수도 없이 헤아리면서 목이 빠지도록 동무들을 기다렸다. 아이는 동무들과 놀고 싶어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골목으로 달려가는데, 느닷없이 할배가 불렀다.

   “잔갑아! 점방에 가서 담배 한 갑 사 오너라.”

   부리나케 뛰어가 담배를 사 들고 집에 돌아오면 이번에는 아배가 영수를 불렀다.

   “잔갑아! 가마솥에 장작불 때 갔고, 소여물 삶아나라.”

   동무들이 골목에서 노는 소리가 떠들썩하게 들리고, 영수 마음은 콩밭에 가 있어 안달이 나고 오금이 저렸다. 마음은 조급해지고 할배와 아배 심부름을 마치고 헐레벌떡 골목으로 달려가면, 동무들은 보이지 않았다. 아이는 허탈한 마음을 안고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왔다.

   영수는 동무들과 종일 놀 수 있는 일요일이 손꼽아 기다려졌다. 일요일에는 동무들과 뒷동산에 올라가 총싸움도 하고 땅따먹기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신나게 놀았다. 산과 들을 누비며 메뚜기도 잡고, 베짱이도 잡아서 억새로 엮은 상자 속에 집어넣고 장난감처럼 들고 다녔다.

   하지만 영수는 동무들과 함께 놀아도, 저들끼리 주고받는 말이 무슨 뜻인지 쉽게 알아듣지 못했다. 어쩌다 동무들과 어울려도 기가 죽어 말도 제대로 못 했다. 학교에 다니는 동무들이 수업 시간에 배운 걸 서로 얘기할 때나, 선생님에게서 들은 얘기를 할 때마다 아이는 그저 부러움에 침만 꼴깍 삼켰다.

   “영수야, 너거 아부지가 니 부르는 소리 아이가?” 동수가 말했다.

   자세히 들어보니 아배가 “잔갑아!”하고 동네가 떠나갈 듯이 부르고 있었다. 노는데 정신이 팔려 아이는 아배가 부르는 소리도 못 들었다. 영수는 “예!” 대답하고 부리나케 달려갔다. 아이는 입안이 마르기 시작하면서 침을 꼴깍 삼켰다.

   “이넘의 손! 어데 처박히 놀다가 오노? 얼른 개구리 잡아 온나!”

   아이는 슬금슬금 아배 눈치를 보면서 깡통과 대나무 채를 들고 개구리를 잡으러 갔다.

   하루는 동수가 영수에게 학교에 놀러 가자고 했다. 여름방학이라 학교 운동장은 텅 비어 있었고, 한여름 땡볕이 내리쬐는 운동장 버드나무에는 매미가 떼를 지어 맴맴 우는 소리만 요란했다. 영수는 처음 와보는 곳이라 모든 게 신기했다. 널따란 운동장을 돌아가면서 흰 줄을 그어놓았는데, 그게 뭔지 몰라 동수에게 물었더니 달리기할 때 이 선을 따라서 뛴다고 했다. 운동장 양쪽 끝에는 그물망이 쳐진 축구 골대가 있고, 운동장 한쪽에는 농구 골대도 보였다.

   영수는 신이 나서 하얀 선을 따라 운동장 한 바퀴를 달렸다. 땀방울이 빗물처럼 콧잔등을 타고 입안까지 흘러내렸다. 짭짤한 맛이 혀끝에 와 닿고 숨은 턱 밑까지 차올라 헉헉거렸지만, 영수 얼굴엔 웃음이 가실 줄 몰랐다. 버드나무 그늘에서 잠시 쉬었다가 이번엔 철봉대로 갔다. 운동장 가장자리에는 높고 낮은 철봉대가 발돋움하면서 키재기하듯 나란히 서 있고, 철봉 아래에는 은모래가 깔려 있었다. 아이는 거기서 뜀뛰기도 하고, 철봉에 매달리기도 하고, 용을 쓰면서 턱걸이도 해보았다.

   철봉대에 매달려 놀다 다시 버드나무 아래로 가서 쉬고 있는데, 문득 동수네 교실이 궁금했다.

   “동수야! 너거 교실 어데 있노?” 영수가 물었다.

   “어, 저 끝에 안 있나, 고 보이는 기 우리 교실이다. 한 번 가 볼래?” 동수가 말했다.

   영수가 고개를 끄덕하자, 동수가 달리기 시작했다. 영수도 뒤따라 달렸다. 유리 창문 너머로 길게 복도가 늘어서 있고, 교실마다 출입문에 학급 팻말이 붙어 있었다.

   “동수야! 저기 뭐꼬?” 영수가 팻말을 가리키며 물었다.

   “어! 저거는 몇 학년 몇 반 교실이라 카는 표시 아이가!” 영수가 알려주었다.

   까치발을 하고 고개를 내밀어 교실 안쪽을 바라보니, 앞쪽에는 칠판 위에 태극기가 든 액자와 그 옆에 뭐라고 쓴 액자도 보였다. 아이는 그것도 궁금해서 동수에게 물어보았다.

   “그거는 우리 학교 교훈하고, 학급 급훈이 적힌 기다! 너거 집에 가믄, 할배 사랑방에 가훈이라꼬 벽에 걸린 거 있제?” 동수가 알기 쉽게 설명해주었다.

   교실 가운데에는 책상과 걸상이 나란히 짝을 지어 놓여 있고, 뒤에는 아이들이 그린 그림이 게시판에 붙어 있었다. 영수는 교실 안을 구경하느라 온 정신이 팔려 비가 오는 줄도 몰랐다.

   “영수야! 퍼뜩 이리 온나, 비 온다 아이가!” 동수가 불렀다.

   그제서야 영수는 정신을 차리고 동무들이 있는 건물 끝으로 뛰어갔다. 모두 교실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데, 빗방울은 점점 거세지고 소낙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한차례 소나기가 지나가고 비는 점점 가늘어져 마침내 날씨가 개었다.

   읍내 사거리를 지나 집으로 가는 길에 있는 개천은 이미 물이 불어나서 징검다리가 잠겼다. 약속이나 한 듯 아이들은 고무신을 손에 쥐고 조심스럽게 시내를 건넜다.

   “여! 물살이 쎄다. 조심해라이!”

   앞선 동무가 뒤에 따라오는 동무에게 조심하라고 하면, 그 동무는 그다음 동무에게 조심하라고 전하면서 개천을 건넜다. 먼저 건너간 동무가 냅다 뛰기 시작하자 뒤따르던 아이들도 뛰었다.

   “야! 같이 가자!” 영수가 소리쳤다.

   “영수야! 니 퍼뜩 뛰 온나!”

   숨도 제대로 고르지 못한 채, 영수는 신작로를 내달렸다. 읍내를 벗어나자 들판을 가로질러 흐르던 도랑이 사라지고, 물은 논둑을 넘쳐 개울로 변했다. 소용돌이치며 흐르는 물살도 꽤 빨랐다. 영수는 몇 번이나 망설이다 동무들이 건너는 것을 보고 용기를 내어 개울을 건너다 그만 고무신 한 짝을 물에 떠내려 보내고 말았다.

   “내 고무신 한 짝 이라뿟다. 우짜믄 좋노! 저 떠내러 간다!”

   “야! 영수야, 못 찾는다! 낼 오보자!” 동수가 소리쳤다.

   흙탕물에 휩쓸려간 영수 검정 고무신 한 짝은 금세 모습을 감추어 버렸다. 아이는 이제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집에 가면 틀림없이 아배가 ‘니 고무신 한 짝은 우쨌노?’하고 물어볼 텐데······. 또 험한 말을 퍼붓고 등짝을 팰 것이다.

   아이는 입안에 침이 마르기 시작했다. 마을 어귀가 보이자 가슴이 점점 조여들고 호흡이 가빠졌다. 동네 골목은 마치 저승으로 가는 길처럼 보였고, 하동장댁 대문이 보이자 아이의 공포는 극에 달해 전신에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심장이 벌렁벌렁해지고 얼굴은 유령처럼 창백해졌다. 도망가고 싶었다. 가출하여 거지처럼 떠돌아다니며 구걸할 생각을 하니 울컥 눈물이 쏟아지려고 했다.

   제발 아부지가 집에 없었으면 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대문을 들어섰다. 아배의 뒷모습이 보였다. 얼른 대문 뒤에 숨어서 집안의 동정을 살피는데, 심장이 쪼그라드는 것만 같았다. 간신히 숨을 고르고 문틈으로 들여다보니 아배가 뒷간으로 사라졌다. 아이는 안채로 몰래 들어가 신발을 들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숨소리를 죽이고 방에 앉았는데, 아배 기침 소리가 들렸다. 아이는 침을 꼴깍 삼켰다.  

   “이넘의 손은 어데로 갔노! 안주까징 집에 안 들어왔나?”

   아배가 어메에게 묻는 것 같았다. 어메는 아들이 신발을 들고 건넛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지만, 모른 체 했다.

   “이넘의 손! 집구석에 들어오기만 해바라.”

   아배는 으름장을 놓고 바깥으로 마실을 나갔다. 아무리 눈치가 없는 어메로서도 아들이 숨는 게 아무래도 수상쩍어 보였다. 어메가 남편이 마실 나간 것을 확인하고 건넛방 문을 열고 들어왔다.

   “잔갑아! 무신 일 있나? 와 고무신을 들고 방에 들어 왔노?”

   어메가 아들이 어디 있는지 몰라 속삭이듯이 말을 했다. 영수가 장롱 이불 속에 숨었다가 어메 목소리를 듣고 나왔다.

   아이가 어메에게 동무들과 학교에 놀러 갔다가 소나기를 만났는데, 돌아오는 길에 개천에서 고무신 한 짝을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어메는 어린 아들이 얼마나 무서웠으면 아비 몰래 신발을 들고 장롱에 숨었을까 생각하니, 아이가 애처롭고 불쌍하기까지 했다.

   “저녁 묵을 때, 아무 말 하지 말고 얼른 밥 묵고 니 방으로 가거라.” 나오려는 눈물을 꾹 참고 어메는 아들에게 말했다.  

   저녁 밥상에 영수가 잃어버린 고무신 한 짝이 화제로 올랐다. 아이는 궤짝에 갇힌 고양이처럼 숨소리를 죽여가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아배 눈치를 살폈다. 입안이 마르기 시작하자 침을 꼴깍 삼켰다. 어메가 먼저 말을 꺼냈다.

   “낼 개고랑에 가서 우에서 아리로 쭉 훑어내리가믄 찾을 끼다! 고랑이 좁아서 어데 걸리는 데가 있을 꺼구마.”

   남편 성질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에, 작은아들이 매 맞을까 봐 어메가 먼저 남편 말문을 막아 버렸다. 영수가 곁눈으로 흘긋 보니 아배는 아무 말 없이 밥만 먹고 있었다. 걱정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얼마나 마음을 졸였던지 아이는 속으로 ‘하느님! 감사합니다’를 수십 번 되뇌었다.

   다음날 영수는 동생 경희와 함께 물이 많이 줄어든 개울을 따라 풀숲을 헤집으며 고무신 한 짝을 찾기 시작했다.

   “오빠야! 여 있다!” 경희가 소리쳤다.

   달려가 보니 잃어버린 영수 검정 고무신 한 짝이 돌부리에 걸려 있었다. 그는 다시 찾은 고무신을 신고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또 한 번은 날이 너무 더워서 영수는 아이들과 함께 시냇가로 멱을 감으러 갔다. 시내는 그리 깊지 않아 아이들 허리춤이 잠기는 정도이나, 움푹 파진 곳은 한 길이 넘었다. 동무들은 헤엄을 치다가 잠수를 하기도 하고 물구나무를 서기도 하면서 물속에서 신나게 놀았다. 영수는 헤엄을 칠 줄 몰라 냇가 언저리에서 수양버들 나뭇가지를 붙잡고 물장구를 치고 있었다.

   “영수야! 니도 이리 건너 오바라! 괘안타!” 동수가 소리쳤다.

   영수는 무서워서 건너편으로 헤엄쳐 갈 엄두를 못 내고 동무들만 바라보고 있는데, 아이들이 모두 건너편에서 영수가 있는 곳으로 헤엄쳐 왔다. 동수가 영수에게 건너편으로 헤엄쳐 가보자고 꼬드겼다.

   “내가 니 옆에서 같이 헤엄치고 갈 끼다. 내 믿고 저쪽으로 가보자!”

   영수는 한참 머뭇거리다가 동수가 옆에서 같이 헤엄쳐 간다는 말에 용기를 얻어 개구리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헤엄을 치다 보니 어느새 건너편에 와 닿았다.

   “와! 영수야! 니 인자 보이, 헤엄 잘 치네!”

   동수의 칭찬에 그는 으쓱대며 아이들과 함께 무리를 지어 시내 이쪽으로 헤엄쳐 건너왔다.     

   영수도 이제 헤엄칠 줄 아는 아이가 되었다. 해는 중천을 지났다. 그제서야 정신이 퍼뜩 든 영수는 젖은 몸을 말릴 새도 없이 부랴부랴 옷을 주워 들고 집으로 달려갔다. 집에 가서 소죽도 주어야 하고, 돼지 구정물도 주어야 하는데······, 벌써 점심때가 지났다. 헐레벌떡 집으로 돌아오니 아배가 바깥마당에서 머슴 승이와 함께 여물을 썰다가 영수를 보고 대뜸 화를 내며 고함을 질렀다.

   “이넘의 손! 어데 가서 쳐박히 놀다가 인자 오노! 밥 묵을 때가 되이, 배지가 고파서 오나?”

   아이는 침을 꼴깍 삼켰다. 영수는 금세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고 몸은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아배가 볏짚을 썰다 말고 일어섰다. 갑자기 입안에 침이 마르고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아이는 ‘아이고 인자는 죽었구나’하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내 새끼, 잔갑아! 어데 갔다 왔노? 이래 온나, 밥 묵자.”

   익숙한 할매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는 눈을 번쩍 떴다, ‘아이고 인자는 살았다’, 할매가 안채로 들어오다 손자를 보고 불렀다. 할매가 아니었으면 아이는 아배한테 작대기로 등을 두드려맞거나, 손바닥으로 뺨을 얻어맞았을 게 분명했다.

   영수는 부엌으로 가서 보리밥에 물을 말아 깍두기 김치와 풋고추로 한 그릇을 후딱 해치웠다. 대충 치우고 아배가 여물을 썰고 있는 사랑채 마당으로 갔다. 아배는 볏짚을 다 썰고 마른 풀을 썰고 있었다.

   “잔갑아! 여 와서, 풀 싼 그라난 거 두지 안에 갔다 나라.” 아배가 말했다.

   “예”하고 영수는 소매를 걷어붙이고 마른 풀을 뒤주로 날랐다.

   “아이고! 우리 잔갑이 잘하네.”

   아배의 말에 아이는 힘든 줄도 모르고 풀을 망태기에 담아 날랐다.      

   해가 중천을 지나 서산으로 기울 즈음, 부산에 사는 고모가 국민학교에 다니는 딸 선영이를 데리고 친정 나들이를 왔다.

   “아이고, 누부! 우짠 일인 기요? 선영이도 왔네!” 아배가 반겼다.

   “아부지, 엄마 얼굴도 보고 싶고 너거들도 보고 싶어서 왔다. 선영아! 외삼촌한테 인사드리거라.” 고모가 말했다.

   “안녕하십니꺼? 외삼촌!” 선영이가 고개 숙여 인사했다.

   “오냐, 오냐! 어서 오너라. 누부 들어가입시더.”

   “아부지하고 엄마한테 인사 드리고 안채로 가꾸마.”

   고모는 선영이를 데리고 사랑채로 들어갔다.

   “아이고! 야야, 우얀 일이고! 어서 오니라!” 할매가 딸을 보고 반겼다.

   “야야, 고마 편히 앉거라! 절은 무신 절이고!” 할배가 손사래를 쳤다.

   모녀는 오랜만에 뵙는 할배와 할매에게 큰절을 올렸다.

   “아부지, 엄마! 건강은 좋습니꺼? 두 분 얼굴 혈색이 이전만 못하네예. 머 걱정거리라도 있습니꺼?”

   고모는 사랑채에서 할배와 할매 안부를 여쭈고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선영이와 안채로 건너왔다.

   “올치야! 이리 온나. 동상도 이리 와바라. 내 친정서 한 삼일만 쉬었다 갈라 카는데, 폐 끼치는 거 아인지 모르겠다?”

   “아이고 행님! 무신 그런 섭섭한 말씀을 하는교! 친정 왔이면 쉬고 가야지예. 선영이도 놀다 가거라.” 어메가 말했다.

   오늘부터 부산 고모는 며칠간 친정집에서 쉬었다가 간다고 했다. 영수는 얼굴이 뽀얀 도회지 아이 선영이가 부러웠다. 선영이는 영수와 동갑인 국민학교 일 학년이다. 저녁을 먹고 나자 선영이가 가방을 들고 영수 방으로 건너왔다.

   “영수야! 내 여서 숙제 좀 하다가 가도 되제?”

   “어, 어! 괘안타. 저 앉은뱅이 책상에 앉아서 니 숙제 해라.” 영수가 엉겁결에 대답했다.

   영수는 선영이가 책상 앞에 앉아 숙제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도시 아이라 그런지 얼굴뿐 아니라 목덜미도, 손가락도, 손목도 뽀얗다. 마치 꿈속에서 만난 선녀 같았다.

   선영이가 숙제를 하다가 흘긋 영수를 쳐다보았다. 영수와 눈이 마주친 선영이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볼우물을 살짝 파고 방긋 미소를 지었다. 영수는 다른 곳을 쳐다보는 척하며 슬쩍 선영이 눈을 피했다가, 그도 따라서 씽긋 웃었다. 숙제를 끝낸 선영이가 영수 곁으로 와서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영수야, 우리 학교 소풍 갔다 온 이바구 해줄까?”

   영수는 입이 헤 벌어지며 고개를 끄떡했다.

   “응, 우리 봄 소풍 부산 금강공원 성지곡 수원지로 갔거든. 거게는 숲이 엄청 울창해가지고 하늘이 안 보이더라. 길바닥에 나무도 깔아놓았는데, 편백 나무 숲길도 있었거든. 편백 나무는 피톤치드라고 카는 좋은 공기를 막 내뿜는다 카더라. 우리 반 친구들이 모두 숲속에서 입을 벌리고 숨을 크게 들이 마셨다 아이가! 내도 가슴을 펴고 숨을 들이마싰는데, 공기가 엄청시리 상큼하더라. 그라고 성지곡 숲속에 있는 나무뿌리에서 모인 물이 어마어마하게 큰 호수로 모인다꼬 카데. 옛날에는 부산 사람들이 그 물을 수돗물로 썼다 카던데, 인자는 낙동강에서 수돗물을 끌어온다 카더라.”

   “와! 그런데도 다 있나! 내도 함 가보고 싶다!” 영수가 말했다.

   “그래! 난중에 우리 집에 놀러 온나. 그라믄 내가 구경시키주께!”

   “어, 어!” 영수는 좋아서 말을 더듬거렸다.

   “그라고, 그 밑에 동물원도 있다 카던데. 요번에는 숲속으로 소풍 가서, 거게는 못 가밨다. 니가 난중에 구경 오믄 같이 가보자!”

   영수는 “그래! 그래! 어! 어!”하고 대답하기에 바빴다.

   선영이는 얼굴도 예쁘고 똑똑할 뿐 아니라, 마음씨도 고왔다. 봉현마을 아이들은 얼굴이 거무칙칙하고 머리에서는 냄새도 나고, 손등은 때가 새까맣게 껴서 거칠거칠하고 투박한데, 선영이는 하늘나라에서 내려온 천사 같았다.

    다음 날 아침을 먹고 영수는 선영이를 데리고 봉현마을 구경을 시켜주었다. 느티나무 정자로 갔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매미가 떼를 지어 맴맴 울고 있었다.

   “여는 여름에 시원한 그늘이 생기갔꼬, 동네 사람들이 여기로 다 모인다 아이가. 어른들은 마루청에 누버서 매미가 맴맴 우는 소리를 들어믄서 낮잠도 자고, 아아들은 동화책 들고 와서 여서 읽기도 하는 데다.”

   “그라믄, 여름에 여서 책 읽으믄 참! 좋겠다. 내도 동화책 읽고 싶다.” 선영이가 말했다.

   해가 서산마루에 걸칠 때쯤 영수는 선영이를 데리고 방죽길을 걸었다. 개구리가 떼를 지어 울기 시작했다. 개구리 합창 소리는 봉현 들판을 가득 채웠다.

   “해질 때가 되믄 들에서 개구리가 막 울고, 풀벌레도 끼르룩 끼르룩하고 운다 아이가.” 영수가 말했다.

   이어서 그는 가을이 되면 들녘은 누런 황금벌판으로 바뀌고, 메뚜기가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고추잠자리가 하늘 높이 날면서 빙빙 동그라미를 그린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저녁노을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엄마야! 저거 바라. 너무 예쁘다! 빨강 크레파스로 산을 따라가믄서 색칠을 해놓은 거 같다, 그자! 너무 예쁘지!” 선영이가 말했다.

   방죽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오면서, 영수는 여치를 잡아서 선영이 손에 쥐여주고 영수가 방아깨비한테 방아를 찧으라고 말하자 신기하게도 여치가 그 말을 알아들었는지 방아를 찧기 시작했다. 선영이는 모든 게 신기하기만 했다. 날이 저물자 두 아이는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고! 영수가 우리 선영이 구경 잘 시키주었나!” 고모가 말했다.

   “잔갑아! 선영이 구경 마이 시키주거라. 도회지에서 어데 풀 한 포기도 지대로 없는데, 메뚜기도 개구리도 어데 볼라꼬?” 할매가 말했다.

   영수는 고모가 칭찬하고 할매까지 선영이 구경 잘 시켜주라고 하니 기분이 좋아서 어깨가 우쭐해졌다. 저녁을 먹고 선영이는 낮에 방죽에서 보았던 저녁노을과 방아깨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영수도 곁에서 선영이가 가져온 크레파스로 도화지에 방죽길을 걸어가는 두 아이 그림을 그리는 데 여념이 없었다.

   다음날 영수는 대나무로 만든 낚싯대를 메고, 선영이와 마을 앞 개천으로 낚시를 갔다. 두엄 밑을 파서 미끼로 쓸 지렁이도 잡았다. 지렁이를 보자 선영이는 징그럽다며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얼굴을 찡그렸다.

   “이기 없이믄 낚시 못 한다 아이가! 지렁이를 바늘에 끼 가지고 던지믄 붕어가 금방 입질한다. 내가 보여주께. 잘 바라!”

   영수가 자랑스럽게 말하면서 자기 낚싯대 바늘에 지렁이를 끼고 나서 선영이 낚싯대에도 지렁이를 끼워서 던지고, 찌가 아래위로 요동치면 낚싯대를 잡아채라고 일러주었다.

   “야! 야! 선영아, 니꺼 고기 입질한다, 빨리 채 바라!”

   “엄마야! 내가 물고기 낚았다! 내가 낚았다!” 선영이가 소리쳤다.

   “인자 보이, 선영이 니 낚시 잘하네! 내는 안주까징 한 마리도 못 낚았는데······.” 영수가 말했다.

   이어서 선영이가 또 한 마리를 낚았다. 선영이는 신이 났다.

   “영수야! 퍼뜩 지렁이 끼 도고! 물고기 다 도망갈라!”

   “어! 어! 내 꺼도 움직인다. 가마이 있어바라. 큰 긴가 보다!”

   영수가 낚싯대를 잡고 낚아챘다. 메기 한 마리가 낚싯대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두 아이는 낚시 재미에 빠져들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이미 점심때가 지난 것 같았다.

   “선영아! 니 배 안고프나? 내는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인자 집에 밥 묵으로 가자.”    

   영수가 뜰망을 들어보니 고기가 펄떡거렸다. 열 마리가 넘었다. 선영이가 일곱 마리를 잡았으니 영수는 다섯 마리쯤 낚은 것 같았다.

   방죽을 따라 집으로 오는 길에 풀섶에서 개구리가 폴짝 뛰었다. 선영이가 깜짝 놀라 “엄마야!”하고 영수 팔을 덥석 잡았다. 영수가 “개구리는 그냥 도망가는 기다. 안 문다.”하고 어른스럽게 선영이를 다독였다. 집에 돌아온 두 아이는 장독에 물을 붓고 고기를 풀어주었다. 물고기가 헤엄을 치며 장독 안에서 헤엄을 치며 돌아다녔다.     

   다음 날 아침을 먹고 나자 고모가 이제 집에 가봐야겠다고 했다. 어메가 시골 텃밭에서 키운 채소와 호박을 한 보따리 싸서 고모에게 챙겨주었다. 선영이도 가방을 챙겨 나섰다. 모녀가 할배와 할매에게 인사를 하고, 아배도 누나와 조카에게 또 놀러 오라면서 잘 가라고 말했다. 어메와 영수는 한길까지 고모와 선영이를 배웅했다. 영수는 선영이가 떠나자 못내 서운했다.

   한동안 영수는 자기가 도시 아이가 된 양 뻐기고 으스대면서 동무들에게 성지곡 수원지 들어봤냐고 자랑질했다. 영수가 젠체하고 거들먹거리자 처음엔 동무들도 기가 죽어 영수 말에 고분고분하다가 열흘쯤 지나자 예전으로 되돌아갔다. 영수도 동무들에게 이젠 더 이상 자랑할 거리도 없고 도회지 아이 흉내도 낼 수 없었다.     

   여름방학이 끝나가고 있었다. 영수는 아이들과 함께 놀다 정신이 팔려 가축 돌보는 일도, 소 꼴을 베는 일도 종종 잊어버리곤 했다. 아배가 ‘잔갑아!’하고 마을이 떠나가라 불러대면, 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리고 허겁지겁 집으로 달려갔다. 야단맞는 건 당연지사였다.

   “이 넘어 손! 소죽도 안 주고 어데서 자빠지 놀고 인자 오노! 퍼뜩 소 풀 비로 안 가나!”
    영수는 망태를 둘러매고 소 풀을 베러 웃등으로 가는 길에 빨래터 가는 동네 아낙네들을 만났다.

   “안녕하십니꺼?”

   “오냐, 영수야! 소 풀 비로 가나. 니가 참 용하다. 맨날 집안 심부름 다 하고, 소 풀도 비고.”

   마을 아낙들은 저 어린 것이 학교도 못 다니고 일하러 다니는 게 불쌍하다며 에둘러 하동장 할배와 아배를 타박했다.

   다음 날 아침나절 영수는 동네 아이들과 함께 소를 몰고 뒷산으로 소 풀을 먹이러 갔다. 여름에 소를 몰고 산으로 올라가면 우거진 수풀에서 풋내가 났다. 아이들은 소뿔에 줄을 칭칭 감았다. 대장 격인 소가 풀밭을 찾아가는 대로 무리를 지어 소들은 풀을 뜯어 먹었다.

   아이들은 술래잡기와 땅따먹기를 하다가 동무들끼리 멱살잡이도 했다. 반칙이다 아니다, 속였다 안 속였다 하고 목소리를 높이다가 끝내는 멱살잡이를 하고 서로 코피를 터뜨리기도 했다. 한나절 지나고 나면 아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신나게 뛰어놀았다.

   동무들은 놀다가 시들해지면 학교 이야기를 했다. 영수는 뭐니 뭐니해도 학교 이야기가 제일 궁금했다. 동무들이 얘기할 때, 그는 두 귀를 쫑긋 세운 채 입을 헤 벌리고 침을 흘리면서 듣곤 했다.

   해가 서산마루에 걸리면 아이들은 소를 몰고 마을로 내려왔다. 서산 하늘은 저녁노을이 내려앉아 온통 진달래꽃 천지처럼 붉게 물들었다. 아이들 얼굴에도 홍조가 피어올랐다. 초가 굴뚝에선 저녁밥 짓는 연기가 요술 항아리 속의 연기처럼 피어오르고, 연기는 골목길을 휘감고 돌아 봉현마을을 한 폭의 수묵화로 바꾸어 놓았다.

   영수는 소를 마구간에 집어넣고, 소죽을 끓였다. 논에 물 대러 갔던 아배가 머슴 승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 소 풀 마이 멕인나? 소 풀도 비 났나?” 아배가 물었다.

   “예! 집 뒤에 한거슥 비 났어예.” 영수가 대답했다.

   아배가 아들에게 묻는 건 가축이 먼저였다. 아들이 산에 가서 벌에 쏘이거나 뱀에 물리지는 않았는지, 풀을 베다가 손가락은 베이지 않았는지는 관심 밖이었다. 아배의 이런 물음에 아이도 익숙한 듯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영수는 겨울방학이 기다려졌다. 아이들도 겨울방학에 들어간다고 좋아했다. 가을에 추수한 볏짚도 썰고, 소 풀은 말려서 뒤주에 채워놓았고, 보리 딩기도 독 안에 가득하다. 겨울을 지낼 가축 먹거리는 걱정 안 해도 됐다. 그는 풀 베러 가지 않아도 되고, 개구리를 잡으러 가지 않아도 된다.

   영수는 손재주가 좋아 연장만 있으면 뭐든지 잘 만들었다. 개중에서도 겨울에 단연 인기가 높은 건 썰매와 연이었다. 동무들은 영수에게 아부하거나 맛있는 걸 주면서 청탁 아닌 청탁을 했다.

   “영수야! 내가 니한테 핵교에서 샘한테 들은 이바구 해주께, 내한테 썰매 하나 맨들어 도고?” 동수가 말했다.

   “그라마! 내가 얼른 썰매 맹글어 주께. 니는 너거 샘한테 들은 이바구 해주야 한데이.”     

   “영수야! 내는 소풍 보물찾기 이바구 해주께. 연 하나만 만들어 도고?” 성구가 말했다.

   “그라마, 내 금방 만들어 줄 끼라. 니 소풍 이바구 해주야 한다이!” 영수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는 연장을 들고 뚝딱 썰매도 만들고 연도 만들었다. 영수에게 썰매나 연을 만들어달라는 동무들의 청탁이 줄을 이었다. 영수는 신이 나서 썰매를 만들고, 방패연을 만들고 가오리연도 만들었다.

   미나리꽝에서 영수가 만들어준 썰매를 타고 노는 동수 얼굴에 함박꽃이 피었다. 웃등 언덕에선 성구가 연을 날리고 있었다. 긴 꼬리를 단 가오리연이 춤을 추듯 까불거리고, 먹으로 사방 귀퉁이에 반달을 그려 넣고 이마 한가운데에 보름달을 오려 붙인 방패연이 하늘 높이 두둥실 떠 올랐다. 마치 가오리와 반달과 보름달이 하늘에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아 아이들은 모두 신이 났다.

   “동수야! 성구야! 일로 와서 이바구 해바라!” 영수가 아이들을 불렀다.

   “그래! 내가 먼저 이바구 해주께” 동수가 말했다.

   “우리 샘이 어릴 때 이바구라 카더라. 샘이 한 번은 깜깜한 밤중에 통시에 똥 누로 갔는데, 통시에서 달걀구신을 만났다 카더라.”

   영수와 성구가 귀를 쫑긋 세우고 동수 입을 바라보았다.

   “샘이 용을 씨고 똥을 막 눌라 카는데, 달걀구신이 통시에서 나와가꼬 샘 팔을 잡으믄서, 가자꼬 카더란다.”

   “그래서, 우째 됀는데?” 성질 급한 성구가 물었다.

   “샘이, 똥은 나올라 카는데, 달걀구신이 팔을 잡아 댕기니께 그만 나온던 똥이 쏙 들어 가뿟다 카데.”

   “그라마, 너거 샘은 똥도 못 누고 달걀구신한테 잡히갔나?” 영수가 침을 꼴깍 삼키면서 물었다.

   “샘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 달걀구신 만나믄 속으로 ‘관세음보살’을 외치라 카는 어른들 말이 생각났다 카데. 샘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하고 중얼중얼하니께, 달걀구신이 ‘아이고! 잘못했십니더.’하고 도망 갔다꼬 카더라.”

   “와! 내도 난중에 달걀구신 만나믄 ‘관세음보살’ 외우야겠다.” 영수가 말했다.    

   “우리 할매가 그라는데, 달걀구신이 아아들 얼굴하고 지 얼굴하고 바까간다 카더라.” 성구가 말했다.     

   “야! 달걀구신 이바구 재밌다. 성구야! 니 보물찾기 이바구 해준다 캤제? 니도 이바구도 해 바라.” 영수가 재촉했다.

   “응, 내는 봄 소풍 가서 젤 재미있는 기, 보물찾기하는 기더라.”

   성구가 침을 한번 삼키고 말을 계속했다.

   “그란데, 보물찾기 종이 쪼가리를 점심시간에 샘이 아아들 모리게 방구 밑에도 숨기고, 돌멩이 밑에도 숨기고, 나무 구멍 파진데 속에다가 숨기고, 마른 나무 이파리 밑에도 숨기 놓았제.” 성구가 침을 꿀꺽 삼켰다.

   “성구야! 니 와 이래 이바구를 질질 끌고 그라노? 내사 똥줄 타서 못 참겠다 아이가. 퍼뜩 이바구 해바라.” 영수가 말했다.

   동수가 성구 곁으로 바싹 다가가서 성구 입을 쳐다보았다.

   “응, 점심 묵고 나서 샘이 보물찾기하라고 카데. 아아들이 서로 좋은 거 찾을라꼬 막 뛰간다 아이가! 내는 샘들 속임수를 잘 알고 있었제! 만다꼬 먼 데서 찾노? 샘 발밑에 숨긴 것도 모리고! 내는 샘이 발을 옮길 때까징 다른데 보는 보물 찾는 척하믄서 샘 주변을 왔다 갔다 핸 기라.”

   “응, 그래서 너거 샘이 다른 데로 가고 나서, 발밑에 보물 쪼가리 있더나?” 동수가 궁금증을 참지 못해 물었다.

   “아이, 씨! 속았다 아이가! 말짱 꼼수더라! 다른 아아들은 썩은 나무 둥그리 밑에서 줏어 오고, 커다란 방구 우에서 찾았다 카더라. 그래서 내도 멀리 찾아로 갔다 아이가!”

   “응, 니도 머 하나 찾았나?” 영수가 물었다.

   “못 찾고 이리저리 댕기다가 돌아오는데, 바람이 씽 불어가꼬 나무 이파리도 날리고 종이 쪼가리도 날리데. 내 가마이 서 있으니께, 발 앞에 흰 종이 쪼가리 하나가 떨어지데. 이기 뭐꼬 하고 주서 보이, 일등이다 아이가! 바람 때문에 내가 일등했다! 일등! 그날이 재수가 좋은 날인기라.” 이야기를 마친 성구가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영수는 침을 흘리면서 성구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인자, 이바구 다했다. 새로 샘이 또 이바구해주믄 그때 내가 이바구 해주께.” 성구가 말했다.      

   추운 겨울이 와도 시골 아이들은 스펀지 잠바와 무명 양말에 장갑도 없이 지냈다. 동수와 성구가 국민학교 운동장에 가서 놀자고 영수를 꼬드겼다.

   “그라마, 핵교가믄 너거 교실도 구경할 수 있제?” 영수가 물었다.

   성구가 “그라믄! 핵교 가믄, 거 다 있다!”하고 영수를 부추겼다.

   학교 가는 길은 바람막이 언덕도 없고 나무 한 그루도, 추위를 피할 곳이라고는 없는 황량한 벌판을 가로질러 가야만 했다.

   아이들은 호주머니에 두 손을 집어넣고, 잔뜩 웅크린 채 꽁꽁 얼어붙은 징검다리를 건너 보리밭 논두렁길을 달려갔다. 조만강을 거슬러 불어오는 겨울바람은 살을 에는 듯하여 어떤 아이는 눈물까지 흘렸다. 들판 끄트머리에 있는 외딴집은 아이들의 구세주, 바람막이 담벼락은 겨우 서넛이 몸을 녹일 수 있는 좁은 공간이지만 따뜻한 햇볕이 있어 몸을 녹이기에 좋은 곳이었다.

   “야! 저 가서 시었다 가자!” 동수가 소리쳤다.

   아이들은 외딴집 담벼락 안쪽에 자리를 차지하고 싶어 허연 입김을 내뿜으며 씩씩거리면서 달려갔다. 양지바른 곳에 어깨를 나란히 하고 붙어 있으니 곱았던 손이 녹고 언 입이 풀렸다. 다시 첨탑이 있는 교회를 지나 읍내 학교까지 아이들은 달렸다.

   집들이 여기저기 보이기 시작하고, 동네 강아지들이 아이들과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상점 앞을 지나면서 코흘리개들은 곁눈으로 빨강, 파랑, 노란색의 과자봉지가 잔뜩 쌓여 있는 가게 안을 힐끗 훔쳐보았다. 다리를 건너 도시 같은 읍내로 들어갔다.

   읍내 거리에는 잡화가게와 옷 가게와 약국이 있고, 5일장이 열리는 재래시장도 있었다. 택시와 시내버스가 다니는 신작로는 제법 번잡했다. 중심가 사거리를 가로질러 학교로 달려갔다.

   쪽문 교문을 통해 아이들은 학교로 들어가 운동장에서 달리기를 하고, 땅따먹기 선을 그리고, 여자아이 몇몇은 고무줄놀이하며 놀았다. 영수도 아이들과 함께 달리기하고, 철봉에 매달려 보기도 했다. 그는 학교에서 노는 게 너무 신이 나서 집에 가고 싶지 않았다. 해거름녘에 학교 수위가 이제 교문을 닫을 시간이라고 했다.

   영수는 곧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배가 고프기도 했지만, 닭과 소와 돼지에게 먹이를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집에 도착하여 혼자 점심을 차려 먹고 나니 밭일하러 나갔던 어메가 돌아왔다. 어메는 어두컴컴한 부엌으로 들어가 백열전구 아래에서 국거리와 반찬을 만들고 저녁을 준비했다. 하동장댁 굴뚝에 연기가 피어올랐다.

   승이와 함께 대문을 들어서던 아배가 영수를 보고 또 야단을 쳤다. 아이는 침을 꼴깍 삼켰다.

   “어데 갔다, 인자 왔노! 이넘의 손. 퍼뜩 씻고 밥 묵을 준비해라!”

   영수는 장독대로 가서 얼굴과 손을 씻고, 저녁상 차릴 준비를 했다.

   그는 선머슴아 같은 여동생 경희와 함께 방을 쓸고 닦았다. 지난해에 강둑에서 뽑은 갈꽃으로 만든 빗자루로 경희가 방을 쓸고, 영수는 엉금엉금 기면서 방바닥 걸레질을 했다. 무르팍이 아파왔다. 막내 영철이는 코빼기도 안 보였다. 남매는 상을 펴고 저녁 먹을 준비를 했다.

   “아부지! 저녁 잡수로 오이소!” 영수가 아버지를 불렀다.

   부엌 방문을 열고 어메에게 “엄마, 저녁 묵으로 온나!” 말하고 나서, “행님! 저녁 잡수이소!”하고 머슴 승이도 불렀다.

   그제야 영철이가 방에서 밥 먹으러 나왔다.

   할배 진짓상은 부엌에서 어메가 사랑채로 들고 가고, 대청마루에 아배는 따로 차린 교자상에서, 나머지 식구들은 커다란 교자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었다.

   하동장댁 식구들이 모두 저녁 밥상머리에 앉았다. 낮에 있었던 일과 동네 소식이 밥상에 올랐다.

   할매가 소식을 식구들에게 전해주었다. 엊그제 부녀회장이 곗돈 타는 날이었는데 계주가 도망을 가서 곗돈도 못 탔다는 둥, 아랫마을에서는 논 물꼬 때문에 이웃끼리 대판 난리 소동이 벌어졌다는 둥, 윗마을에 초상이 났는데 아들딸이 외국에 나가 있어서 이틀이 지나고도 입관을 못 했다는 둥, 온갖 뉴스를 다 전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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