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정작 서로의 가치를 깨닫지 못하는 관계, 하루하루가 저절로 오는 것처럼 무한정 곁에 머물며 나를 성가시게 할 것 같은 사람들, 그래서 더 지치게 하고 고마운 게 있어도 당연하다 싶은 타인들, 지나치다 발견하게 되는 이름 모를 풀들이 몸에 이로운 약초가 되기도 하고 정말 쓸모없는 잡풀이 되기도 하듯 그것을 받아들이는 입장에 따라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한다. 그럼 나는 얼마나 약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신랑은 결혼 초부터 지금까지 사업상 지방을 옮겨 다니며 일하느라 집에 머무는 시간이 거의 없다시피 한다. 통화는 매일 하지만 다른 부부들처럼 매일 얼굴 보기는 불가능하다. 아이들 어릴 때는 그냥 본인의 직업이니 어쩔 수 없지란 생각에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러니 어쩌다 신랑의 말투가 곱지 못하면 나도 덩달아 핵폭을 날리는 그날은 찬바람이 쌩~ 쌩~.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집에 오면 까맣기만 하던 머리카락이 하나 둘 흰머리가 생기고 얼굴에도 삶의 흔적이 조금씩 보이면서 그 사람 입장이 되어가는 나를 발견했다. "좋은 아침"으로 시작해서
"퇴근합니다"로 보고가 끝나는 하루는 그에게 얼마나 단조롭고 가혹하고 버거운 가장의 무게일까? 더군다나 일요일까지 쉬지 못한 채 일하는 때가 많은 그. 잠깐 짬이 나서 집에 필요한 옷가지나 물건들을 챙기고 얼른 떠나야하는 새벽 출근길에 아이처럼 "아ㅡ 가기 싫다." 라며 돌아서는 그의 모습이 오래 내 머릿속에 머문다. 그래서 요즘은 고마움의 메시지를 잊지 않으려 한다. '당신의 노고에 늘~ 감사합니다'
서울에서 자취하는 딸은 하루에 한 번 때에 따라서는 그 이상도 전화 통화나 톡을 주고받지만(성실하고 뭐든 알아서하는 엘리트형), 아들은 핸드폰으로 전화를 해도 톡을 해도 읽지도 않고 답이 없을 때가 부지기수다(데이터를 늘 켜놓는다). 딸과 함께 생활하지 않는다면 아들의 생사조차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니 한마디로 함흥차사형. 딸말이 요즘 이런 아들이 많다고 한다. 주위에 친구들도 그렇다고 씁~쓸~.
사춘기가 오면서부터 유독 더 독립적이고 대화의 문턱이 높아져간 아들! 아들이 군대 가기 전까지만 해도 이 또한 문제라며 속으로 골머리를 앓았다. 아들이 군대 다녀온 2년여 세월에 나도 덩달아 군대 다녀온 느낌이었다. 하루하루 제대하는 그날까지 무사히 잘 마치기만을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이제는 제대하고 복학해서 방학도 했으니 의미 있게 보냈음 하는 마음이 내 안에 다시 슬슬 꿈틀거렸다. 욕심이 부활하신다. 엄마로서 아들에게 바라는 욕심. 그러면서 내 방식대로 아이를 이해하려고만 하는 나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렵더라도 노력하자! 그래서 이젠 스위치를 딱 꺼두기로 다짐했다. '엄마 입장에서만 생각하는 조바심을 내려놓자!'
다른 가정과 다르게 우리 가족 멤버엔 특별한 사람이 하나 더 있다. 바로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이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떨어져 지낸 적이 거의 없을 정도니. 더군다나 우리 아이들 커가는 과정까지 함께 옆에서 지켜보며 교육 문제나 여러 의논과 문제를 함께 풀어온 나의 인생 버팀목으로서 부모님 병간호할 때는 물론이고 시간이 많이 없던 신랑을 대신해 든든한 조력자 역할까지 아끼지 않았다. 지금도 그 역할을 너무도 충실히 해주고 있어 미안할 정도다. 미혼임에도 아빠처럼 우리 아이들을 챙긴다. 반찬 갖다 줘야 하는 거 아니냐, 딸이 장학금이 나왔을 때에도 용돈을 줄이려 하지 말고 더 줘야 기가 산다. 요즘 아들들이 많이 그렇다. 웬만하면 알아서 하게 놔둬라 등등... 융통성 부족한 나를 대신해 물심양면 힘을 보태기 바쁘다. 거기다 아이들 대학 가서 레포트 작성시 프로그램 설정이나 나의 업무일로 필요한 컴퓨터 작업할 때는 그야말로 맥가이버가 따로 없다. '누나가 격하게 고마워하는 거 알지?'
그리고 낯선 사람이 보이면 어느샌가 자취를 감추고 있다가도 새벽이건 밤이건(야행성) 내 인기척만 느껴지면 사정없이 "야옹야옹" 거리며 쫓아다니는 스토커 다롱이. 그래서 혹시나 이웃에서 민원이나 넣음 어쩌나 걱정이지만 다행히도 7년째 동거 중인 이 아이와의 생활에 아직까지 별 문제는 없다. 다롱이와의 만남은 이루어질 확률이 거의 없었다. 내가 워낙 실내에 털 날리는 걸 몹시 싫어하는 데다 누군가에게 정을 주다 아프거나 이별하는 순간이 오면 너무 힘들 것 같아서였다. 신랑이랑 딸이 털 알레르기가 심해 집에만 들어서면 그때부터 알레르기약을 먹어야 할 정도로 재채기에 콧물에 눈은 토끼눈처럼 빨갛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다롱이와의 삶을 이어간다. 그만큼의 희생을 치르더라도 일단 우리 가족이 되었으니. 유독 다른 고양이보다 예민하고 까칠하다. 신랑 일하는 현장에서 어미에게 버림받은 채 일주일 정도를 기다려도 어미는 나타나지 않았단다. 그래서 우여곡절 끝에 우리 집에 입성한 자유로운 영혼 길냥이~
'반갑다. 넌 나의 유일한 반려묘야.'
가족이란 공기 같은 존재다. 언제나 손만 뻗으면 있고 부르기만 하면 올 것 같고 굳이 애쓰지 않아도 숨 쉬며 영원할 것만 같아 그 고마움을 잊고 사는
존재들, 하지만 부모님을 사별한 후에야 깨달았다.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라는 단순한 이론은 단순하지 않았다. 많은 욕심부리지 않고 조금씩 배려하고 상대방 입장에서 조금만 생각해보자. 물론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적어도 하루에 한 번 잠자기 전 나를 뒤돌아보는 시간을 갖길 바란다. 잠깐만이라도 꼭. 무엇이든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그러면 그 안에 모든 문제와 답이 있을 것이다. 지금 당장 답을 주지 않더라도 지속하다 보면 어느새 내 안의 데미안이 그 답을 줄 것이다. 그때까지 인내하며 찾는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한 가정을 이룰 자격이 있는 건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