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엄마가 있는 그곳은 춥지도 덥지도 않겠지? 아버지랑 같이 있으니 괴롭진 않아? 사실 걱정은 조금 돼. 엄마가 다시 아버지로 인해 마음고생하면 어쩌나 하고. 요즘처럼 찬바람이 살을 파고드는 겨울이면 더 유난스레 엄마의 은은한 분내 나는 향기가 내 마음을 파고드네. 엄마 향이 나는 향을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잔뜩 쟁여놓고 살고 싶은데...
내게 엄만 친구이면서 언니, 때로는 동생(?) 같기도 했어. 엄마가 떠나간 후에 그걸 더 절실히 느껴. 엄마가 나 퇴근해서 오면 아파트 노인정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시작으로 하루 일과를 쭈욱 읊어줬잖아. 사실 그땐 매일 무슨 레퍼토리 듣는 것 같아 식상할 때도 많았어. 거기다 뭐 하지 마라, 뭐 해라, 뭐 조심해라 등등 의무사항을 무슨 십계명 외우듯 입에 달고 살았잖아. 근데 지금은 그 다정한 잔소리가 그리워. 그땐 너무 듣기 싫었는데 웃긴 건 내가 어느 순간 우리 얘들한테 그러고 있다는 거야. 그게 사랑인 것을 그땐 왜 몰랐을까.. 우리 얘들도 나처럼 나중에 알려나!
아직도 기억의 저편에 엄마는 고운 얼굴로 나를 보고 미소 짓고 있다. 반듯한 이마, 반달 같은 짙은 눈썹, 이국적인 커다란 눈매에 크지도 작지도 않은 오뚝한 코, 도톰한 입술, 하얀 계란형의 조금은 긴 얼굴, 숱 많던 검은 머리, 물론 나이가 들어 머리엔 눈발이 내리고 숱이 적어지긴 했어도 무엇보다 압권은 엄마만의 고유한 고급진 분위기야. 잔잔한 호수 닮은 촉촉한 두 눈 위로 겹겹이 겹쳐지는 얄팍한 눈매를 보고 있으면 꼭 서양인 같기도 했어. 하지만 보이지 않는 내면은 순수 토종 한국인 표 지조를 담고 계셨지. 마치 단아한 항아리처럼 말이야. 그러니깐 베란다 한쪽 항아리들을 보고 있노라면 엄마랑 함께 담근 된장 항아리가 더 눈에 들어온다. 엄마 보내고 2년은 그거 보며 된장 뜨러 갈 때마다 훌쩍거렸는데...
엄마가 아가씨 때 커다란 무명천 위에 수놓았다던 장미 십자수 기억나? 그 붉은 장미와 초록 잎, 줄기를 수놓으며 엄마는 무슨 꿈을 꾸었을까 싶어 어린 나도 그 꿈을 함께 꾸고 싶었던 기억! 외할머니댁에서 이사해 따로 우리 식구끼리 살게 되었을 때 그러니깐 국민학교 2학년 때부터 구멍 난 양말이나 엄마 버선을 함께 깁기도 했었잖아.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나와. 무슨 꼬맹이한테 그런 걸 ㅎ~ 아니다. 내가 해보겠다고 했던 것 같아.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어. 집중력도 생기고 마음이 차분해지는 느낌이었어. 엄마도 돕고 나도 즐거우니 일석이조였지! 책을 보면 산만해도 바느질할 때만큼은 정신이 또렷했으니깐. 아마 바늘에 찔리고 싶지 않아서였을지도.
참, 며칠 전에 근숙이 아줌마랑 통화했는데 아줌마가 그러는 거야. "엄만 늘 네 얘기가 나오면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셨지. 그리고 어쩌다 너랑 눈이 마주치면 그렇게 사랑스러운 눈길을 보낼 수가 없더라." 정말? 그런데 나는 왜 그걸 느끼지 못하고 늘 엄마의 따뜻한 이해와 배려만 고파했던 걸까?
엄마한테 가장 미안한 건 내게 사춘기가 늦게 찾아와 반항(?)했던 것, 엄마도 많이 힘들었지? '다 늙은 중년에 이 무슨 해괴한 짓을' 했을 거야. 나도 딱 그런 마음이었으니깐. 하지만 그동안 너무 괴로웠어. 그전까지 나는 "싫어, 안 할 거야"라는 말을 해 본 적이 없었잖아. 아버지로 인해 워낙 힘들게 사셨기 때문에 나라도 속 썩이지 말자라는 생각에 무조건 내 목소리는 없었던 거야. 그러다가 엄마가 아프기 직전 1, 2년 전부터 "왜 오빠들이나 올케들한텐 못 그러고 나한테만 그러는데?" "엄마랑 같이 사는 나는 무슨 죄라고 나만 잡아?" "조미료 통들은 서랍 안에 넣어야 깨끗하지." "나는 싱크대 옆이 지저분한 거 질색이라고."
"엄마 했던 얘기 듣고 또 듣고 이제 그만 듣겠다고."
지금 생각하면 그동안 못해왔던 불만이 통째로 거대 바위가 되어 엄마한테 굴려대고 있었던 거야. 엄마나 다른 형제들은 자기 목소리를 내는데 나만 혼자 벙어리 냉가슴 앓듯 속마음을 끓고 살았지. 늘 이해해줘야 하는 입장이고 철저히 이해받지 못한 채 외면당하기 일쑤였던 내 인생! 지쳐서 너덜너덜해진 내 영혼! 그땐 정말 그랬어 내 맘이. 엄마조차 미웠으니깐. 그리고는 엄마가 아팠지. 신장이 망가졌다며 투석이 살 길이라는 의사 선생님 말씀! 청천벽력이 따로 없었고 나는 그때부터 엄말 아프게 만들었다는 미안함을 넘은 죄책감과 투석 환자가 된 엄마의 보호자라는 이중고에 시달려야 했어.
미안해 엄마!
이제와 이래 본들 무슨 소용 있겠어.
하지만 나는 엄마의 딸이었잖아. 엄마한테 기대고 싶을 때가 많았다고. 어릴 때부터 그냥 내 또래 친구들처럼 반항도 해보고 실수도 하면서 어른들의 잣대에서 자유롭고 싶었는데 마냥 획일적으로 교과서처럼 살다 보니 진정한 나는 없고 어느새 껍데기뿐인 나만 있더라고. 엄마만 이해받으려 하지 말고 나도 좀 이해해달라고 외치고 싶었어. 그러지 못하는 스스로를 '가식 덩어리'라고 단정 지으며 미워했으니깐.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나 자신이 비겁해 보였으니깐. 이미 비겁한 애 어른이 되어버린 나! 근데 어른들은 그런 나를 잘 컸다고 칭찬했어. 그때부터 나와 세상과의 거리에서 주춤거리다 피하고 도망치는 나를 발견했던 거야. 아직도 나는 그 괴리현상에 현깃증이 날 것 같아.
근데 엄마!
이 또한 내가 앞으로 풀어가야 할 숙제라고 생각해. 나는 중년의 어른인데 아직도 어른이 되지 못했어. 언제쯤 성숙한 어른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그럼에도 희망은 있어. 아직 내게는 뒤돌아서 다시 뛸 수 있는 시간이 있고 의지가 있고 용기도 있으니. 이제부터라도 나를 찾는 여행을 할 거야. 그동안 나 아닌 나로 살기가 얼마나 버거웠는지. 요즘은 스스로 머리를 어루만지며 '지금까지 잘 왔어. 애썼어. 앞으로는 너를 위해 사는 거야. 화 잇팅!' 이렇게 외치지. '최소한의 감정에 솔직해지자'고.
그러니까 눈앞에 안개가 걷히면서 못된 마음은 봄눈 녹듯 사라지고 좋았던 추억, 감사한 마음들이 싹을 틔우기 시작하는 거야. 엄마는 엄마에게선 무엇보다 소중한 지조와 알뜰함, 엄마라는 책임감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 정갈하게 주변을 정리하며 나름의 행동수칙으로 부지런하셨고 주변 사람들에게 정 많고 고우셨던 분, 강인한 이면에는 아버지의 독재 아래 자식들 때문에 묵묵히 삶의 무게를 버텨내다 지쳐 버린 한없이 약한 여인! 그래서 내가 늘 보호해주고 싶었던 엄마를 보면서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선이 보이기 시작했으니 엄만 내게 커다란 이정표야. 그러니까 아버지가 곁에서 조금 번거롭게 하더라도 우리 만날 때까지 잘 견뎌줄 수 있지? 혹시 너무 힘들면 내 꿈에 와줘. 알았지? 그땐 다 들어줄게. 아버지 혼내줄 거야. 울 엄마 화 잇팅!
엄마의 은은한 분내 나던 향기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