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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네기 Oct 13. 2022

Burn Out

하얗게 불태워 까만 재가 되어

 나는 운이 좋은 신입 직원이다. 일이 많지만 고생하는 것을 인정해주는 팀에 들어와서, 나름 적성에 맞는 일을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다.


 나는 일을 잘하는 신입 직원이다. 팀에서 일한지 9개월 밖에 되지 않았지만, 첫 5개월 정도는 한 달이 지날 때마다 나에게 새로운 업무가 부여되었다. 잊을만 하면 한 번씩 신입 직원이 맞는지, 회사에 들어오기 전에 경력이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받는다. 


 나는 평판이 좋은 신입 직원이다. 일반적으로 신입 직원에게 기대란 없고, 사고나 치지 않으면 다행이라고들 하지만, 나는 출근 일주일만에 팀의 기대를 받는 존재가 되었다. 언젠가부터 나에게 팀의 기둥이라는 말을 하는 팀원이 생겼고, 언젠가부터 내가 다른 팀원에게 가르칠 수 있는 업무도 생겼다.


 출근과 동시에 바쁘게 달려왔다. 통계를 만드는 업무의 특성 상 업무 강도의 측면에서 시즌과 비시즌의 차이가 심하고, 그 주기는 매우 규칙적이다. 비시즌이었던 6월과 9월, 시즌일 때보다는 분명히 로드가 적었으나 나는 내가 맡고 있는 다른 업무를 처리하느라 다른 팀원들이 여유를 즐길 때 귀찮아 보이는 일들을 처리하고 있었다.


 최근 2주는 다시 바쁘게 달렸다. 다시 시즌이 시작되었지만 지난 1분기와 2분기에 했던 일을 이번에는 다른 팀원이 맡게 되었다. 분명 이번에는 지난 3개월에 비해 내게 주어진 업무 로드는 가벼워졌다. 하지만 팀에 새로운 인원이 들어오면서 내가 맡은 업무의 책임자도 바뀌었고, 나는 내 업무를 처리함과 동시에 내가 해왔던 업무를 여러 팀원들에게 인수인계를 해주는 입장이 되었다.


 이틀 전에는 하루 종일 인수인계를 했다. 아침에 출근해서 하나의 업무를 다음 담당자에게 간략하게 알려줬다. 원래도 30분 정도면 처리할 수 있었던 일이라, 인수인계도 오래 걸리진 않았다. 그랬더니 다음에는 두 명의 팀원이 나에게 연수를 부탁했다. 연수의 내용은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최근까지 내가 해왔던 업무였고, 다른 하나는 5월 쯤에 내가 골머리를 앓아가며 연구했던 내용이었다. 어쨌든 경험은 있으니까 내 경험을 토대로 간략하게 설명할 수 있었다.

 마지막은 새로 들어온 상사에게 업무에 대해 브리핑하는 것이었다. 팀에 처음으로 들어와서 아는 바가 없지만, 제대로 된 인수인계가 아니라 최근에 있었던 이슈들만 브리핑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내가 최근에 바쁠 것이라는 상사의 배려 덕분이었다. 여하튼 브리핑도 간략히 마쳤더니, 그 상사가 나에게 신입이 맞느냐는 질문을 했다. 이쯤 되니 나 스스로도 '이게 신입직원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월요일이 휴일이어서 이번주는 금방 갈 것이라 기대했는데, 오늘이 목요일인데도 이미 일주일은 쉬지 않고 일한 것처럼 지쳤다. 하루하루가 너무 길게 느껴진 탓이다. 마음 같아서는 내일 계획에 없었던 휴가를 쓰고 싶었으나, 내일은 또 보고를 마쳐야하는 업무가 하나 있어서 그마저 뜻대로 할 수 없었다. 그나마 내일이 금요일이라 하루만 참으면 주말이라는 것이 희망이다.


 오늘도 퇴근을 제 때 하지 못했다. 예상하고 있었고 이 정도 연장근무는 대수롭지도 않지만, 오늘은 유독 힘들었다. 동기들 중에서는 가장 바쁜 축에 속해서 번아웃이라는 말을 장난삼아 입에 담곤 했지만, 진짜 오늘 같은 날이 번아웃이라는 걸 느꼈다. 아무래도 지쳤나 보다.


 그래도 같이 야근하는 상사와 둘이서 저녁을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니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었다. 내가 평소에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려는 사람도 아니고, 상사에게 오늘 힘들었다는 말을 한 것도 아니었지만, 그냥 가볍게 얘기를 나누다 보니 좀 나아진 기분이다. 내일도 완전히 나아지지 않으면 편한 동기를 붙잡고 하소연이나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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