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겨울의 저녁, 1월의 고즈넉한 산사에서 나의 삶의 내면을 탐구하는 여행이 시작되었다. 따스한 모닥불의 불꽃이 춤추고, 그 빛이 산사의 고요함 속에 울려 퍼지는 이곳에서, 나는 문득 내 마음의 뿌리에 닿게 되는 순간을 맞이했다.
언니와 함께 모닥불 앞에서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고 있던 중, 두 명의 여대생이 문제지를 들고 모닥불 가까이 다가왔다. 그들은 조용히 눈인사를 나눈 뒤, 시험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이들의 집중력과 열정은 순수하고 강렬했다. 그들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도 인상 깊었다.
이 순간, 나는 여대생들이 간호사라는 직업을 선택한 뒤 주야 교대 근무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이내 내 마음속에서 조용한 물음이 솟구쳤다. “간호사 힘들지 않아요? 주야 근무해야 하잖아요?” 그 질문이 끝나자마자, 여대생 중 한 명이 말하기 시작했다. “맞아요, 그래서 저희는 한국에서 3년 정도 근무 후에 미국으로 가려고 해요. 그쪽이 대우가 더 좋거든요.” 그녀의 대답에 나는 감탄과 놀라움이 함께 몰려왔다. 아직 23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미래를 계획하고 그 꿈을 향해 전진하는 모습이 정말 멋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 모습은 나에게 씁쓸한 감정을 남겼다.
그들의 열정과 대비되는 내 과거의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나는 그들의 모습에 부러움을 느끼며, 과거의 나와 그들을 비교하게 되었다. 과거의 나는 삶이 무의미하다고 느꼈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방황했다. 자격증을 공부하던 시절, 나는 홀로 독학의 외로움 속에 있었고, 그 기억이 여전히 내 마음속 깊은 곳에 남아 있었다. 나는 여대생들에게 무심코 자격증 공부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동기부여도 되고 함께하는 친구가 있어서 좋겠어요. 나는 자격증 공부할 때 혼자라서 외로웠거든요.”
이 평범한 대화 속에서, 나는 내 안에서 어떤 감정이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단순한 일상의 대화가 아니었다. 마치 내 깊은 내면에서 잠자고 있던 오래된 감정이 깨어나는 듯한 기분이었다. ‘왜 나는 그들에게 이 이야기를 해야만 했을까?’ 이 질문이 나를 붙잡았고, 나는 그 답을 찾고자 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내 영혼 깊숙한 곳에서 올라온 소리였다.
그날 밤, 나는 내면의 질문을 따라 깊은 성찰의 여정에 들어갔다. 눈을 감고 내 마음의 시선을 내 안으로 돌리자, 내 안에서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다. 하늘에서 나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 그리고 그 바다 한가운데에 작은 무인도가 있었다. 그곳에 한 사람이 서 있었고, 그는 필사적으로 자신을 알리려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는 바로 나였다.
그 고독한 섬에서 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나는 세상과 단절된 채, 나의 존재를 알리려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 손짓은 내 영혼 깊은 곳에서 나온 외침이었다. 나는 사람들 속에서 나를 드러내고, 나의 목소리를 높이려 애써왔지만, 정작 내 안에서는 그 무엇도 채워지지 않았다. 나의 갈망은 고독을 더 깊게 만들었다.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기를 바랐고, 나를 알아주기를, 나의 존재를 인정해 주기를 갈망했다. 그러나 그 갈망은 목마름처럼, 나를 더욱 깊은 고독 속으로 몰아넣었다.
나는 깨달았다. 내가 여대생들에게 자격증 공부에 대해 이야기한 것은 단순한 정보의 전달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존재하고 있음을 증명하려는 필사적인 노력의 일환이었다. 내 안에 숨겨진 그림자는 그 순간 빛을 찾아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사회 속에서 나를 증명하려 했지만, 그 노력은 오히려 나를 더 고립시키고 있었다. 내가 느꼈던 그 이상한 감정, 그것은 바로 내 무의식이 나에게 보내는 신호였다.
무인도에 있는 사람의 최대 목적은 자신을 알리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전부를 걸어 자신을 알리려 한다. 자신을 알리지 못하면, 그의 존재는 잊혀질 것이며, 잊혀진다는 것은 그에게 곧 죽음을 뜻한다. 그러니 그가 자신을 알리려는 처절한 몸부림을 어찌 안타깝게 여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는 깨달았다. 내 일상 속에서 나타나는 제스처들, 나의 필요성을 어필하려는 노력들은 모두 깊은 무의식의 무인도에서 홀로 지내는 그가 필사적으로 자신을 알리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드러나는 것들이었다. 무인도의 그를 이해함으로써 나는 나 자신을 더 분명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내 자아는, 타인에게 나를 알리려는 본능적인 노력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찾으려 하고 있었다. 이 깨달음이 나를 더욱 깊이 이해하게 하였고, 내면의 여정에서 중요한 가르침을 제공했다.
Part 2.
Part 2. 는 일반적으로 이해하기 쉽지 않은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글을 연속으로 연결할까 아니면 아예 다른 주제로 넣을까 많은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템플스테이에서 배운 깨달음 중 손가락에 꼽을 만큼 중요한 부분이기에 넣기로 했다. 나 처럼 깨달음을 구하거나 자신을 찾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 느끼기에 ‘무인도’는 상당히 깊은 무의식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었고, 더 깊은 무의식으로 들어가기 위한 통로 역할을 했다. 그리고 연결된 것이 ‘경계’와 ‘아상’을 경험으로 납득하는 과정이었다.
그 밤, 모든 것이 평화롭게 엔딩을 맞이할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한참을 더 명상에 잠겼다. 그리고 '내가 너를 알아'와 '네가 나를 알아'라는 말을 끊임없이 되뇌었다. 그 말속에 더 깊은 무언가가 숨겨져 있음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 평안 너머에 무언가가 있음을 느꼈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내가 너를 알아.’
‘네가 나를 알아.’
나는 계속해서 그 말을 되뇌었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그 말속에 숨겨진 진실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경계'였다. '나'와 '너'를 나누는 경계, 그 경계는 내가 나를 주장할수록 더 명확해졌다. 내가 나의 존재를 증명하려 애쓸수록, 나와 타인 사이에는 더 높은 벽이 쌓여갔다. 나는 '나'라는 존재에 대한 집착에 사로잡혀 있었고, 그 집착은 나를 더 깊은 외로움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 순간, 나는 내가 겪고 있는 이 모든 고통의 근원이 바로 이 '경계'에 있음을 깨달았다. '나'라는 존재를 강조할수록, 나는 더 고립되었고, '너'라는 존재는 더 멀어졌다. 이 경계는 내가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었고, 나는 그 경계 속에 갇혀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아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상'은 나에 대한 집착이며,
그 집착이야말로 우리를 고통 속에 묶어두는 사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