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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라희 May 15. 2024

물방울에 담긴 진심을 담아낸 공간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

- 건축가 홍제승, 제주 한림읍, 2016년 


         

또르르 눈물이 떨어진다. 어느새 다시 차오른다. 맺힌 눈물은 투명한 물방울이 된다. 물방울 하나에 잊고 살았던 얼굴이 하나둘 떠오른다. 살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눈물을 머금고 또한 얼마나 많은 물방울을 만들며 살아온 걸까. 숲과 가시덤불을 뜻하는 제주 방언 ‘곶자왈’에 자리잡은 예술공간이 우리에게 수많은 메시지를 던진다.


이곳에 세워진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은 그가 평생을 바쳐 표현하고자한 물방울에 담긴 진심을 담아낸 건축이다.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은 제주에서 건축여행을 한다면 강렬한 기억을 선사할 건축물 중 하나다. 건축가가 미술을 하는 예술가 한 사람의 정신 세계와 작품 세계를 온전히 이해하고, 그것을 건축적으로 완연히 담아냈기 때문이다.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을 돌아보기 전, 미술 다큐멘터리 영화 <물방울 그리는 남자> 관람을 추천한다. 김창열 화백의 아들이 직접 감독으로 나서, 곁에서 아버지이자 화가인 김창열이라는 인물을 관찰하고 인터뷰한 내용이 담긴 다큐멘터리이다. 아들이지만 한 예술가의 정신 세계를 완전히 다가서지 못한 그가 물방울에 담은 정서와 생각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과정을 담은 작품이기도 하다. 몰입해보면 어렴풋이나마 김창열 화백의 물방울에 담긴 의미를 알 수 있는 시간이 된다.


만약 그 영화를 보지 못했다면 미술관에서 제공하는 도슨트를 듣자. 짧은 시간 안에 김창열 화백의 삶과 미술세계의 중요한 지점을 알아두고 작품을 돌아볼 수 있다. 도슨트를 맡은 큐레이터는 김창열 화백의 삶부터 그로부터 비롯된 작품의 탄생 배경, 시대적 연관성을 폭넓게 짚어주며 한층 더 그의 세계에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물방울 작가로 유명한 김창열 화백의 삶은 한국 역사의 압축판이라 할 만큼, 모진 풍파를 견디고 마침내 이루어낸 결정체이다. 그는 1929년, 강이 흐르는 모래사장이 있는 평안남도 맹산군에서 태어나 사상이 의심받고 열여섯에 홀홀단신 월남을 해야 했다. 검정고시로 들어간 대학 2년 때 6.25전쟁이 나 의용군에 끌려갔고 주변에서 수많은 죽음을 목도했다. 휴전 후 학교로 돌아가려 했지만 이쾌대 성북회화연구소에서 그림을 배웠던 시기를 문제 삼아 복학하지 못하고 혼자 그림을 그려야만 했다. 불안정한 한국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상이라는 개념 하에 배척당하고 끊임없이 증명하고 살아남아야 했던 삶이었다. 그때의 모든 기억이 마음에 남아 평생의 아픔으로 기억됐고 이내 눈물이자 물방울로 승화됐다.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의 설계를 맡은 홍재승 건축가는 김창열 화백의 작품적 화두였던 ‘회귀’에서 출발해 건축적 개념을 세웠다. '돌아올 회'라는 한자 回(회)는 ‘돌아오다’, ‘돌다’, ‘돌이키다’의 뜻을 포괄한다. 건축물의 큰 형태 또한 한자 回(회)가 연상되도록 가운데가 비어진 공간을 두고 주변을 둘러싼 형태로 구성됐다. 주변에는 크게 8개의 덩어리감을 가진 건물이 전시관으로 나뉘어졌다.


김창열 화백은 홍재승 건축가에게 미술관이 관람객의 입장에서 무덤 속에 들어와 고요하게 명상하는 기분으로 작품을 돌아볼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고 한다. 그러한 면에서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을 쭉 돌아보면, 빛이 극도로 통제되고 또한 분출되는 방식으로 건축되었다는 걸 발견할 수 있다. 덩어리감이 있는 각각의 전시관에 연결되는 통로이자 복도는 간접등마저도 배제했을 정도로 빛이 절제되어 있다. 작게 뚫린 창문이 자유분방하게 배치되어 있는데, 그곳으로 빛이 뚫고 들어오면서 일종의 해방감을 준다.


반대로 각각의 전시관에 들어서면 높은 천정의 창문에서 들어오는 빛이 은은하게 비쳐들면서 벽면에 걸린 그림을 밝혀주는데, 절제된 자연광을 통해 작품을 조명해주어서 보다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중 대형스크린이 배치된 전시관이 또한 인상적인데, 김창열 화백의 말을 전하고 작품이 완성되는 과정을 미디어아트로 제작해 상영하고 있다. 이곳은 건축적으로 오른쪽 천정부에 우물과 같은 깊이의 둥근 천창이 있고 그걸 더 작은 원형 판으로 한번 가로막아 그 주변부로 자연광이 비춰지도록 구성했다. 그 빛을 받으며 왠지 김창열 화백이 그 자리에 서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 


8개의 전시관에서 천장을 통해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자연광을 내부로 끌어들이는 걸 보면, 생각의 전환이 공간을 새롭게 만든다는 걸 알 수 있다.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은 작품 보호를 위해 무조건적으로 빛을 차단해야만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전환적 건축이다.     







(사진 이미지는 아래 링크에 올려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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