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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창준 Mar 23. 2023

소년의 얼굴로 앓는 오십견

 비가 내리면 창문 앞에 서는 습관이 있다. 

 외출을 준비하기 전 창문 앞에 서는 습관 대신. 

 신호등처럼 두 가지의 말 밖에 모르는 택시기사를 통해 해석되는 이 도시의 이야기가 문득 시시해서 동화는 더욱 매혹적이지. 나이는 알아서 무얼 할래. 젊은 것들과 구별하기 위해서? 나는 보풀처럼 느슨해져 코타츠 속의 저녁 같은, 동정이 필요 없는 노년의 시간만 기다리고 있어. 그러나 지난 시간을 떠올리면 온도와 습도가 먼저 떠오르고 나는 이 땅의 기후에 여전히 적응하지 못해 몸살을 자주 앓곤 하지.     

 너의 욕망은 왜 점점 형용사에서 명사로 변해가는 걸까. 

 나는 왜 익숙한 것들에게서는 발기하지 않는 걸까.

 우리가 이별할 때 마다 왜 서로 다른 꽃들이 짓물렀던 걸까.

 뜻밖의 구체적 고통을 겪으면 비유가 좋아진다는데,      

 여전히 나는 거짓말을 하면 얼굴이 붉어지고 토관土管처럼 늘상 어두워져 있지, 사춘기를 갓 지나온 소년처럼, 바닷가를 서성이다 떠내려 온 난민의 사체라도 목격한다면 조금 더 성실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마음이 철들지 않아서 죄만 늙어가는 오후, 제발 아델의 후음喉音 같이 늙어 책등처럼 분명하고 단단한 악력을 자랑하고 싶은데,      

 자명한 오십 세를 먼저 건너 간 시인은 오십견을 앓고 있다고 했다. 내가 소년의 얼굴로 오래도록 지그시 앓고 싶었던,     

 문득 가지 않을 문병을 나서고 싶어졌다. 창문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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