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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창준 Mar 23. 2023

약속은 감자를 닮는다

서둘러 변색되는 말이 있다 

주로 약속이다 

소년 시절에는 더더욱     


마음이 서툴렀던 시기의 어떤 약속은 갈아 놓은 감자처럼 순식간에 갈변한다 영원이나 오래전부터라는 말도 이제는 하지 않습니다. 불신은 나의 영혼을 향해 방아쇠를 당깁니다. 순수했던 시절이라고도 취해서라고도 하지 않겠습니다. 공기 중에 풀어놓으면 안 되는 약속을 했었습니다. 그런 날들이 있었다고, 밤바람에 당신의 호흡이 풀어서 폐 속으로 달콤하게 안정제처럼 스며들 때, 취해서 누구에게든 힘이 되고 싶어서 전화를 붙잡고 놓지 못할 때, 여전히 이별의 기억은 나를 자주 기소합니다. 시간이라 할지라도 무거운 기억만큼은 데리고 가지 못하네요. 마음 깊이 박혀 있는 순간들, 정의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도 잘 보이기 위해서였군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면 정말 먼저 잊혀질 수 있나요      

당신의 눈동자를 바라보는


내 눈은 무능한 파수꾼, 

자주 위험해지고 싶었습니다 

추파춥스를 능숙하게 까 주는 사람이 되겠다는 

약속은 하지 말 걸 그랬습니다 

영원이라는 말은 

그 이후로 한 번도 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나는 이제 나를 믿지 못합니다 

이별이 나에게 준 벌입니다. 

방청제가 뿌려진 경첩처럼

이제는 소리 내지 않기로 했습니다     

갈아 놓은 사과의 속살처럼

희고 향기롭던 약속이

갈색으로 변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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