깎아낸 연필심의 길이만큼
영혼이 자란다고 믿었다. 어렸으므로,
영혼이 있는지 묻는 게 먼저 아닌가,
연필심을 뚝뚝 부러뜨리며 너는 대답했다,
우리가 함께 쓸 수 있는 낮은 늘 부족했고
밤을 사용하는 방법에는 무지했다.
내게 160그램 가량의 희망이나
희고 서울말을 쓰는 부모가 있었다면,
마른 침을 뱉으며 너는 중얼거렸다.
대신 너는 공부를 잘하잖아.
그건 남들 보다 그냥
조금 덜 착해도 덜 미움 받는다는 의미일 뿐이야.
그러나, 가슴에 슬픔을 삭이면
등이 달처럼 둥글어진다는 너의 말이 좋았다.
우리는 종종, 서로, 한창,
엇비슷한 슬픔을 들려주는 놀이에 열중했고
남 몰래 엄마의 죽음을 바라기도 했다.
버저 위에 손을 올린 퀴즈 참가자처럼,
얼룩진 불행을 번갈아 말하다 보면
점점 더 많은 그늘과 비극이 필요했다.
묵주처럼 나란히 이어져 닳아가고 싶었지만
나는 너에게 이곳은 공장이 많아 안심이라고 했고
너는 나에게 그래서 이곳을 떠나고 싶다고 했다.
보름이어서 분화구가 선명해진 달에서 선뜻 계피향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