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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창준 Mar 23. 2023

사춘기

깎아낸 연필심의 길이만큼 

영혼이 자란다고 믿었다. 어렸으므로, 

영혼이 있는지 묻는 게 먼저 아닌가, 

연필심을 뚝뚝 부러뜨리며 너는 대답했다, 

우리가 함께 쓸 수 있는 낮은 늘 부족했고

밤을 사용하는 방법에는 무지했다. 

내게 160그램 가량의 희망이나 

희고 서울말을 쓰는 부모가 있었다면, 

마른 침을 뱉으며 너는 중얼거렸다. 

대신 너는 공부를 잘하잖아. 

그건 남들 보다 그냥 

조금 덜 착해도 덜 미움 받는다는 의미일 뿐이야.     

그러나, 가슴에 슬픔을 삭이면 

등이 달처럼 둥글어진다는 너의 말이 좋았다.     

우리는 종종, 서로, 한창, 

엇비슷한 슬픔을 들려주는 놀이에 열중했고

남 몰래 엄마의 죽음을 바라기도 했다. 

버저 위에 손을 올린 퀴즈 참가자처럼, 

얼룩진 불행을 번갈아 말하다 보면

점점 더 많은 그늘과 비극이 필요했다.      

묵주처럼 나란히 이어져 닳아가고 싶었지만

나는 너에게 이곳은 공장이 많아 안심이라고 했고

너는 나에게 그래서 이곳을 떠나고 싶다고 했다.     

보름이어서 분화구가 선명해진 달에서 선뜻 계피향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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