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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죽음이 꾸는 꿈이다—awakening
암 진단을 받은 후로 절망한 적은 없다. 다만 딱 한 번, 아주 서글펐던 순간이 있었다. 첫 조직검사 결과를 받아 들었던, 의사가 "악성종양입니다."라고 말한 바로 그날이었다. 결과를 덤덤히 받아들이는 것도 모자라, 한편으로는 안도감마저 느끼고 있는 내 모습에 아프도록 연민을 느꼈다.
병원의 정신없는 절차들이 일단락되고 집에 돌아와 소파에 몸을 뉘었다. 무늬 없는 하얀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오늘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이 마치 꿈 같이 느껴졌다. 문득 몽환의 막을 찢어낸 것은, 쌉싸름한 자기 인식이 빚어낸 기이한 괴리감이었다. 병에 걸렸다는 사실이 나를 좌절시키기 이전에, 죽음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이 순간을 살금 반기고 있는 자신을 목도한 거다. 어쩌면, 이제 그만 멈추어도 된다는 신호일까. 찰나였지만 분명 그런 생각이 스쳤다.
하릴없이,
선홍색 영(泳)은 무색해져,
나는 그만 집어삼켜지는 것이다.
끊임없이,
서릿빛 영(靈)은 흐릿해져,
나는 그만 휘어 감겨지는 것이다.
속절없이,
회백의 영(影)은 비겁하여,
나를 그저 내어주고 마는 것이다.
텅 빈 집이 떠나가라 울고 또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