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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호 Apr 04. 2024

시어머님의 명절은 설레고 며느리인 나의 명절은?

제 생각도 좀 해주세요

어머님이 우리 집에 같이 산지 5개월이 접어든다.

작년 추석 전쯤에 오셔서 명절을 우리 집에서 보내셨다.

추석 때는 시댁 식구 모두 송정으로 여행을 가서 1박을 하고 새로 이사한 우리 집도 보고 어머님 사시는 모습도 볼 겸 잠시 들러 차 한잔 마시고 모두 돌아갔다.

이번 설 명절은 추운 날씨 때문인지 모두 여행을 하고 싶은 생각이 없는 듯했다.

각자 알아서 어머님을 찾아뵙고 설을 보내자고 한다.

각자 알아서 어떻게 보낸다는 것인지 의문이다.

설이 다가온다.


설을 일주일 앞둔 아침 어머님은 아침식사를 하시며 5만 원을 주며 만원 권으로 바꿔 달라고 하셨다.

"돈 바꿔서 뭐 하시려고요?"

"그믐이니까 애들 세뱃돈 줘야지"

"어머니 아직 일주일 남았어요"

설날은 아직 일주일 남았는 데 내일이 설날인 줄 아셨다.

"내가 착각했나 보네 이래 정신이 없다."

반으로 접어 놓은 5만 원권 3장을 주시며

"이걸로 설 장 봐라 애들 온다니까 먹을 게 있어야 않겠나"


올 것이 왔다. 어머님은 모시고 있으면 시댁식구들이 우리 집에 모인다.

작년은 여행을 했으니 어머님 오시고 처음 맞는 설명절이다.

25년을 명절에 음식을 하다 보니 이제 음식에서 벗어나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냥 있는 거 대충 먹으면 안 될까요?"

"뭐 먹을 게 있어야지 떡도 좀 하고 과일도 사고 애들 먹는 과자도 있어야지"

"명절에 음식 하기 싫은 데요."

"떽 그러면 안 된다."

25년 차 며느리가 되고 보니 할 말은 다한다.


남편은 5남매에 누나가 있고 4형제 중 넷째이다. 시댁 식구가 세 집 만와도 15명이 훌쩍 넘는다.

그릇 개수부터 수저까지 모두신경이 쓰인다.

남편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하니 돌아오는 말이

"시켜 먹자 오면 시켜 먹으면 되지 그거 뭐라고"

손님이 오는 데 시키는 것도 한계가 있지 뭔가 준비된 음식이 있고 모자라다 싶으면 시켜 먹는 것이지 어머님한테도 똑같은 말을 하고 있는 남편은 참 단순하고 속 터진다.


요리를 좋아하지 않는 나의 머릿속은 장보고 음식 할 메뉴를 생각하느라 복잡하다.

종이를 준비해 장 볼 목록을 적어보았다. 간단하고 잘 먹는 음식 위주로 해야겠다.

설날 당일에 모두 올 것 같아서 점심 저녁 메뉴를 생각해야 한다.

설날 점심으로 떡국을 끓이려면 소고기 다짐육, 김, 계란 지단, 다시 육수가 필요하다.

사이드 메뉴로 육전이랑 동그랑땡을 준비해야겠다.

후식으로는 천혜향과 배를 준비하고 떡은 송편과 인절미로 해야겠다.

저녁은 소불고기를 굽고 콩나물, 무나물, 고사리, 호박나물, 시금치를 만들고 국으로는 탕국을 끓여서 준비해야겠다.

튀김 종류는 잘 먹지 않아서 하지 않으려 한다. 또 뭘 준비해야 할까? 맞다 잡채도 준비해야지

몇 가지만 준비해도 시장을 몇 번왔다 갔다 해야 할지 오는 사람은 그냥 오지만 준비하는 사람은 일주일을 고민한다.

이걸 알아주는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것 같다.

즐거운 명절이지만 며느리는 즐거워할 수만 없는 게 명절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어머님 방에서 불빛이 새어 나온다.

"일찍 일어나셨네요?"하고 방문을 여니 침대 위에 봉투가 가득하다. 손짓으로 나를 오라고 부르신다.

"뭐 하세요?"

"세뱃돈 주려고 준비한다. 애들이 많아서 헷갈리네, 이건 막내네 세명, 이건 포항애들, 이건 큰 집애들"

어머님의 봉투에는 우리 집 애들이 없었다.

"어머님 우리 집 애들 세명 빼먹었어요."

"맞네 이 집도 애가 세명이제 정신이 없다."

"이름을 적으면서 천천히 하세요."

어머님 옆에서 하나하나에 이름을 적어가며 세뱃돈 봉투를 완성했다.

우리 애들만 빼먹었으면 섭섭할 뻔했다.


명절에 올 손주와 자식을 생각하니 어머님의 기분이 좋고 설레어하시는 것 같다.

명절에 간다는 전화만 와도 목소리가 달라지신다.

"포항 아는 설에 내려온단다." 아주 큰 소리로 나에게 말씀하신다.


어머님과 함께 산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감수해야 하는 모든 것을 그냥 받아 드리려고 무단히 노력 중이다.

모두 기분 좋은 명절을 보내려면 누군가는 희생을 해야 한다. 이왕 하는 거 기분 좋게 명절 준비를 해야겠다.

그리고 다음에도 우리 집에 모이려면 각자 먹고 싶은 걸 하나씩 준비해 모이는 게 어떠냐고 얘기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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