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정희 Oct 08. 2022

싹 난 감자

 바람 끝에 가을이 묻어났다. 파란 하늘이 한 뼘은 더 높아진 것 같았다. 드문드문 조각구름이 넓은 무대를 채우려는 듯 모양을 바꾸며 움직이고 있었다.


 아버지를 뵈러 갔다. 혼자 지내신 지 여러 해다. 바지런한 어머니의 손길이 끊긴 고향집은 대문 앞에서부터 안주인의 부재를 알렸다. 담장 너머까지 얼굴을 내밀며 길 가는 이들을 반기던 꽃나무들은 주인 없는 꽃밭을 점령한 잡초 부대에 시달려 그 환한 미소를 잃은 지 오래다. 곳곳에 어지러이 뒹구는 잡다한 물건들이 주인 대신 손님을 맞이했다. 집안 모든 구성품은 안주인을 그리워하는 양 생기를 잃고 있었다. 마당가를 빙 둘러 어머니가 심었던 채송화가 아직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아버지는 한번 집에 들어온 물건은 버리시는 법이 없다. 작은 비닐봉지와 일회용 용기들, 크고 작은 상자들이 고향집을 채우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버지를 뵈러 갈 때마다 그 물건들의 위치가 바뀌지 않는 것으로 보아, 쓸모가 있어서 놓아두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혼자 치우기 버거워서 필요 없는 물건을 쌓아놓고 계시는 것은 아닌지 여러 번 여쭈어보아도 아버지는 그저 “다 필요하다.”라고 하실 뿐이었다. 아버지는 절대로 그 쓰레기들을 버리시지 못할 것 같았다. 

 

 아버지 대신 그 잡동사니들을 걷어내기로 했다. 그저 청소를 하겠다는 말에도 아버지는 쓸데없는 짓을 한다며 못마땅해하셨다. 그리고는 그 쓸데없는 짓을 따라다니며 지켜보셨다. 행여 나가는 물건이 없는지 매의 눈으로 살피시는 아버지와 협상하며 잡동사니 몇 자루를 겨우 채울 수 있었다.

 

 안방을 둘러보았다. 틈틈이 앉아서 성경을 읽으시는 아버지의 작고 낡은 책상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 책 저 책 널브러져 있는 것 같지만 그 안에는 아버지만의 질서가 잡혀 있음을 알기에 함부로 손을 댈 수 없었다. 이면지를 이용해 작게 잘라 놓은 메모지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예전에 어머니가 그 메모지들을 가지런히 모아 정리하셨는데 아버지는 메모한 글들이 뒤죽박죽 되었다며 크게 화를 내셨다. 볼펜도 놓아둔 곳에 정확히 있어야지 조금만 위치가 바뀌어도 싫어하셨다. 책상은 내가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아버지만의 성역이었다.

 

 책상 위는 엄두도 못 내니 서랍 안이라도 들여다보고 싶어서 슬쩍 열어 보았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가 싶은 것들이 어수선하게 자리 잡고 있는 그 안쪽에 빛바랜 흑백 사진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신사복을 잘 차려입은 근사한 젊은이가 고운 한복을 입고 수줍게 양산을 들고 있는 한 젊은 여자의 어깨를 감싸고 있는 사진. 어릴 적 ‘우리 엄마 아빠도 이렇게 로맨틱한 데이트를 했구나.’하는 생각에 내가 좋아했던 사진이었다. 나는 까맣게 잊고 있던 사진을 아버지가 책상 서랍에 고이 간직하고 계셨다.

 

 어머니가 쓰셨던 옷장 문을 열어 보았다. 살아생전 입으셨던 옷가지들이 그대로 나를 반겼다. 장에 갈 때 입으시던 옷, 병원 갈 때 입으시던 옷, 교회 갈 때 입으시던 옷. 사치라고는 모르셨지만 마을에서 제법 멋쟁이라는 말을 들으셨던 어머니는 종종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이 눈썰미가 있어야지. 남이 입어 이쁘다고 덜컥 비싼 돈 주고 사면 어떡해. 내 옷은 따로 있는 법인데….” 장날이면 동네 아주머니들이 어머니를 모시고 나가 코디를 맡기는 바람에, 저녁 무렵에야 돌아오는 지친 엄마를 나는 여러 번 보았다.

 

 어머니를 보내고 집에 왔을 때 누군가 돌아가신 분의 물건은 잘 태워드려야 한다며 어머니의 옷가지를 들고 나왔다. 아버지는 깜짝 놀라며 그대로 두라고 소리치셨다. 아버지의 눈은 슬픈 사슴 같았는데 목소리는 성난 사자 같았다.  

 

 그러고 보니 집 안 구석구석 어머니의 손때가 묻은 물건들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어머니의 전유물이었던 부엌 살림살이는 물론이거니와 수시로 닦아 광을 내던 장 단지들, 게다가 틈만 나면 풀을 뽑고 가꾸던 작은 꽃밭까지도 여전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물론 단지들은 더 이상 반짝반짝 광을 내지 않았고 꽃밭은 억센 풀들로 점령당했지만, 결코 자기 자리를 내어주지는 않았다. 채송화를 곱게 가꾸시던 어머니에게 꽃 같지도 않은 것에 무슨 정성을 그리 쏟느냐고 핀잔을 주시던 아버지도 채송화에 물을 주시며 그 자리를 지키고 계셨다.

 

 아버지와 실랑이를 벌이고 감상에 젖기도 하며 한나절이 훌쩍 지났다. 선선함을 입은 가을바람에 땀을 식히고 있는데 아버지가 검은 봉지를 들고 나오셨다. 초여름에 캔 감자가 혼자 먹기엔 너무 많으니 좀 가져가라는 것이었다. 

 “네 엄마 있었으면 뭐라도 해서 바리바리 싸 줬을 텐데….” 

 봉지 안에는 싹 난 감자가 수북이 들어있었다. 울컥 눈언저리가 따가웠다. 

 

 우리 집 냉장고엔 감자가 가득하다. 누구에게 먹어보라고 건네주기에도 민망한 싹 난 감자가. 감자 싹에는 독이 들어있으니 먹으면 안 된다고 아들이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늘어놓는다. 설명해준들 아직은 아들이 이해할 리 만무해서 그냥 웃는다. 언젠가, 그때 엄마의 냉장고 속을 채웠던 것이 사랑이고 미안함이고 그리움이었다는 것을 아들도 이해할 날이 오리라.


작가의 이전글 천리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