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고양이
취기에 비틀거리며 어깨 한 틈 겨우 밀어 넣을 골목으로 들어가 회색빛 모퉁이를 세 번 돌고 나면 검붉은 벽돌의 다가구 주택이 나온다. 여느 귀갓길의 마법처럼 반 층을 내려가면 허물고 안락한 내 집에 다다른다. 그러나 집 앞, 너저분하게 쌓여 있는 플라스틱 용기와 담배꽁초, 깨진 소주병들 틈에 얼룩진 검회색의 고양이가 박스를 깔고 앉아 있다. 여느 길고양이들처럼 털도 채 나지 않은 새끼를 품고 있는가 했지만 그렇지는 않다. 흰 털이 드문드문 난 고양이의 배 아래로 둥근 보라색의 알이 영롱하게 빛난다.
나도 모르게 고양이가 든 상자를 들고 집으로 들어온다. 고양이는 저항하지 않으나 노란색의 맑은 눈빛으로 나를 빤히 바라본다. 나는 녀석의 한쪽 눈이 먼 것을 그제야 알아차렸다. 돌아와서도 나는 녀석과 알을 흥미롭게 바라본다. 나는 누런 장판이 벗겨져 회색빛 시멘트 마감이 드러난 곳에 상자를 놓기로 한다. 그때까지도 고양이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그저 소중한 것인 양 알을 품고 있기만 한다. 그러나 지금 내게는 강렬한 허기짐을 동반한 충동이 가득하다.
고양이의 품 속에서 알을 꺼내며 대신 몇 달간 곰삭아 굴러다니고 있던 달걀을 넣어 준다. 그리고 보랏빛 알을 프라이팬에 깨뜨린다. 별다를 바 없는 황금빛의 난황과 투명한 난백이 시커멓게 달구어진 철판에 단단하게 익어 간다. 나는 이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단숨에 삼켜 버린다. 녀석은 썩은 계란을 여전히 품고 있다. 몇 초간의 식사를 마치고 나는 상자를 닫아 박스 테이프로 봉해 버린다.
그걸 먹은 나는 무엇이 될까?
나는 가스불을 끄지 않은 것을 기억해 낸다. 가스 분사구로 푸른색 밑동과 붉은 불꽃 사이에 보라색 불줄기가 일렁인다. 순식간에 그 보랏빛 불이 번져 온 집이 불타오르는 것을 상상한다. 이 건물에 사는 사람들은 바퀴벌레처럼 도망친다. 건물 외관에 핏줄처럼 드러난 도시가스관을 타고 불길이 폭죽처럼 터진다. 불길이 진정되면 경찰과 소방관, 손해사정사, 기자들이 피곤에 찌든 얼굴로 몰려들 것이다. 그렇다면 나도 그 대열에 합류한다. 그들은 땅 속 깊숙이 폐허처럼 묻혀 어두컴컴하고도 불길한 내 집으로 향한다. 누런 장판은 형체도 없이 녹아 버렸지만 겉이 그을린 라면 박스는 누런 테이프로 단단히 봉해진 채 남아 있다. 남아 있는 사람들이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쏘아보면, 나는 등 뒤로 칼날처럼 차갑게 꽂히는 시선들을 애써 무시하고 상자로 벌벌 떠는 손을 뻗는다.
나는 지금 상자에 쑤셔 넣을 주머니칼을 갖고 있지 않지만 그 칠흑 같은 상자 속에선 황금빛 애꾸눈이 여전히 나를 노려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