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

1992

by 일요일의 조작가

나는 주목을 받는 편이었다. 그러나 그에 대한 나의 자각은 조금 늦었었다. 초등학생이 된 나는 혼자 2학년 형·누나들과 같은 반에서 수업을 들었다. 내가 다닌 분교는 전 학년에 두서너 명뿐이라, 나만 특별한 경우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기소개서의 부모님 직업란에 농부라고 적지 않는 것은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 전교생 대부분의 부모님과는 달리 우리 부모님은 흰 피부를 지녔고, 몸에 딱 맞는 옷을 입고 학교를 방문하곤 했다. 학교를 방문하시던 부모님의 색채는 마치 흑백 영화에 삽입된 애니메이션 캐릭터처럼 이질적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나와 같은 반의 급우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 부모님과 마찬가지로 나도 이곳에서 유달리 밝은 색의 피부를 지녔지만, 내 겉은 점점 같은 반 동급생들과 같은 피부색으로 변해갔다. 내 피부가 이곳에 맞춰 물들어감에 따라 내가 받던 주목은 기억의 저편으로 날아갔고 입학 첫날, 날 긴장시켰던 교실의 원주민들과는 어느새 친구가 되었으며, 피부뿐 아니라 습관과 말투까지 그들의 색으로 배어들어갔다.


그게 단순한 주목이 아니라 ‘세간의 이목’이라는 걸 처음 자각한 건, 중학생이 될 무렵이었다. 그 무렵, 부모님은 상기된 표정으로 집에 들어오는 경우가 많았고, 어느 날은 오밤중에 귀가하시기도 했다. 언젠가 어머니는 나에게 지친 목소리로 물었다.


“수원아, 중학교를 꼭 가야 할까?”


선뜻 대답하지는 못했지만 나는 앞선 동급생(중학교에 가면 선배가 될 테지만)들과 같이 가고 싶었고, 무의식 중에는 으레 그래야 한다는 마음도 있었다. 부모님도 내 얼굴에서 의지를 읽으셨는지 더는 묻지 않으셨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학업에 집중했다. 그전부터도 부모님 말씀을 잘 따랐고, 그 나이에 맞는 행동을 해야 한다는 가르침이 내 몸에 배어있었다. 학업뿐 아니라 다른 교과 과정 역시 최선을 다했다.

1학년 1학기, 방과 후에는 종종 먼저 들어간 동창 형들을 따라다니기는 했지만 담배나 술을 배우거나, 비행(卑行)을 따라 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버스 정류장 뒤편에 모여 담배를 피우거나 다른 또래를 괴롭혔고, 가끔은 빈 집에 몰래 모여서 술을 마시기도 했었다. 나는 몇 번 그 무리에 속해서 그 광경을 바라보고 함께하기도 했지만 결코 그들과 동화되지는 않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나는 미지의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불안감의 정체를 깨닫게 된 때는 처음으로 시험을 보고 나서였다.


xx중학교

1학년 1반 1번 윤수원, 중간고사 평균 87.5점. 반 석차 1/1, 학년 석차 1/1


그러고 나서야 나에게 꽂히는 주변의 온갖 시선들의 정체를 깨닫게 되었다. 주변에서 모르는 어른들이 날 알아본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다른 중학교에는 이렇게 기자들이 찾아오는 경우가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며칠 뒤에 그 이유를 알아차렸다.


‘국내 유일한 1992년생. 출생 이후의 행적 인터뷰’


원인은 알 수 없지만 1992년에 태어난 신생아는 나 하나뿐이었다. 그래서 생면부지의 어른들이 나를 알아봤고 그 호기심 어린 시선은 나와 어울리던 집단의 구성원들에게는 닿지 않았던 것이었다. 보이지 않던 것들을 깨닫자 나는 나 혼자 넓은 교실에 선생님과 독대하고 있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왔다.


국내의 통계학자들은 그러한 일이 발생할 확률을 내기 위해 고군분투했고, 사회학자는 그 원인을 알아내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으며, 역사학자들은 비슷한 과거 사례를 조사했다고 한다. 나 때문에 새로운 법안이 발의되어야 했고, 새로운 교육 규칙을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나는 언론과 미디어에 오르내렸다. 어린 시절의 나에게 그것은 기분이 썩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일면식도 없는 또래들이 나를 알아보고, 경외 어린 시선마저 느껴질 때는 우쭐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나는 -부호를 실수로 빼먹었어도 1등이었고, 도움닫기를 하지 않고 뛰어도, 단소에서 바람이 심하게 새더라도 언제나 전국에서 가장 잘하는 학생이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생각하면 꼴등이라는 말과도 다르지 않으나 언제나 내가 받는 성적표에 찍힌 ‘1’이라는 첫 번째 숫자는 나를 매료시켰다.


2학기가 되자 나에 대한 관심은 이전과는 달라졌다. 내가 그 관심에 무뎌진 것인지, 실제로 나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 것인지는 확실하게 기억나지 않으나 분명한 것은 호의로 가득 찼던 내 주변의 시선들이 확연하게 줄어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 빈자리는 알 수 없는 적의로 슬그머니 채워지고 있었다. 어느 날, 같이 어울리던 상급생 중 한 명이 다른 친구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쟤가 뭐가 그렇게 특별한지 모르겠어. 왜 다 저 녀석을 감싸고도는 거야?”


그는 학급에서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었고, 엄한 가정환경에서 자랐다고 기억한다. 분명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그와 달리 혼자 전장밖에 멀거니 서 있는 내가 좋지 않게 보였을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무리 밖으로 쫓겨나는 것이 두려워 그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2학기 기말고사 시험이 끝나고 성적표가 나온 날, 나는 여느 때처럼 수업이 끝나자 2학년 교실 앞에서 그들을 기다렸으나 그들은 나를 무시한 채 지나치고는 복도를 빠져나갔다. 나는 1/1 석차로 가득 찬 성적표를 손에 들고 그 모습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상급생들이 다 복도를 빠져나가고, 그 복도에 아무도 남지 않은 순간이 오자 그 적막함과 불안함에 나는 성적표를 붙들고 한참을 울었던 것 같다.


1학년이 끝나가던 어느 날, 담임 선생님은 교탁에 서서 내게 물었다.

“수원아, 혼자 수업 듣고 공부하는 것 힘들지? 그래서 내년에는 2학년이 아예 없어질 거야. 물론 네 탓은 아니야. 사실 그 누구의 탓도 아니지만 말이야. 아주 중요한 결정이니까 부모님이랑 꼭 상의하고, 아주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 1년을 집에서 가족들과 보내고 나서 내년에 새로 입학하는 동생들이랑 학교를 다닐 건지, 3학년 학생들과 함께 학교를 다닐 건지. 1년을 쉬고 공부하게 되면 지금보다는 학업 성취가 좋아질 거고, 3학년을 다니게 되면 좀 더 빨리 교과 과정을 배울 수 있겠지. 좋은 선택, 나쁜 선택은 없으니까 고민 많이 해보고 결정하렴.”


나는 신중하게 고민하여 며칠을 밤을 지새웠고, 마침내 선택하였다.




이유 없이 떠오른 어린 시절 추억의 회상은 갑작스러운 잡음에 끊긴다.


“윤 주임, 아까 이동 희망 부서 보내달라고 한 것 보냈어? 다른 동기들은 다 보냈는데 혼자만 결정이 좀 늦네. 바로 보내줘요.”


“네”


나는 다급하게 노트북을 두드리며 내 존재가 맥거핀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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