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얼굴에 돈을 집어던지는 사람.

오만 원짜리라면 모를까.

by 기묘염

나는 비교적 온순한 사람이다. 비교적 그렇다는 얘기다. 나는 갈등 상황을 일으키는 편이 아니고, 남에게 시비를 거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는 타인을 대할 때 저 사람이 나로 인해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나 때문에 죽는 건 아니더라도, 안 그래도 살기 싫은 인간에게 면도칼을 다정하게 건넬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염두에 둔다. 그렇다 하더라도 갈등 상황이 온다면, 누군가 이유 없이 시비를 걸거나 부당하게 무례하게 대한다면. 굳이 피하지는 않는다. 그런 건 왠지 비겁하게 느껴진다.


어제 고객으로 온 중년의 아저씨와 그런 일이 있었다. 그분은 굳이 내 앞에 와서 마스크를 내리고 말을 시작했고, 나는 지침에 따라. “고객님 마스크 좀 올려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분이. 갑자기 아이 읍박지르는 교장선생님처럼 (교장선생님이 꼭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눈을 부라리며. “왜 쓰라고 난리야!! 잠깐 벗었고만! 잠깐 벗었다고 올 때 쓰고 있었어!! “라고 반말로 소리를 지르는 거다. 그때까지는 저 작자는 마스크가 발작 버튼인가 보다 하고 참아 넘길 수 있었는데. 갑자기 지갑에서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더니. 내 얼굴로 집어던졌다. 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그 만 원짜리를 잡아서 두 손으로 거칠게 구겨 옆에 있는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나도 안다. 그런 식의 똑같은 대응은, 감정적이고 유치하고 수준 이하라는 것을. 그런데 어쩌겠나. 나는 감정적이고 유치하고 수준 이하의 사람인 것을. 나의 뇌가 생각을 시작하기 전에 나의 운동신경이 먼저 해낸 일일 뿐이다. 아저씨는 많이 놀란 것 같았다. 남에게 돈을 집어던질 줄은 알지만, 다른 사람이 돈을 던지는 것은 단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사람처럼. 그 아저씨는 다시 한번 눈을 부라렸고, 나는 “왜요. 고객님은 제 얼굴에 돈 던져도 되고. 나는 쓰레기통에 돈 던지면 안돼요?”라고 물었다. 이미 시작한 걸 멈출 수는 없었다. 그렇게 쉽게 남에게 뭔가를 던지는 사람은 이미 예전에도 던져봤다는 얘기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아무 일도 없었던 승리의 경험이 그를 이렇게 만들었을 것이 분명하다. 아마도 피해자는 거의 젊은 여자들, 특히나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젊은 여성들, 쉽게 화내지 못하고 고분고분하게 당하고 있는 여성 들이였겠지. 한 번쯤은 그 사람에게도 이런 경험이 필요했을지 모른다. 그깟 돈 얼굴에 얼마든지 맞아줄 수 있는 거지만, 그래선 안된다는 것을 이 사람에게도. 직장상사들에게도 한 번쯤 보여주고 싶었다. 직원들이 민원인들에게 부당한 폭력을 당할 때 , 잘잘못을 따지기 이전에 무조건 고객에게 달려가서 아이 달래듯 자잘한 선장품이나 선물 같은 걸로 달래서 보내는 직장상사들에게 말이다. 본인이 억지 부리고 잘못했는데, 윗사람이 나와서 선물을 안겨주는 경험을 한 사람들이 다음에 또 와서 어떤 행동을 하겠는가. 지금은 돈을 집어던지지만 다음번엔 누구에게 뭘 집어던질지 알게 뭔가.

어쨌든 그 아저씨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한참 나를 노려보다가 갑작스러운 존댓말로.’ 영수증이나 줘요’.라고 했고, 나는 그 영수증을 다시 그 사람에게 던져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그의 바뀐 태도와 존댓말을 고려하여 그냥 쓰윽 미는 것으로 마무리지었다.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든다. 날마다 마주하는 이 무례함들과,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이 지긋지긋한 실랑이들이 무슨 의미가 있나. 인생은 늘 같은 곳을 맴도는 것 같지만 사실은 언제나 한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우리는 이렇게 쓸데없는 일에 감정을 소모하고 언쟁하고 서로를 다치게 하는 걸까. 진심으로 바라는 데 좀 더 다정한 세상에서 살고 싶다. 서로에게 배려있고 매너 있는 사람들 틈에서. 타인에게 친절하고 베풀 줄 아는 사람들 틈에서 그런 사람의 일부가 되어 살고 싶다. 악다구니 쓰는 것보다 괜찮아요라고 서로를 이해하고 넘어갈 줄 아는 세상을 물려주고 싶다. 나로 인해 누군가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틈에서, 그러니까 온전히 나 때문은 아니더라도 내가 마지막 방아쇠를 당길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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