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가 보호하사,

다소 칼라풀한 품위

by 기묘염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서비스직이 마스크를 쓰고 일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메르스가 한참 유행하던 때, 지나가던 동네 낙타도 마스크를 쓰고 다니던 그 시점에도 창구 직원들에게는 마스크가 허용되지 않았었다. 얼굴을 가려서 위협을 느끼는 쪽을 굳이 따지자면 낯선 사람을 상대하는 서비스직이지, 자기 밥줄을 걸고 데스크에 앉아있는 직원들에게 손님들이 위협을 느낄 것 같지는 않았지만 다들 그렇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했다. 모두가 직원들의 건강상의 문제보다는 미관상의 문제를 더 중요하게 여겼다. 그 미관의 기준이라는 것은 내 이해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므로 딱히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가 없다.


그때, 한참 마스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뉴스를 보면서 직장 상사에게

"근데 저희는 마스크 안 쓰나요? **은행은 쓴다던데요?"라고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공무원은 품위유지의 의무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마스크는커녕 립스틱을 좀 바르는 것이 어떻겠냐는 거였다. 우리의 바닥난 품위를 조금이라도 지킬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당신이 지금 당장 그 입을 닫는 것인 것 같다라고 대답해 주고 싶었으나 그러면 매우 품위 있는 개싸움이 벌어질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간혹 품위의 의미를, 경제적인 충족에서 나오는 부티와 여유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잘 손질된 머리카락과 빛나는 피부에서 느껴지는 광택을 우아와 품위의 근거로 삼는 것이다. 선명한 화장과 보기 좋은 외모가 품위를 결정하는 거라면 날 때부터 품위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보이는 내 전상사의 입에서 감히 내 입술색과 품위를 논하는 코미디가 벌어져서는 안 되는 거 아닌가? 사람이 일관성이 없다.

사실 내가 생각하는 품위는 언과 행에서 나온다. 머리털과 피부와 입술색과 무관하게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과 타인을 대하는 그의 태도 말이다.

안타깝게도 내 기준을 적용해도 내 전상사는 도저히 해당되지 않으니 그가 품위유지의 의무를 저버린 공무 원인건 여러모로 확실해 보인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가 품위를 유지하라는 명목으로 월급을 더 받지는 않으니 그럭저럭 눈 감아주는 것도 도덕적으로 큰 무리는 아닐 거 같기도 하고.


원인이 어쨌든 , 얼마나 불편하든 간에 마스크는 서비스직에게는 일대 혁명이다. 고스란히 타인에게 노출되어 평가와 공격의 기준이 되었던 나의 표정을 어느 정도 숨길 수 있고 (심지어 입모양으로 욕을 중얼거려도 모른다.) , 무차별하게 쏟아지는 타인의 타액에서 나를 보호할 수도 있다. 온전히 나를 드러내지 않고 얼굴의 일부라도 가릴 수 있다는 것이 사람에게 얼마나 큰 안정감을 주는지 모른다. 게다가 코로나를 이유로 창구 앞에 투명한 가림막까지 설치된 건 생각지도 못했던 엄청난 복지다.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로부터 보호받는다는 느낌보다 나는 앉아있고 상대방은 일어나 있는 위치적 불리함으로부터 물리적으로 나를 지켜준다는 느낌을 받는다. 나는 올려다보고 상대방은 나를 내려다보는 시선의 불평등함은 장애물이 없는 휑한 공간에서 직접적인 폭력의 위협으로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상대방이 흥분해 있거나, 폭력적 성향이 강한 사람일 때, 특히나 이미 언어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남성이라면 그 위협감은 배가 된다. 툭 치면 떨어지는 약한 아크릴 판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그 상황에서 뭔가 나와 상대방 사이를 막고 있다는 것은 작은 안도가 된다. 여하튼 저 새끼가 손을 뻗었을 때, 내 머리털이나 얼굴이 아닌 아크릴 판에 먼저 닿을 거라는 생각은 심리적으로 좀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심리학자들이 들으면 그게 무슨 예민한 소리냐고 할지도 모르겠으나 내가 느끼기엔 그렇다. 그리고 나는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인정할 정도로 안 예민한 사람이다. 물론 내가 아는 모든 사람은 통틀어 몇 되지 않지만.


코로나가 끝나고 나서도 이런 것들이 남아있었으면 좋겠다. 자기가 원할 때, 몸이 안 좋거나 감기에 걸렸거나 혹은 심리적인 이유에서라도 본인이 원한다면 마스크를 착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꼭 마스크가 아니라도 누군가가 품위라는 이름으로 혹은 서비스직이라는 명분으로 타인의 얼굴에 참견하고 화장을 강요하는 일은 허용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건 사실 여성인권의 문제이기도 하다. (나에게 입술 색깔을 논하던 내 전국장의 입술색은 보라색이었다. 물론 남성이었고.) 보기 좋은 눈요기 거리를 품위라고 평하는 사회에서 우리가 지킬 수 있는 품위란 고작해야 시뻘겋거나 조금 덜 시뻘건 색에 대한 품평일 뿐이다. 나는 그런 불그죽죽한 사회에 내 아기를 내다 놓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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