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상사는, 전 근무지에서 갑질로 감사를 받고 이곳으로 발령을 받은 분이다. 갑질은 출근길 교통사고 같은 해프닝이 아니다. 그건 어떤 사건을 설명하는 단어가 아니라 그 사람의 본질을 설명하는 단어다. 고기를 신문지로 겹겹이 싼다. 아무리 두껍고 꼼꼼하게 포장해도 결국 신문지에 핏물이 스며든다. 신문지를 잘 못써서 그런 것이 아니라. 신문지로 싼 것이 고기라서 그렇다.
과거는 과거. 이미 징계를 받은 건에 대해서 언급하는 건 일사부재리에도 어긋나는 가혹한 처사겠지만, 안타깝게도 나의 최대 단점이 바로 가혹함이다. 나는 떠벌릴 거고 아무도 나를 막을 수 없다.
그분은, 시각장애를 가진 직원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눈깔이 안 좋으면 눈치라도 있어야지"
그 말을 듣는 순간 회식자리에서 그분이 뱉은 말이 떠올랐다.
"집배원들은 자식들한테 직업 말하기가 좀.. 그렇겠어 그렇지?"
역시 알면 알수록 사랑스러운 분이다.
그분은 워낙 높고 고귀하셔서, 미천한 나와는 별로 마주칠 일이 없었는데, 며칠 전 아주 직접적으로 가르침을 받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간추리자면
"생각들을 좀 하고 일하라."
"편하다 편하다 하니까 아주 편하게들 일하고 있다"라는 게 핵심이었다.
그 두 마디에는 신문에 스며든 축축한 핏물처럼 그분의 평소 생각이 비릿하게 스며 나오고 있었다.
"생각들을 하고 일하라"[직원들은 생각이 없다. 생각은 나만 할 줄 아는 거다. 너네는 일할 때 생각이라는 것을 할 줄 모르고 설령 생각이라는 것을 한다 해도 나는 그것을 생각이라고 인정하고 존중할 마음이 없다.]
"편하다 편하다 하니까 아주 편하게들 일하고 있어" [너네가 조금이라도 편해 보이면 심사가 뒤틀린다. 사정없이 부려먹고 싶은데 내가 원하는 것보다 편한 것 같아서 거슬린다.]
우리는 9 시에 업무를 개시하고 손님을 받기 시작하는데 8 시 오십 분에 나가서 준비하고 앉아있지 않는다고 뜬금없이 격분한 거였다. 10분 먼저 나가서 일할 것을 요구할 권리가 편람의 어디쯤에 적혀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내가 아는 건 우리는 단 한 번도 9시를 넘겨서 업무를 개시한 적은 없다는 거다. 우리는 한 번도 우리의 의무를 소홀히 한 역사가 없다. 물론 편하게 일한 적도 없다. 점심시간 한 시간을 제외한 8시간 동안 , 쉬는 시간 한 번없이 성실하게 일한다. 화장실을 제때 가지 못해서 방광염을 달고 사는 직원도 있고, 화장실을 가는 하루 서너 번을 빼고는 거의 붙박이 가구처럼 앉아 일하고 있다.
아침부터 실장님들 불러놓고 회의실 탁자에서 차나 마시면서 사적인 잡담을 두 시간 동안 하다가, 점심을 먹으러 가면 정해진 점심시간을 훨씬 넘기고 두 시간 정도 밥을 먹고 오는 사람은 우리가 아니다. 혁명 전 점심 만찬에 초대받은 프랑스 귀족 같은 기분으로 밥을 처먹고 오는 모양이지만 그분이 분명하게 알아야 할 건 바로 이런 거다.
너나 나나 노예라는 거. 귀족 아니고 노동자라는 거. 실컷 누리고 단두대에 목 걸어 놓으면 '한바탕 잘 놀았다!'하고 끝나는 삶이 아니라, 곡괭이 내려놓으면 한 치 앞도 못 버티는 삶을 사는 비슷한 인생이라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