턱턱 무슨 턱

숨이 턱턱

by 기묘염

승진자들이 승진턱으로 간식을 쏜다고 했다. 간식이라고 하지만 전 직원이 300명인걸 고려하면 아찔한 일이다. 승진은 개인적인 성취인데 뭐 남들에게 한턱까지 낼 일인가 싶지만 사실 본인들의 의사와는 무관한 일이다. 얼핏 기분 좋아서 하는 자발적인 선택처럼 보이지만 이 조직에서 '자발적' 이란 말처럼 함정이 많은 말은 없다. 자발적이란 말이 강조되는 일일수록 강제성의 냄새를 진하게 품긴다. 아무도 강요하는 사람이 없지만 아무도 거절하지 않는 수많은 일들. 누군가 명령하는 사람은 없지만 판사들의 판례처럼 교과서가 되어버린 일들이 많다.


취업하고 지방으로 첫 발령이 났을 때는 문턱세라는 것을 내야 한다고 했다. 새로 온 사람이 문턱을 넘는데 내야 하는 일종의 세금이었다. 잘 봐달라는 의미로 한턱 쏘는 건데 그 당시 구급 공무원의 첫 월급은 132만 원이었다. 사실상 세금을 낸다고 해서 텃세를 면제해주는 것도 아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월급이 많은 자일수록 이 관습에서 더 자유롭다는 거다. 새로 부임받은 국장님들은 문턱세를 내는 대신 환영식이라는 명목으로 거하게 대접들을 받는다.

더욱 황당했던 건, 예산으로 경비 처리되는 회식자리에서도 사람들은

"오늘은 국장님이 크게 쏘시는 거니 마음껏 드십시오"라고 한다는 거다. 그게 개인 돈이 아니라 예산이라는 것은 전 직원이 알고 본인도 알지만, 본인조차 자기가 쏘는 것처럼 맛있게 먹으라며 생색내는 것을 잊지 않는다. 아무래도 직위가 높아진다는 것은 낯짝이 좀 두꺼워져야 하는 일인가 보다.

알면서도 모두들 그 진부한 연극에 동참한다. 그게 무슨 민망하고 속이 빤히 보이는 생색인지 모르겠으나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인간이 어느 정도의 위치에 도달하고 나면 얻어먹는 것은 당연하고 사는 것은 싫어지지만 대접은 받고 싶은 그런 순간이 있는 모양이니까.

뭐 그렇다는 얘기다.


네시 즈음, 치킨과 피자가 도착했다.

업무 특성상 교대로 먹어야 하기 때문에 자기 창구에 손님이 없는 사람부터 눈치껏 먹어야 한다. 이미 도착한 지 15분 정도 지나 있어서 이미 어느 정도 먹고 좀 남아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들어가 보니 식탁에 음식을 잔뜩 벌여놓은 채 모두 고사를 지내듯 손도 안 대고 있었다.

왜들 안 먹느냐고 물어봤더니 글쎄 과장님이 아직 안 오셨다는 거다.

그러니까 내가 성균관에 다니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상한 일이다. 구성원들은 모두 노옌데 예법만큼은 유생의 그것이라니!

자리에 없는 한 명을 기다리기 위해 열명 남짓의 사람들이 차갑게 식어가는 피자를 바라보고 있는 광경은 뭐랄까, 만두를 앞에 두고 지내는 제사를 서글프게 바라보는 허기진 전투병들 같았다. 심지어 나의 상사는 제갈공명도 아니다. 내 말은 우리가 아무리 피자 위에서 차갑게 굳어가는 치즈를 인내심 있게 바라보고 있어도 우리의 기다림은 그 어떤 역사적 의미도 없고 한 줄의 기록도 남지 않을 거란 얘기다. 그저 점점 굳어가는 그만큼의 염분과 찝찝함만이 입과 마음에 남을 뿐이겠지.

나는 바쁜 현업이기 때문에 언제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언제 오실지도 모르는데 그냥 몫을 남겨두고 먹으면 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은,

"역시 MZ 세대는 다르다"는 거였다. 물론 마음만큼은 네 살 먹은 우리 아이와도 일견 통하는 구석이 없지 않으나 mz으로 규정짓기에는 내 나이가 좀 양심이 없는 게 아닌가 싶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mz 이냐고 물었더니 너그럽게도 80년대 생부터라는 거다. 춤이라도 춰야겠다.

"역시 새마을운동 세대는 다른가 봐요"라고 받아칠 수는 없지 않나. 어쨌든 여기가 성균관이라면 말이다.


직장상사들이 직원들의 젊음을 강조할 때, 특히나 'MZ 세대'라든가 '요즘애들' 이라든가'젊은 피' 같은 모호한 언어를 사용해 하나의 집단으로 규정하려고 할 때, 다년간의 경험상 그건 청춘예찬과는 거리가 멀다. 그건 젊음을 긍정하는 말처럼 들리지만 실은 교묘하게 질타하는 말이다. 너희의 패기와 신선함과 장점을 얘기하고 싶다는 의도가 아니라 너희의 싸가지와 개인주의와 당돌함을 논하고 싶다는 강한 열망의 표출인 경우가 많다.

그 주제만 나오면 빛의 속도로 맞장구치는 말들을 들으면 알 수 있다.

"요즘애들은 자기들 할 말 다 하잖아. 부러워 "

그럴 리가,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더라면 지금쯤 나의 싸가지에 대한 분분한 의견으로 온 건물이 들썩였을 텐데. 애초에 노예들 사이에 갖춰야 할 예와 싸가지가 어떤 건지 잘 모르겠다. 다들 몰락한 양반의 후예라 믿으며 사는 것 같아 나의 성균관 생활은 갈수록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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