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언제나 안녕하다구요
안녕 못한건 접니다
다년간 불특정 다수의 민원인을 상대해 본 경험으로 봤을 때 , 대화의 서두를 ‘대한민국’ 으로 시작하는 사람은 조심하는 것이 좋다. 그것이 ‘대한민국에서’ 든 ‘대한민국은’ 이든 ‘대한민국이’든지 간에 대한민국으로 대화를 시작하려는 사람은 약간 돌았거나 최악의 경우는 말도 못 하게 돌았을 확률이 높다. 크게 두 가지의 경우가 있다. 하나는 조국에 대한 불만, 나머지 하나는 조국에 대한 자부심이다. 조국에 대한 불만으로 시작하는 경우는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지만 조국에 대한 자부심으로 시작하는 경우는 오만상을 찌푸리게 만든다.
불만은 보통 이런 식이다
‘대한민국은 이래서 안돼’
‘대한민국 공무원들은 하여튼’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도대체가’
이 경우는 보통 본인의 불만을 이 나라 전체에 대한 불만으로 확산시켜서 상대방인 대한민국인 혹은 대한민국 공무원들을 비난하는 경우다. 하지만 이 경우는 말을 꺼낸 본인의 국적도 대한민국인 경우가 많아서, 서글픈 자기소개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게 본인이 원한 나라를 만들지 못하는 소시민의 자괴감인지 본인을 잘 돌봐주지 않는 조국에 대한 서운함의 표출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말을 하고 있는 사람을 더 처량하게 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으므로 오히려 봐줄만한 경우도 있다.
문제는 자부심이다.
이 경우는 대한민국에 대한 신뢰가 너무도 깊어서 어떻게 대한민국에서 이런 식일 수 있냐는 식의 성토다.
아니 , 대한민국 우정사업이!!
아니 대한민국의 공공행정이!!
대한민국의 노동현장이!!
대한민국의 인터넷이!!
대한민국 국가기관의 화장실이!!
대한민국의 일처리가!!
아니 대한민국 사람의 양심이!!
하는 식의 과신에서 비롯된 놀라움이다.
어떤 카드 기계는 아래에 꽂으라고 하고 어떤 기계는 위에 꼽으라고 하는군요!! 대한민국 모든 카드기기의 모양이 통일되어야 합니다!라는 식의 주장은 그래도 귀여운 구석이 있다. 뭐 영조나 정조가 살아 돌아온다면, 그 정도는 통일해 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문제는,
대한민국에서 택배가 배달되는데 이틀이 걸린다고??!!!
대한민국에서 일반 우편물이 조회가 안된다고?!
하는 식의 본인 위주의 사고를, 국가의 뒤떨어짐으로 인식하고 애먼 말단 직원을 잡아 족치는 데에 이용하는 건데, 그 직원의 잘못이라곤 그저 국적이 대한민국이라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에이 그런 사람이 어디 있어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어제만 해도 세명을 목격했다.
사실 우연에 우연이 겹친 개인적인 경험일 수 있지만, 이상하게 대한민국을 부르짖는 사람들의 성비가, 한쪽에 편향되어 있다. 아마도 남성이 여성보다 국가에 바라는 것이 많거나, 받은 것이 많았던 모양이다. 혹은 아무 말이나 해도 되는 자유를 상대적으로 더 누렸거나 말이다.
하지만 이 아무 말의 피해자들은 대부분 여성이다. 그들이 아무 말을 쏟아내는 자리엔 보통은 그들보다 어린 여성들이 앉아 있다. 사실 대한민국의 부조리를 아무리 설명하고 성토하고 화를 내어도 그 여성들은 대한민국의 현실을 바꿀 수 없다. 대한민국의 현실을 바꾸는 자리에 앉은 자들은 보통 그들과 동시대를 살았던 나이 든 남성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걸 모르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들이 그 여자들에게 화를 쏟아내는 이유는 그녀들이 그것을 바꿀 수 있는 대상이어서가 아니라 그들의 부정적인 감정을 안전하게 쏟아내기 알맞은 대상이기 때문이다
문명사회에서 물리적인 힘의 우위는 이제 큰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실제로 치고받고 싸워서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는 없지만 공격이란 것이 꼭 실제적 타격으로만 행해지지는 않는다. 사람들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격렬한 전투 시뮬레이션이 돌아가고 있다. 그 속에서 본인의 승리가 확실한 대상에게 공격은 다양한 행태로 행해진다. 눈빛, 말투, 무례한 태도, 언어 같은 것으로. 그 안에서 물리력이 약한 자들이 살아남는 방법은 딱 하나다. 저놈한테 맞으면 아프겠지만 실제로 때리는 놈은 많지 않다는 것을 되새기면서 지금은 야만의 시대가 아니라고 나 자신을 세뇌시키는 거다. 실제로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그렇게 믿고 위축되지 않는 것은 중요하다.
이 시대의 여자아이들에게 필요한 덕목은 다정함이나 공감능력 경청 따위가 아니다. 그런 건 이미 차고 넘친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쫄지 않는 법. 한 대 맞으면 니 목을 물어뜯어 씹어먹어 버리겠다는 야만의 정신이다.
내 앞에서 대한민국을 찾는 자들에게 안내해줄 국회의사당 주소를 외우면서 출근 전 각오를 다져본다.
뭐, 오늘도 파이팅이란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