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할 수 있다는 착각
내가 왜 고민을 했나 몰라
난생처음으로 갈비찜이라는 것을 해보았다. 요리에 담을 쌓고 지내는 우리로서는 제법 큰 도전이었다. 야채를 잘 안 먹는 아이를 위한 메뉴였다. 스튜에 가깝게 오래오래 끓여서 당근과 감자가 입에서 녹아버릴 정도로 만들 계획이었다. 나는 야채를 썰고 남편은 고기를 손질했다. 나는 양념을 만들고 남편은 고기를 초벌로 볶았다. 워낙 요리를 안 하다 보니 맛을 감을 잡을 수 없어서 레시피 그대로 만든 양념이었다.
근데 이거 너무 까맣지 않냐?
간장이 다 그렇지 뭐.
자신도 상대방도 아무도 믿지 못하는 대화를 주고받으며 두 시간 동안 고기를 끓였다.
사랑과 정성에 걸맞게 시간까지 잔뜩 들어간 갈비찜을 본 아이의 첫마디는
"이거 뭐야? 엄마가 짜장면 만들었구나?"였다.
입에 넣고 싶지 않은 비주얼이었다. 한입 먹어보니 엄청나게 달고 어마어마하게 짰다. 무려 소고기라 버릴 수도 없어서 따뜻한 물에 고기랑 야채를 깨끗이 씻어서 아이에게 먹였다. 기름이 둥둥 떠다니는 헹굼물을 보니 구역질이 날 것 같았지만, 아직 비위라는 것을 학습하지 못한 아이는 맛있게 잘 먹어주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노력한다고 해서 결과가 좋은 건 아니다. 결과가 나쁘다고 해서 다 실패한 것도 아니다. 먹긴 먹었고 심지어 맛있게 먹었으니 나름 성공이라고 할 수도 있다. 모로 가도 서울은 갔고 모로 가는 그 시간 내내 우리는 노력했다.
우리는 육아 공동체다. 전우라고도 할 수 있다. 적이 없는 투쟁인데 매번 패배한다. 우리는 만신창이가 된 서로의 육체와 영혼을 불쌍히 여기며 생존을 위해 함께 바둥거린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는 짐덩어리처럼 느껴지는 상대방을 날려버리고 싶지만 그랬다간 다 죽는 거라는 절박함으로 최대한 협조하고 있다. 산업화 시대의 마지막 일꾼들처럼 눈치껏 분업하고 최대한 협업하고 있다.
그럼에도 위기는 예고 없이 찾아온다. 어린이집들이 2주간 긴급 휴원을 했다. 나는 명절 기간에는 부지깽이도 일어나서 일해야 한다는 믿음을 가진 직장에 다니고 있고, 남편 역시 명절 특수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직업이다. 우리 같은 맞벌이 부부에게는 이런 게 바로 비상사태다. 우리는 주말 내내 눈만 마주치면 이 주간 아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논의했다.
1. 부지깽이도 지새끼는 귀하다 회사 니들이 이해해라. 우리는 연가를 쓰겠다.
2. 엄마 아빠가 날 낳았으니 내 새끼까지 책임져야지.
3. 가정어린이집이라 긴급 보육 맡기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우리 애 하나 때문에 선생님도 출근해야 하지만 그냥 긴급 보육을 맡긴다.
4. 난 할 만큼 했다 회사니가 책임져라 아이를 데리고 회사에 나간다?!
어느 것 하나 민폐가 아닌 게 없었다. 아이의 존재가 자꾸만 민폐가 되는 상황에서는 출생률 논쟁이 공허해진다.
우리는 선택을 하기 위해 백번을 고민하고 천 번을 고쳐 고민하지만 결국 결론을 낼 수 있는 건 우리가 아니다. 연가는 내 맘대로 쓰는 권리 같지만 결국 아량을 베풀고 윤허하시는 보이지 않는 전하의 손이 결정한다. 대자대비한 부모님이 우리를 어여삐 여겨 아이를 봐주시는 게 아니라, 노비가 된 자식들을 차마 외면하지 못해 어쩔 수 없어 봐주시는 거다. 그래서 우리는 고민 끝에 그냥 닥치는 대로 그때 상황 봐서 해결하기로 했다. 결국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았단 뜻이지만 그럭저럭 굴러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