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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묘염 Apr 20. 2023

봄,균, 쉣

뭔지 모를 역병이 도는 게 분명하다.  온 가족이 돌아가며 두 달째 골골거리고 있다. 비염인 것 같은데 비염약이 듣지 않는다. 그러다가 감기라고 확신하고 병원에 가도 좀체 낫지를 않는다.  아이가 아프고 조금 나아지면 내가 아프고 내가 조금 차도를 보이면 남편이 아프다가 다시 아이가 아프다. 육아 공동체가 되어버린 엄마아빠한테까지 역병이 퍼져 나갔다. 벚꽃이 흐드러 질 때도 집에서 앓고 있었는데, 콜록이며 지나가다 보니 반팔에 반바지를 입은 사람들이 보인다.  

어떤 계절은 지나는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올봄에는 꽃구경을 못 갔다.  아이는 앞으로 백번의 봄이 남아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엄마아빠는 앞으로 스무 번도  호언장담할 수 없는 봄인데 여러모로 아쉬웠다. 부모님은 늙어갈수록 환절기에 취약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계절이 바뀌며 오는 감기, 계절과 관계없이 오는 감기, 감기보다 무겁거나 가볍거나 비슷한 무엇. 각종 이유로 가뜩이나 짧은 봄이 더 짧게 느껴진다.  내 몸을 추스르고 가족들을 돌보고, 내 계절을 아쉬워하고 부모님의 계절까지 아쉬워하다 보니 ,  사람의 시간을 지탱하는 감정의 기둥 같은 것이 허술해져서 휘청이는 느낌이 든다.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지 잘 모르겠다.  가족들을 보고 있으면 사랑으로 사는가 싶다가도  길을 가다 서서 자기가 아는 숫자를 읽고 자부심과 기쁨으로 빛나는 아이의 얼굴을 보면 희망이나 기대로 사는 것 같기도 하고,  일하러 가서 아침부터 실적 때문에 아웅다웅하는 사람들을 보면 돈인가 싶고 점심메뉴에 희비를 표출하는 동료들을 보면 그저 어떤 소소한 기쁨으로 삶을 지탱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게 뭐든 간에,  

소소한 감기들이 지나는 자리에 한 계절이 있고 점심메뉴로 투덜거리는 하루하루가 지나는 자리에 세월이 쌓인다.  문득 달력을 보고 아니 뭐가 벌써 오월이야.라고 생각하는 사이 시동생과 사촌 동생의 출산예정일이 임박했다.  나는 아직도 육아 휴직 후 복직한 걸로 해를 세고 있는데 아이는 벌써 다섯 살이 되었다.  엄마아빠의 봄이 꽃구경 한 번 없이 허무하게 지나는 사이 내 아이는 자라고 새로운 아이들이 태어난다.   

나는 지금은 중간에 끼어있다는 느낌을 받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아빠의 나이가 되고 허락된 봄이 몇 번이나 남았을까를 문득 궁금해하게 될 것이다.   


요즘은 좀 조급해진다.  좀 더 어렸을 때, 일을 막 시작했을 때는, 이게 다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이 작은 직장이, 이 반복되는 일상이 전부가 아닐 거라고 믿었다.  일단 일을 하는 거라고 뭔가 다른 일이 있고 뭔가 다른 일상이 있을 거라고 새로운 시작이 있고 더 나은 뭔가가 있을 거라고 믿었다.  

물론 날마다 눈을 뜨면 새로운 날이 있다. 그날을 어제와 같은 날로 만들어 버리는 나의 놀라운 성실함 역시 십 년째 계속되고 있다.  내가 이렇게 성실한 사람인 줄 미리 알았더라면, 성실함을 좀 더 생산적으로 사용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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